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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홍콩과 거문도의 갈림길에 선 부산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9.14 08: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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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세기에 영국과 러시아는 패권을 다투며 전세계에서 격돌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충돌을 특히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부르지만 서로부터는 크림전쟁(1853년)에서 동으로는 우리나라의 거문도사건(1885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주요 요충지에서 이슈마다 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경쟁은 오늘날 G2로 일컬어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도 목격된다. 중국은 급부상하는 슈퍼 파워이자 제1의 대미 채권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은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남사군도 문제 등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무력 충돌 등이 주된 화제였지만, 근래에는 경제적 능력을 겨루는 것이 정석으로 돼 있다. 특히 중국은 브라질 등 브릭스 국가들과 함께 유럽연합 채무 위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곧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세계 경제 운영에 있어 중국의 발언권이 한층 강화될지 주목된다.

이렇게 일이 풀리면서, 특히나 동아시아 쪽은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 사이에 선택을 강요받는 모양새다. 미 달러와 연동해 움직이던(페그제) 홍콩 달러는 현재 정책을 지속할지의 시험대에 서 있다. 이는 우선은 미 달러화가 양적 완화로 인해 값어치가 떨어져 페그제로 움직이는 홍콩 달러에까지 인플레이션 파장을 끼친 데 따른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홍콩이 언제고 중화 경제권의 영향력 강화와 그로 인한 줄서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중화 경제권의 강화로 인해 위안화 결제 등 여러 몸살을 앓으며 미 달러 위주의 시각 교정을 요구받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중심지 조성 및 발전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 법률안이 본회의 처리 고비를 남겨 놓고 있다. 이 개정안은 9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어이없게도 여야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등으로 대립하면서 1년여의 표류를 마무리하는 종지부를 좀처럼 찍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중심지법 개정안은 금융중심지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비 재정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특히나 부산 문현동이 서울처럼 국제금융중심지로 육성되느냐의 여부를 결정할 키라는 해석이다. 정부는 지난 2009년 1월 부산을 특화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지만, 관련 법률에는 민간 금융기관의 유치 및 금융중심지 활성화를 위해 재정지원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산이 금융중심지, 특히 선박금융의 중핵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면 개정안 통과가 필수적이다.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금융중심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내 금융기관 및 외국 금융기관 등에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고, 선박금융전문대학원은 물론 선박금융전문기관 설립도 바라볼 수 있다. 선박금융을 주업으로 하는 은행을 도모할 기반조차 없이 선박금융의 발전을 꿈꾸다니 언감생심이다.

상황이 이런 지경인데, 근 1년새 각종 정치적 논란과 당리당략으로 소모전을 벌여 법안 처리가 지연돼 왔다는 해석을 보면 기가 막히다. 그렇잖아도 개정안 통과 이후에도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입주할 금융
   
 
기관 유치나 한국거래소의 ‘파생상품 R&D센터’ 등 처리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이번에도 다시금 본회의 문턱에서 지체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남들은 주인공을 바꿔가면서 그레이트 게임을 논하고 있는데, 두 세기가 바뀌도록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고사하고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찾기도 힘들어 보인다. 부산은 제 2의 자유무역항 홍콩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21세기의 거문도가 될 것인가? 이런 문제는 개정안 하나의 처리 태도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