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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삼성 ‘MRO 철수’, 조삼모사(朝三暮四) 떠오르는 이유

이수영 기자 기자  2011.08.04 07: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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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때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원숭이를 많이 기르는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다. 먹이가 부족해지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너희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졸지에 배를 곯게 된 원숭이들은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저공은 “그럼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열자(列子)-황제편(黄帝篇)’ 가운데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얽힌 고사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속이는 것을 빗댄 말이다.

지난 1일 삼성그룹이 소모성 사재구매대행(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9개 계열사가 소유한 아이마켓코리아(이하 IMK)의 지분 58.7%를 전량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의 MRO 계열사에 대한 현장조사 착수에 나선 것을 비롯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가운데 이뤄진 결정이었다. 파장은 당연히 컸다.

LG그룹 계열 서브원을 비롯해 포스코의 엔투비, SK그룹의 MRO코리아 등은 당장 사업 축소·포기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MRO 시장 매출 1위를 기록한 LG는 상생경영의 주도권을 삼성에 빼앗긴 모양새가 됐다.

IMK의 소액투자자들도 울상이다. 지난해 IMK는 매출 가운데 83%를 삼성 계열사 거래에서 이끌어내 ‘삼성 조달청’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삼성 자회사’ 프리미엄이 사라진다는 발표 직후 주가는 이틀 사이 곤두박질쳤다. 지난 1분기 말 현재 1만2723명의 투자자들이 IMK 지분 1117만주(31.1%)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의 볼멘소리와 소액주주들의 원망을 감수하면서까지 삼성은 MRO 시장 철수를 선언한 셈이다. 상생과 공동성장이라는 화두에 비춰보면 삼성의 결정은 대견스럽다. 그런데 한 발짝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순수성 여부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코스피 상장사인 IMK는 삼성전자 등 9개 삼성 계열사가 60%에 가까운 지분을 소유해 사실상 주주사로서 운영권을 행사해왔다. 이번 결정은 지분을 포함한 회사 운영권을 제3자에게 넘긴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주가 가치를 고려해 삼성 관련 물량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 IMK의 소유주가 바뀌어도 ‘삼성 조달청’ 역할은 그대로 한다는 얘기다.

IMK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라는 것은 주식시장에서의 프리미엄이었을 뿐 회사 수익구조나 성장성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삼성 입장에서도 현재까지 구축한 MRO 거래선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IMK의 새 주인이 될까.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몫을 빼앗았다는 비난을 피하려면 당연히 중소기업으로 그 몫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삼성은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선정해 IMK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삼성이 글로벌 MRO 업체나 해외 사모펀드 등 외국계 자본에 회사를 넘기려는 포석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이나 연기금이 협상 대상이라면 굳이 외국계 주관사를 선정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삼성도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인수자와 관련해 어떤 것도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게 없다”면서도 “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선정했으며 일부 인수를 희망하는 측과 대략적인 협상이 오가는 중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MRO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몫을 찾아주기 위한 작업에 어째서 외국 자본 개입설이 불거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IMK의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 현재 시장에서 추측되는 매각 금액 규모는 5000억~7000억원 사이다. 연기금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한다해도 국내 중소기업 중 거액의 인수자금을 감당할 업체는 없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관계자는 “(삼성 MRO 철수 결정에)부분적으로는 환영하지만 100~200억원도 아니고 수천억원의 매각 자금을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삼성이 일부 지분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최소 30%는 넘겨받아야 하는데 ‘공동성장’ 차원에서 일부 인수 자금을 깎아주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 이상 힘든 얘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물론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다 해도 기존 주주들이 용납하겠느냐”며 “해외자본이 국내 MRO 시장을 잠식하면 폐해가 더 커질 것이 분명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삼성의 MRO 철수 결정은 공동성장과 시장의 논리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삼성이 ‘조삼모사’의 비난을 피하고 진정한 상생기업으로 각인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