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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고졸인력 채용 '빛 좋은 개살구'

노현승 기자 기자  2011.07.28 09: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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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학력 인플레 및 고졸인력 실업문제 해소에 기여하고자 은행권이 고졸 신입 텔러행원 채용에 앞장섰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과 은행연합회는 올해(상반기 포함)부터 2013년까지 3년간 고졸인력 채용확대 계획을 수립하고, 총 2700여명 이상의 고졸 인력을 선발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8월 중 전국 전문계고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우리창구 전담 텔러행원 10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국민은행은 지난 3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 취업 촉진'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지난 4월 말 특성화고 학생 8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은행권의 움직임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 눈치 보기 끝에 계약직 형태로 고졸 취업자를 선발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고졸취업자에겐 일단 계약직으로 시작해 2년 후 우수 직원에 한해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고용 불안정, 불투명한 미래…

고졸채용 바람은 최근 기업은행이 올 상반기 고졸출신 직원 20명을 채용한데 이어 추가로 하반기에 40명을 뽑는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각 시중은행 및 기업으로까지 퍼져가고 있는 상태다.

현재 은행권에서 고졸인력을 대대적으로 채용한다고 나섰지만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용된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례가 미미해 비정규직 인력 수만 늘리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드라마 '신입사원'의 한 장면>
현재 금융권 비정규직 다음 카페를 운영하는 차 모씨는 "지금까지 채용한 대졸 계약직도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고졸 인력채용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의문"이라며 "하나은행의 경우 주부사원·경력자사원 등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해왔지만 800여명의 계약직 채용자 중 단 2명만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걸로 알고 있다"라며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정규직 전환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 "이번 고졸 신입채용을 통해 얼마나 많은 행원이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춰볼 때 그다지 많은 인원의 전환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태에 대해 꼬집었다.


◆'비정규직' 채용 자체가 문제

은행권에서는 고졸인력 채용 분위기에 맞춰 계획에도 없던 고졸출신 직원 채용에 우왕좌왕하고 있다. 비정규직 대한 구체적 인사관리 시스템조차 구축해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들의 고용 불안정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존 대졸 비정규직은 2년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후 우수 직원에 한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운용중"이라며 "무기계약직 전환 비율은 90%를 육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입행할 고졸 비정규직에 대해 "기존의 대졸 계약직과 같은 '계약직'으로 간주해 평가할지 아니면 각각의 다른 '계약직'으로 간주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정해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각 은행이 구체적인 비정규직 인사관리 시스템조차 구축하지 않아 기존 대졸 비정규직과 고졸 비정규직의 무한 경쟁을 부추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금융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 모씨는 "동기들 대부분이 서울 중위권 또는 지방 국립대 출신인데 이번 고졸채용 소식에 씁쓸해하고 있다"며 "대졸출신 텔러 입행자들이 고졸 어린 친구들이랑 같은 일하고 같은 대우 받는다고 생각하니 안 그래도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힘든데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학력 인플레 원인은 학력 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인 탓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졸-고졸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가장 높다.

한국노총 최삼태 본부장은 "우선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어려움을 겪던 고졸자에게도 취업의 문이 열려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것이 점차적으로 확산돼 대학 졸업자 중심의 채용관행에서 탈피해 고졸인력이 학력 때문에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받지 않는 시스템으로 발전돼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