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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형 전남 영산성지고 교장 8월말 퇴임

전교조 역사의 산증인...구속.복직.교육위원.평교사 등

김선덕.장철호 기자 기자  2011.08.01 0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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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매일 매일 학생들과 몸으로 부대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지난 2년동안 학생들 이름 익히고 우리 선생님들의 장단점을 이제 막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년이 되고 보니 아쉽습니다"

   
고진형 교장

고진형 영산성지고 교장이 오는 8월 말 정년퇴임을 한다. 그의 퇴임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전교조 역사의 한페이지도 넘어가게 됐다.

고 교장은 파면과 구속, 복직, 교육위원 당선, 교육감 선거 출마, 사상 최초의 전교조 출신 교육위원 의장 역임, 평교사 복귀, 대안학교 교장을 지냈다.

고 교장은 "지난 2년 동안 학교현장에서 교육평등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직접 경험하고 떠난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1974년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당시 고진형 선생은 1989년까지 장성여고와 나주고, 무안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 선생은 이 시기에 지배계급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현실을 목도했고 유신독재 체제를 거치며 사회와 정치적인 변혁의 연장선상에서 교육적 모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1980년 5.18 민주화 항쟁을 경험하며 교사로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고 선생은 1980년 전교조 탄생의 태동이 되는 YMCA 중등교사회를 자발적으로 조직해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며 모순된 사회와 교육현실의 변혁을 위한 각종 연구활동과 교육선전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1984년부터 1988년까지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등야학'활동을 전개하는 등 교육민주화를 위한 조직체를 구성하고 교육자주권 옹호를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한다.

1987년 교육민주화 선언에 맥을 이은 전국교사협의회를 조직해 전남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고 선생은 1989년 교원노조가 합법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교조를 결성한 혐의로 전국 1,527명의 교사들과 함께 고난의 역정을 걷게 된다. 이후 수차례 수배와 경찰서 유치장 구금생활을 하던 고 선생은 전교조를 주도적으로 결성했다는 이유로 결국 구속되고 파면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 선생은 이후 '거리의 교사 생활'을 전전하며 전교조전남지부 제1, 2, 4, 6, 7대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전교조 합법화 이후인 지난 1994년 전남지역 복직대상자 187명중 유일하게 고진형 선생만 복직제외자로 분류돼 미복직 처리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후 지방교육자치 시대를 맞아 지난 1995년부터 12년간 내리 3선을 교육위원으로 당선돼 사상최초로 전교조 출신 교육위원회 의장까지 역임한 뒤 지난 2006년 불출마를 선언하며 18년만에 일선학교 평교사로 교단에 복귀했다.

목포기계공고 평교사로 복직한 고 선생은 이 3년여의 시간동안 교실붕괴를 몸소 경험하며 교육운동가로서 살았던 삶과 일선 학교현장 교사로서의 삶에 심각한 괴리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명예퇴직을 고민하던 고진형 선생은 지난 2009년 9월, 평소 동경의 대상이었던 대안학교 초빙교장으로 부임해 2년동안 재직했다.

고 교장 재임시절 영산성지고는 실천중심, 학생중심, 공동체 교육 중심의 대안학교의 모델을 제시했다.

고 교장은 "대안학교의 바람직한 모델을 일선학교에 전파하는 것이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했는데 여의치 않게 돼 아쉽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고 교장은 "대안학교 교장 경험이 참교육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끝이 아닌 처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온 지난 세월, 함께 울어준 동지들과 온갖 고초를 묵묵히 견뎌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역사는 고진형 교장의 지난 30년간의 교육자로서의 삶을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과 참교육 실천을 위해 헌신한 불굴의 교육운동가'였다고 기록할 것이다.

   
지난 2009년 9월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 교장으로 부임한 고진형 교장은 학생들과 함께할 때마다 앉거나 쪼그려 앉아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고진형 위원과, 고진형 의장, 고진형 선생과 고진형 교장은 소외계층의 대변인, 집행부와 동료 교육위원들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던 날선 감시자,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던 할아버지뻘 선생님, 무슨 일이든지 사람좋게 포용하던 키다리 교장선생님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고 교장은 "퇴임하면 교육운동하는 사람들의 심부름을 하고 싶다"면서 "전교조전남지부 20년사 편찬위원으로 참여해 1989년 처절했던 전교조의 역사와 교육혁신을 위해 몸부림을 치던 지난 세월을 정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