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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장김치 담합…공정위 ‘사후약방문’도 일조

조민경 기자 기자  2011.08.04 17: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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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배추값 폭등으로 지난해 10월 포장김치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인상한 일이 있었다. 포장김치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상FNF 종가집, CJ제일제당, 풀무원과 동원F&B 네 곳 모두 같은 시기에 13~18%의 가격인상을 단행하며 국정 감사에서 가격 담합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업체의 담합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7월20일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이번 포장김치 담합 사건은 결과적으로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내용을 보면 찜찜하기 그지없다. 

그 이유는 담합 의혹을 받은 업체들 간의 물고 물리는 공방전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 사이에서는 상도는커녕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는 식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펼쳐졌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자 동원F&B와 풀무원이 담합한 사실을 자진신고한 것이다.

현재 공정위는 담합 등의 조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리니언시 제도’(담합자진신고감면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담함 조사 과정에서 자진신고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업체에 과징금 각각 100%와 50%를 감면해주고 형사고발까지 면제해주는 제도다.

‘나부터 살고보자’는 생각을 가진 업체들에 이 같은 리니언시 제도는 죄를 지어도 먼저 자수하면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 것이다.

동원F&B와 풀무원이 담합을 자진신고 했음에도 대상FNF 종가집과 CJ제일제당은 각각 시장 1, 2위 업체로 담합할 이유가 없다며 맞섰다. 이후 공정위는 이들이 정보교환을 통해 가격인상을 담합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 같은 결론이 나자 동원F&B와 풀무원은 업계의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만일 이번 사건이 담합으로 결론 났다면 대상FNF 종가집과 CJ제일제당은 과징금을 부과 받았겠지만 동원F&B는 담합조사에서 담합 사실을 적극 인정하면서 1순위 지위를 부여받아 과징금 100% 면제 대상이었고, 풀무원 역시 자진신고 2순위로 과징금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합에 가담한 업체로부터 직접 신고를 받음으로써 조사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리니언시 제도의 취지는 좋았으나 이번 포장김치 담합 사건을 통해 제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업체들에 담합하더라도 먼저 신고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 이를 악용하는 등 자칫하면 불공정거래의 온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리니언시 제도가 불공정거래 근절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제2의 포장김치 담합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쉽진 않겠지만 근본적으로 담합 등 불공정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공정위의 숙제일 것이다.

   
 
한편, 공정위는 리니언시 제도에 이어 담합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해 스스로 시정할 경우 과징금을 최대 20% 까지 내려주는 방안을 내놨다. 이 제도 역시 ‘담합한 이후’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담합했더라도 가격을 인하하면 과징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인데, 담합 근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아 보인다.

이 두 제도 모두 공정위의 담합 등 불공정거래 근절에 있어서는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담합한 업체들로서는 과징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를 주장하는 공정위로서는 좀 더 확실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