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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테마주 대해부…‘만리장성 4인방’을 아시나요

전문가들 “코스닥·중소형株 일수록 테마 잊어라”

이수영 기자 기자  2011.10.03 1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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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한국 증시를 뒤흔든 ‘만리장성 4인방’을 아시나요? 만약 안다면 폭락장에 피눈물깨나 흘려보셨군요” 개그콘서트에서나 먹힐법한 ‘허튼소리’가 진지하게, 그것도 뭉칫돈과 함께 오가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주식시장이다. 이른바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호재를 내세우는 종목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중소형주일수록 테마는 잊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최근에도 황당무계한 테마주에 홀려 피눈물을 쏟는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중국 만리장성. 1980년대 후반 북방외교가 한창일 당시 일명 '만리장성 4인방'으로 꼽히는 종목들이 관련 수혜주로 주가를 뒤흔들었다.
9월 국내 주식시장의 ‘핫 아이템’은 단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변호사였다. 증시 단골 테마인 정치 테마주가 한바탕 주가를 뒤흔든 것이다. 안 원장이 창업한 안철수연구소는 물론 협력사인 클루넷 등은 안 원장의 후보직 사퇴 전후로 급등락을 거듭했다.

풀무원홀딩스의 경우 박원순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으나 이후 박 변호사가 회사에서 손을 떼자 며칠 만에 가라앉았다.

월말 폭락장을 오가는 와중에도 여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전 의원과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제기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 이 관련된 '신생테마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앞서 정치 테마주가 과열 양상을 보이자 지난달 7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등은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대규모 ‘작전 세력’을 색출하기 위한 조사에 정치인 테마주의 열기도 일순 잠잠해졌다. 호재가 오래가지 않는 테마주의 한계 때문이다.

◆ 만리장성이 만든 황당 테마주

국내 주식시장에서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5년 당시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63.37로 가파르게 상승세를 탄 주가는 88서울올림픽을 치른 이듬해 1000선을 돌파했다.

1987~1988년 국내 증시가 활황기를 맞을 무렵, 가장 강력했던 테마는 일명 ‘만리장성 4인방’이다. 대한알루미늄(2001년 3월 상장폐지), 태화(1995년 5월 상장폐지), 삼립식품, 한독약품 등이 주식시장을 휩쓴 것이다. 북방외교가 한창이던 당시 이들이 상한가를 친 이유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4인방의 맏형은 대한알루미늄이었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할 예정이며 이 공정에 필요한 알루미늄 새시를 전량 납품할 것’이라는 소문에 폭등한 것이다. 만리장성발(發) 호재는 이내 고무신 제조업체인 태화로 옮겨 붙었다.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들이 신을 신발을 전량 납품한다’는 루머 때문이었다.

삼립식품은 ‘인부들 간식으로 호빵을 대량 수출한다’는 소문에 들썩였고 한독약품은 소화제 ‘훼스탈’이 ‘호빵 먹고 체한 인부들에게 공급될 것’는 황당무계한 시나리오 덕에 급등세를 탔다.

비슷한 상황은 2001년 미국 9.11테러 때 재현됐다. 전쟁 관련주 강세 속에서 광림특장차(현 광림)와 유니더스 등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것이다.

◆ 전쟁터에 콘돔이 필수품?

광림의 급등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명에 ‘특장차’라는 단어를 투자자들이 ‘특수장갑차’로 오해한 탓이었다. 이후 회사의 주요 사업영역은 크레인 제조와 굴착기 수입판매였다.

   
유니더스 CI. 2001년 9.11테러 발생 직후 전쟁 관련주 강세 속에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회사 주가가 급등해 대표적인 '황당 테마주'로 꼽힌다.
유니더스의 급등 이유는 더욱 황당하다. 콘돔 제조업체인 유니더스는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가면 콘돔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로 ‘수혜주’ 간판을 달았다. 여기에 ‘아프간 등 아랍국가에서는 콘돔을 사용할 곳이 없다’는 반박이 나오자 더 가관인 이유가 등장했다. 중동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총구에 콘돔을 씌워야 한다는 농담이 주식시장에 그대로 먹힌 것이다.

2002년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되면서 조선·화학 업종이 주목 받은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쉬는 날 뱃놀이를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놀면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수요가 늘어날 것 같아서 등이 그 이유였다.
2004년에는 황우석 박사 관련 바이오주가 테마 바람을 탔고 2006년 이후에는 자원개발 테마가 시장을 주도했다. 헬리아텍이 파푸아뉴기니에서 석유·천연가스 개발에 나선다는 소식에 10배 이상 주가가 치솟았지만 회사는 불과 3년 만인 지난 2009년 상장폐지됐다.

2007년 대선 직후 최고의 테마는 대운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종목은 테마주로 주목을 받았다. 수중면허를 보유한 동신건설, 이화공영, 삼호개발을 비롯해 중소형 건설주가 코스닥을 휩쓸었다.

◆ “단발성 호재가 시장 좌우, 단속필요”

한편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는 지난달 7일 “누군가 고의적이고 인위적으로 정치인 관련주를 올린 정황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며 “안철수연구소와 문재인 테마주 등 최근 이슈가 된 정치인 테마주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거래소 측은 이와 관련 정치인 테마주를 대량 매입한 세력이 존재하는지 집중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금융감독원과 공조해 ‘작전세력’ 소탕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감독 당국의 단속 의지가 뚜렷해지자 테마주로 몰리던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차익실현 매물과 함께 당국의 단속의지가 투자심리를 꺾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증권 임복규 종목분석팀장은 “지난달 풀무원홀딩스 등 일부 정치인 테마주가 급락한 것은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탓도 있지만 그렇게 급하게 주가가 빠질 상황은 아니었다”며 “소위 ‘작전세력’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도 감독기관의 단속 행위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우리 시장의 부정적인 투자 관행 중 하나가 펀더멘털보다 정치적 이슈와 같은 단기적인 탄력에 편승하는 것”이라며 “터무니없는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당국의 단속이 일반 투자자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MC투자증권 박시영 연구원은 “본래 기업가치보다 고평가된 주가는 반드시 떨어지게 돼 있다”며 “중소형주일수록 기업의 펀더멘탈 등 객관적인 지표를 잘 살펴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