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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경제대국 신화 내리막

[심층진단] 일본 신용등급 하향조정·엔고·수출↓ '삼중고'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8.24 13: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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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는 엔고 현상을 해결할 단비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치솟기만 하는 엔화 가치 방향에 변동이 생길지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은 버블 붕괴 후 미국과 중국의 경제 성장에 따른 수출 증가에 기대서 디플레이션 완화를 꾀해 왔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과거와 달리 미국 경제의 불안 등 세계 경제 회복에 의존하기 어려우며 여기에 엔고 상황까지 겹쳐 수출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신용등급 하락에 약세 반응 보였지만…

무디스의 조치가 전해진 24일 아침, 도쿄 시장에서 환율은 달러당 76.73엔(현지시간 오전 8시6분, 이하 자료 블룸버그), 달러당 76.77엔(10시23분)으로 낙폭을 넓히고 있다(전일 뉴욕 외환시장 종가는 76.66)
   
영국 셰필드대학 연구팀에서 만든 것으로 2015년 미래 경제력을 형상화한 지도. 그러나 향후 일본의 하락세로 지도의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과 재정 적자, 환율 방어 등으로 인한 경쟁력 낭비 등으로 경제력 강화 기회를 얻을 여지가 좁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에도 엔고 흐름이 확실히 꺾여 수출에 적정한 환율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수출 문제에 관한 일본 기업들의 상정환율 마지노선 달러당 82.59엔이 마지노선이다. 지난해 9월 일본 통화 당국이 대대적인 환율 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실패한 바 있고, 1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인 75.95엔까지 떨어진 바 있는 등 대세는 이미 장기적인 슈퍼 엔고로 굳어지고 있는 추세다.

똑같이 신용 등급 강등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지만 미국과 다른 대접, 즉 엔고의 원인이 되는 ‘일본 돈=안전 자산’이라는 신화가 깨지기에는 대외 순채권국이라는 위상이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디플레이션이 불러오는 엔화의 현재 환율로 보이는 명목가치와 실질가치 사이의 괴리도 앞으로 엔고 투기적 수요를 당분간 지속적으로 불러올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화폐 구매가치는 높아지는데, 일본은행(BOJ)의 보고서에 따르면(15일 월스트리트 저널이 인용 보도) 디플레이션이 엔고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분석이다.

BOJ 연구통계국 소속원들이 만든 ‘실질실효환율 효과에 관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에 대한 엔화의 명목가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상승했지만 물가 요소 등을 감안한 실질가치는 그 이후 실질적으로 하락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54개국 소비자 물가와 42개 통화를 토대로, 물가 영향을 제외했을 때 그 나라 통화가치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에 비해 평균적으로 얼마나 절상돼 있는가를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을  추출해 냈고, 일본을 제외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어온 반면 일본은 지난 20년의 대부분을 가격 하락 혹은 정체를 경험해 왔고 그 결과 공장 설비와 노동력 및 원자재 등의 핵심 제조 비용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로 계산하면 (일본 수출 기업의 실질 수익은) 훨씬 높아지는데, 심지어 지금의 엔 가치로도 일본 수출기업이 (가격에서 실질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는 경제 전문가도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저평가 상황은 엔고 운동 그래프가 당분간 지속되어도 일본 경제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안전 자산이라는 점으로 엔화에 관심을 가진 투자 내지 투기 세력이 앞으로도 엔고 현상을 부채질하고 나설 추가적 간격이 존재하는 셈이다.

“QE3 상황 오면 우리도 양적 완화”? 안 먹힐 가능성 커

   
3차 양적 완화 가능성으로 달러 약세가 전망되나, 일본은 양적 완화를 택해도 엔고를 꺾을 가능성이 약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두 주요 통화는 서로 다른 국면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6일(현지시간)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추가적인 양적 완화를 발표할 가능성에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은 이번 잭슨홀 컨퍼런스에 ‘인민은행장 불참’이라는 제스처로 불쾌감을 간접 표명했으며, 이는 QE3 발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발표가 실제로 나올 경우 달러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반사적으로 엔고 현상은 부채질하게 된다.

일본 재무성 고위 관계자가 지속적인 개입 가능성 언급(구두 개입)과 함께 미국에서 추가 양적 완화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금융 정책 움직임이 있다면 BOJ의 추가 양적 완화도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일본의 양적 완화가 효과를 크게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BOJ는 지난 3월에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정책금리를 현행 0.1%로 동결하는 한편 지난해 12월 도입한 10조엔 규모의 대출 프로그램을 20조엔(2220억달러)까지 확대키로 하는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조치는, 일본 정부가 최근 기록적인 물가 하락세를 우려하며 BOJ에 추가적인 부양 조치를 요구해 온 데 대한 화답이었다. BOJ는 정부 요구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으나 결국 디플레이션 우려를 인정, 유동성 지원 확대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BOJ식 양적 완화와 관련, 일본이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디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BOJ의 조치가 충분하냐는 질문에 “금융권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는 있겠지만 (자금을 받은) 은행이 반드시 대출을 하라는 법은 없다”고 지적,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해도 경기 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일본의 고질적 상태를 지적했다. 일본의 양적 완화란 결국 경기 부양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없을 뿐이며, 미국 양적 완화라는 파고에 묻혀 양적 완화를 통한 엔고 저지는난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디스는 이번 일본 신용 등급 하락 조치에 앞서, “환율 시장 개입이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신용 등급에도 마이너스 효과를 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는데, 결국 총 50조엔을 동원할 것으로 보이는 환시 개입도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넘는 국가 부채는 일본 당국의 고민거리이며 여기에 1990년대 이후 지속돼 온 사실상 제로금리 상황 등으로 정부가 추가로 동원할 수 있는 정책 도구는 바닥난 상황이다. 양적 완화 등 여러 통화 정책 도구 중 남은 카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경제 대국으로서 짊어질 짐의 무게만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