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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권경률의 ‘드라마 읽어주는 남자’

프라임경제 기자  2011.08.30 08: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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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이 남자 참 희한한 남자다. 주야장천 연속극이나 끼고 산다. 그나마 생각은 있는 남자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 같으니까.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드라마를 파고 사는 걸까. 사실은 이 남자 신문에 정기적으로 ‘드라마 in 정치’라는 칼럼을 이미 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읽히는 호모 폴리티쿠스, 정치적 인간에 대한 관찰을 예리하게 톱아 내는 글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드라마 읽어 주는 남자’가 되기엔 아직 납득이 쉽지 않다. 드라마 왕국이라는 한국, 그 많은 드라마를 보는 것, 그것도 뭔가를 잡아내기 위해 작심하고 앉아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생업이 드라마 작가도 아닌데.
   
 

그런데 납득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되려고 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밥벌이로서 역사학자가 되지 못한 저자가 그나마 속을 달랠 수 있었던 일이란 ‘역사와 고전, 사람을 주제로 상상하고 통찰하는 글쓰기’를 무작정 해대는 일이었다. 여성신문의 문학기행 ‘내 인생의 쉼표 하나’ 연재에 이어 사극과 정치적 인간의 분석은 그렇게 시작됐고, 드라마에 빠진 저자의 광폭 행보는 ‘추노, 동이’ 같은 사극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시트콤을 넘어 영화, 연극에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말 그대로 드라마 읽어주는 책이다. 하루 보고 하루 울고, 하루 보고 하루 웃고 마는 ‘바보상자’를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 관점을 버무려서 기왕이면 ‘생각하는 드라마 시청’으로 시야를 넓힌다. ‘시크릿가든’이 종영되자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주인공 현빈으로부터 로마시대 귀족들의 정치/경제/사회적 솔선수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잡아낸다. ‘공부의 신’에서는 사교육에 지친 청소년과 부모를, ‘동이’에서 정경유착의 길고 긴 뿌리를, ‘성균관스캔들’ 에서는 엉뚱하게도 배추가 금추되는 농산물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예나 지금이나 근본에서 변한 게 별로 없는 것이 인간의 정치성이란 관점을 가진 저자의 광폭행보의 결과다.

‘파스타’에서 쉐프 현욱(이선균)의 정치적 문제해결 능력과 붕어 유경(공효진)의 소통능력은 현실에 비추어 봐도 예사롭지 않은 배울 점이다. ‘붕쉐커플’의 달콤한 횡단보도 키스 장면만 기억한다면 다시 한 번 그들의 정치, 사회적 캐릭터를 반추해 볼 일이다. 사극 드라마 배경의 압도적 1위는 당연 조선조 숙종 때이다. 여인과 음모와 술수가 판을 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희빈’은 또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질투와 권력의 화신, 악녀 장희빈’을 뛰어넘는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한 번쯤은 파악하고, 다시 나올 장희빈을 대한다면 뭔가 다르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우리를 느끼게 될 것 같다. 사학과 출신 저자가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짚어주는 비하인드 스토리라서 믿어도 될 만한 역사해석이다.

수십 편의 드라마, 영화, 연극을 통해 우리가 겪는 현실문제를 캐릭터, 스토리, 처세술, 리더십으로 나눠가며 너무 많은 이야기와 박학다식을 전달해 주려다 보니 다소 정신 사나운 인용과 굳이 ‘아스트랄’한 단어로 폼 재는 대목, 은연중에 드러나는 현실 정치인에 대한 이 남자의 호불호가 옥의 티라면 티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