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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甲’ 국민연금, 자산운용은 ‘슈퍼 아마추어’

감사원, 작년 해외채권으로만 최대 500억 손실 추정

이수영 기자 기자  2011.07.27 16: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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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증권가에서 이른바 ‘슈퍼 갑(甲)’으로 통하는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기막힌 횡포가 이달 초 발표된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거래 증권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등급을 조작하고 수시로 부적절한 접대를 받은 사실은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증권가의 먹이사슬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증권사를 쥐락펴락하며 군림해온 국민연금이 정작 300조원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능력은 ‘수준미달’이었다는 정황이 연이어 포착돼 후폭풍이 예상된다.

   
 
감사원이 지난달 30일 최종확정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2010년 12월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외 주식, 채권 등 증권투자 규모는 304조원이다. 전체 운용자산 323조원의 94.1%를 투자한 것이다.

구체적인 운용 현황을 들여다보면 국내외를 포함한 채권에 전체 자산의 71.1%인 230조원, 주식에 75조원, 부동산 펀드 등 대체투자부문에 18조원을 쏟아 부었다. 국내 채권발행 잔액의 17.0%, 주식 시가총액의 4.4% 규모다.

◆혈세 500억 날리고도 ‘입 다물었다’

그렇다면 거대한 자금공세를 벌인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진수희)가 지난 6월 29일 제출한 2010년도 기금운용 성과평가에 따르면 금융부문 시간가중수익률은 벤치마크(기준수익률) 10.97% 보다 0.40% 밑도는 10.57%였다.

국내채권이 7.68%의 수익률을 기록해 벤치마크인 7.80%를 채우지 못했고 해외채권이 7.15%, 국내주식에서 24.43%, 해외주식에서 12.12%, 대체투자에서 8.22%의 수익률을 올렸다. 벤치마크 13.74%인 대체투자를 제외하고 모두 기준점을 1% 사이로 약간 초과하거나 밑도는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 현황(잠정)
특히 감사원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해외채권 투자 과정에서 관리 범위를 벗어난 듀레이션 축소 운영으로 적게는 276억원, 많게는 494억원을 손해 본 것으로 추정했다. 듀레이션이란 채권에 투자된 원금이 회수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감사원 감사결과 국민연금은 지난해 해외채권 듀레이션을 자체 설정한 관리범위보다 짧게 운용했다. 지난해 1월 국민연금 해외증권팀이 발표한 ‘2010년 해외채권 운용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듀레이션은 3.74년이었으며 당시 관리범위는 3.85~6.85년이었다.

“해외채권이 짧게 운용되고 있어 듀레이션을 길게 하는 전략으로 운용하겠다”는 게 국민연금 해외증권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듀레이션은 3.62년으로 더 짧아졌다. 이때 관리범위는 4.43~7.43년이었다. 금리상승을 노린 전략이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더구나 이 같은 내용은 투자위원회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 최대 500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수개월 만에 날리고도 입을 씻은 셈이다.

◆올해 4월까지 8조원 더 투자

또 해외주식 위탁운용 과정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합리적인 위험관리 기준 없이 자금을 배정해 수익성을 놓쳤다는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 11일 ‘2010년 6월 해외주식 위탁운용계획(안)’을 수립하고도 같은 해 8월 이머징마켓(신흥시장·EM) 유형의 위탁운용사인 A사로부터 회수한 20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재배정하며 ‘하반기 초과수익 창출이 기대된다’는 이유로 가치주 유형의 또 다른 위탁운용사에 추가 배정했다.

이미 6월 세워진 계획을 합리적인 위험 관리 고려 없이 틀어버린 셈이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를 위해 맡겨진 재산인 만큼 안정성과 수익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운용 원칙에서도 어긋난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해외주식 위탁운용 시 운용사·유형별로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포트폴리오 위험관리 기준을 만들라”고 통보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4월말까지 8조5768억원의 추가투자를 결정했다. 국내주식에 3조3539억원, 해외주식에 9482억원, 국내채권에 2조505억원, 해외채권에 1조496억원이 배정됐다. 대체투자에도 1조1746억원이 더 들어갔다.

◆‘국민연금 TF’ 실효성은?

한편 감사원의 대대적인 감사를 계기로 물의를 빚은 국민연금에 대해 기금운용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지난 11일 구성됐다. 내달 중순까지 활동하는 국민연금 TF는 23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관리 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인사 4명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 10명, 준법감시인 등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개혁의 대상이 돼야할 인사들이 TF 구성원으로 임명된 기이한 구조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측은 “일부 논란이 된 직원들은 감사원으로부터 징계가 아닌 단순 경고를 받은 것”이라며 “비리와 직접적인 업무관련성도 없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횡포’와 아마추어적인 기금운용의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증권사 소속 한 에널리스트는 익명을 전제로 “만약 민간운용사에서 임원 비리가 적발되거나 판단 실수로 큰 손실을 봤다면 중징계감”이라며 “국민연금에도 이 같은 내부통제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