[프라임경제] 10월 첫 거래일인 4일, 국내 주식시장이 또 그리스발 악재에 발목을 잡혔다. 지난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 충격으로 벌어진 증시 패닉의 악몽이 재현될 조짐이다. 적지 않은 증권사들은 ‘10월 들어 진정랠리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전망은 보기 좋게 틀렸다. 분명한 것은 지난 8월 급락장 때와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이 완전히 변했고 오히려 나빠졌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에 육박했고 채권·상품시장도 가라앉았다. 이른바 ‘쿼드러플’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조익재 센터장은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주가가 급락했던 지난 8월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지연되면서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던 9월은 환경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63.46포인트 추락한 1706.19를 기록했다. 코스닥도 13.53포인트 떨어진 436.13으로 장을 마쳤다. 환율은 15.90원 치솟은 1194.00원을 기록해 12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스가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에 한때 1200원대를 돌파한 환율은 당국의 개입과 수출업체 달러 매도가 유입되며 그나마 상승폭을 줄였다.
◆ 수급불안에 흔들린 시장
이날 급락장의 원인은 역시 그리스였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목표치보다 높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그리스발 악재는 곧장 국내 증시의 수급불안으로 이어졌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4545억원, 1972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반면 개인이 6505억원어치를 순매수하고 연기금이 가세하며 겨우 1700선 붕괴를 막았다. 음식료품을 제외한 전 업종이 하락했고 특히 건설업, 화학, 의료정밀, 기계업종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음식료, 통신 등 경기방어주의 상대적 선전은 돋보였다. 코스피 평균 하락률인 -3.59%에 비해 음식료업은 0.63% 상승했으며 통신업과 전기가스업종은 각각 -0.62%, -1.37% 하락하는데 그쳤다.
◆ “그리스 위기=리먼사태 데자부”
그리스 재정 위기로 촉발된 유럽 사태가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주가 하락과는 전혀 양상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익재 센터장은 “8월에는 증시 약세에도 다른 시장은 강세를 보였지만 그리스에 대한 자금 지원 지연이 원인이 된 9월 급락장에서는 주식시장 뿐 아니라 채권, 환율, 상품시장이 동시에 주저앉는 ‘쿼드러플’ 약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최근 유럽 사태가 구체적인 금융위기에 근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미국이 겪은 자금경색 상황이 현재 유럽 금융기관에 재현되고 있다는 얘기다.
조 센터장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가치가 폭락했던 달러가 유럽 위기 이후 다시 안전자산으로 격상되면서 원자재와 로컬통화의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최근 주식시장의 섹터별 수익률에도 현재의 시장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 센터장은 “9월을 기점으로 환율이 뛰면서 IT, 자동차 등 일부 수출주가 부상한 반면 원자재 가격에 민감한 화학, 철강, 조선, 건설 등 산업재 섹터는 약세가 심화됐다”며 “리먼사태 전후에도 지금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결국 최근의 유로존 리스크에서 벗어나면 쿼드러플 약세도 극복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달 들어 유럽 재정위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의 흐름도 예측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은?
당장 부도직전에 놓인 그리스의 경우 문제는 두 가지다. 그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과 그리스가 구제금융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행히 지난 29일 독일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안을 비준해 자금은 확보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재정 상황이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구제금융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세계 금융시장이 오는 14~15일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와 17~18일 예정된 EU 정상회의를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회동에서 최근 거론된 일명 ‘그랜드 플랜’ 구상이 구체화되면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조 센터장은 “특히 EFSF 추가 확충이나 대대적인 은행구제 등 정책실행이 가시화되면 유럽 금융경색 리스크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10월 중순 이후 유럽 각국의 정책 공조로 유로존 달러 경색 수준이 완화되면 일시적으로 달러화 강세 기조가 둔화될 전망”이라며 “이 같은 기대감을 통해 주식시장도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