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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주범은 MB정부 환율정책”…WSJ의 맹비난

[심층진단] ‘한국은행 기준금리 동결’ 원화통화정책의 결과는?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9.15 09: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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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방황하는 원화(‘Won-dering as they wander’)는 언제쯤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한국이 원화강세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 인플레이션이 악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14일 유럽 위기로 환율이 급등했음에도 이날 정부가 적극적인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은 것을 두고 금융시장에서는 정부가 환율 상승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침체 상황과 유럽 위기로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성장률 저하가 불가피한 만큼 원화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라도 수출경쟁력을 높이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한편, 원화 강세 억제와 관련한 내용의 사설이 7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에 실린 가운데, 8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발표하면서 원화 통화정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고환율 정책 끝났다? 원화강세 억제 현재진행형?

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한국 8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동월 대비 5.3% 올라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한 후, 정부에 대해 환율에 대한 ‘강박증’을 떨치고 국내 물가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했다.

이 사설은 한국 정부가 “은밀히 원화의 평가절하를 시도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며 “정책 입안자들은 통화 문제를 악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통화 가치가 올랐다면서 한국 고환율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작년 1월과 비교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7.5% 상승했고 싱가포르 달러화는 14%, 타이 바트화는 10% 올랐으나 한국 원화의 평가절상률은 8.4%에 그쳐 표면적으로 한국의 전략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은 중국 등 주요 이머징 시장 국가에 대한 환율 절상을 바래온 미국 등의 입장을 감안해서 보더라도, 어느 정도 시사점이 있다.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기회비용이 실제로 크게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설은 “한국 수출업자들이 엔고 현상으로 고전하는 경쟁 일본 업체에 비해 유리할 수 있지만 한국의 높은 물가상승률은 ‘값싼 원’이 ‘비싼 대가를 치르는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논란을 낳았던 정권 초 ‘고환율 정책’은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원화 강세 억제’에 대한 외부의 비판이 새삼 제기되면서, 환율과 금리라는 카드로 수출을 일으키고 소비를 활성화해 기업에 유리하게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 집행된다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 필요성이 재부상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7년과 2008년에도 똑같은 게임을 벌여 물가상승률이 치솟은 경험이 있는데, 이에서 얻은 교훈이 현재 잘 가동되고 있느냐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4% 물가 관리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고백(8일)이 나온 상황에서 보면 오히려 이때보다 사정이 더 나쁠 수도 있다.

오늘날은 그래도 수출로 돌파구를 뚫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는 때조차 아니기 때문이다. 8월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IT가 선전했다는 분석이 나온 점은 경제 전반의 전망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과연 이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총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천정배 최고위원, ‘고환율’ 표현 써가며 현재 인플레 문제 지적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여럿 논의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별개로 시장을 열어 물가 하락 효과를 내자는 논의까지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정책을 펴는 게 현정부의 기업 정책 하에서 가능하겠느냐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이런 판단을 하려면 환율 정책 카드 등에 대한 발상도 이미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또 있다. 수입을 늘려 시장의 물가를 잡는 게 유력한 방안 중 하나라고 생각하자면,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비용인상(cost-push) 인플레이션이라는 전제를 배경으로 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고통은 수요견인(demand-full)성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우리 나라가 수출 위주의 환율 정책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문제 때문에라도 환율 기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위에서 이번 인플레이션과 환율 정책과의 연관 문제를 언급한 외신의 사설도 언급했지만, 정치권에서도 이런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이 지난달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제 석유 가격, 신선 채소나 육류 가격이 떨어졌을 때에도 물가는 안정되지 못했다”면서 당국에 “정책 실패를 감추려 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이 좋은 예다. 이 발언 외에도 천 최고위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줄곧 ‘고환율’을 유지하는 MB정부라고 비판하고 있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은 금리 인상 및 통화 강세를 통한 방어 노력이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있다.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어 방어 대책들은 일정부분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은행의 이번 기준 금리 동결 유지는 이자율에 손을 대는 경우의 우리 경제의 상처가 인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판단을 깐 것으로 해석된다.

금리를 올리는 경우에는, 그간 상당 부분이 대출로 지탱되어 온 부동산의 가격 폭락 가능성, 가계 대출로 인한 고통 상승 등 문제가 심각하고, 결국 이런 문제로 인해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에 선뜻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동결 상황에 바로 기준 금리 조절 실기론(失期論)까지 나오는 것처럼, 어떻게든 현재 상황에 대한 제스처는 필요하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거의 유일한 방안은 고환율 포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물가가 임계점에 달했고, 이런 수요견인 인플레이션 하의 물가를 조절하려면 금융 카드를 만져야 되며, 그 중에 기준 금리를 여러 문제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면, 환율을 처리해야 할 때라는 전망이다.

이른바 고환율에 대해 ‘정리’를 해 나가야 할 필요는 통화량 부분에도 있다.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환율에 대한 태도를 적지 않은 외국인은 고환율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많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원화는 고환율이며, 그러므로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게 하면 문제다. 왜냐 하면 이렇게 투자하게 되면 ‘핫머니’ 성격의 유입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핫머니가 많이 들어오면 유출시 경제 타격 가능성 등의 우려 요인이 되기도 하나, 그 자체로 통화량 증대를 유발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환율 조정을 위해 달러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본원 통화가 공급된다. 이의 본원 통화 증가를 제어하려고 발행하는 통화안정채권의 이자로만 지난 한 해에 6조98억원이 지출됐다.  

통화량은 경제 규모와 비례하는 게 정상이므로 GDP(국내 총생산)가 커지면 통화량도 늘어나고, GDP가 증가하지 않으면 통화도 늘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 반대 방향으로 흐름이 일어나 문제가 크고 이 문제를 연착률시킬 필요가 높다. 명목 GDP 증가율이 2008년 3분기 6.5%에서 같은해 4분기 -0.7%로 돌아섰고, 2009년 1분기와 2분기에도 -1.3%와 1.1%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는 동안, M2(광의의 통화) 증가율은 2008년 3분기 14.7%, 4분기 13.8%, 2009년 1분기 1.5%, 2분기 10.1% 등을 기록해 왔다. 실물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국은행이 의도적으로 통화 공급을 늘려 비정상적으로 통화량이 커진 것이다.

특히 7일, 통화량 증가율이 13개월만에 반등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통화량 관리 필요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른바 고환율 유지로 인한 문제는 통화량 부담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 효과를 고민하는 차원에서라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이 고환율로만 유발되거나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금 물가 불안의 근본 원인은 고환율과 화폐 증발, 재정 팽창에 따른 복합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 한 고리를 끊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시작고자 한다면, 수출 기업에만 유리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원화 강세 억제부터 손을 대는 것이 공감대 형성이나 기술적으로도 유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