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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프라임경제 기자  2011.08.24 0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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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역사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사는 국사, 세계의 역사는 세계사, 정치의 역사는 정치사, 개인의 역사는 개인사다.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t Carr)의 고전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그 유명한 한마디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 평가하는 것이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 내지는 주류의 차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는 수도 있다.
   
 

E.H CARR가 말하는 역사의 대화란 그보다 조금만 더 나가면 된다. 과거와 미래는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으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 위치한 추상적 지점일 뿐이다. 즉, 우리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서 과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있어야만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이 책은 역사가 어떻게 생성이 되는지, 역사 자체를 정의하는 게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영국의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 이라고 정의한 역사에 잇대서 그런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歷史家), 역사인식을 제대로 해야 하는 정치적 리더와 그의 추종자 등 모든 사람들이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올바른 자세를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가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개인적이든 국가적이든 과거의 어느 사건에 대해 가정을 할 때가 있다. 가령 지금의 남편, 아내를 만나지 않고 영숙이나 철수와 결혼을 했었다면? 그럼 지금 영숙이의 남편은 다른 누구와 결혼을 했을 것이고, 지금의 내 아들과 딸은 이 세상에 없고, 그럼 내 딸의 중학교 반 친구 30명 중에 한 명은 다른 아이일 것이고, 내 딸과 엮었던 29명 친구들, 그 이전 초등학교 모든 친구들의 과거 역시 달라질 것이고, 그들의 부모도 달라져야 하고, 그럼 그 아이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가.

그래서 심하게는 객관적 법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이 ‘역사는 없는 것’이라고 무시하는 것에 저자는 역사도 충분히 자연과학이나 수학처럼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 내는 객관적, 과학적인 학문이라는 것, 그래서 역사가들은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깔끔하고 대차게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지식이다. 지식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 없는 지식은 공허하다. 지식의 궁극적 목적을 니체는 ‘생명을 촉진, 보존하고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즉, 인간 상호작용의 진보나 발전,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이끌어 주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관습과 교훈을 넘겨받아 유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통찰력을 주는 것이 역사다. 따라서 역사가는 자신이 포함된 현재 사회의 목적을 염두에 둔 채 과거 사회의 ‘사실’을 부지런히 수집, 역사적 사실이 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을 엄선한 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미래 통찰에 도움이 되는 해석을 내 놓아야 한다. 수집, 엄선, 해석이야말로 역사가의 중요한 능력이다.

해석이 끝나면 역사가의 역할도 끝난다. 이제 역사적 해석을 받들어 사람들을 조직하고 선동해서 유복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그 시대의 리더들, 특히 정치가의 몫이다. 우리의 앞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천지다. 이 대목에서 헤겔은 ‘위인은 시대의 의지를 표현, 그 의지를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도 이 책에 나온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는 리더를 만나야 따르는 무리들의 미래가 편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유능한 정치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다.

그런데 저자는 유독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이전에 없었던 위기의 시점을 지나고 있다고 불안해 한다. 인간 정신의 진전을 압도하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그 원인으로 인류 스스로 인류의 말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전례가 없는 시대란다. 그토록 미래에 대한 혜안과 선택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기에 자비로운 저자가 이 책을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위기의 나날이다. 넓게는 911 테러로 드러난 문명의 충돌과 아랍 민주화 열풍 같은 세계적 사건부터 좁게는 강대국 중국, 일본이 독도, 이어도, 철령 이북을 넘보는 임나일본부와 동북공정, 남북통일에서 824무상급식 투표까지 지난 역사가 주는 가치와 교훈을 토대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우리를 안전하고 유복한 미래의 길로 이끌지 냉철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져야 할 현재에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아 안토니우스가 사랑에 빠진 것이나 나폴레옹이 네잎 클로버를 따려고 허리를 숙인 덕에 안 죽었다는 것은 하찮은 우연일 뿐이다. 올바른 사회구성원이라면 자신이 함께 휩쓸려 가고 있는 전체 사회와 시대를 지혜롭게 들여다 봐야 한다. 그것을 통찰이라고 한다. 그가 위인이다. 우리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한가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무리에게 역사는 과거를 똑 같이 반복시킴으로써 무리에게 벌을 준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은 핵폭탄을 한 번 더, 그것도 더욱 진하게 얻어 맞게 될 것, 그 말이 그 말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책은 읽을수록 이 책 저 책이 엮이면서 사람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 같다. 서양인, 서양세계 중심의 인식각도가 다소 눈에 거슬리긴 해도 역사를 연구하려거나,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탐독해야 하고, 그들을 뽑아야 하는 우리도 한 번쯤 훑어 보면 좋을 책이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