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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로존과 개성의 실험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7.23 1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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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유로존이 그리스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 지원에 나섰다. 유로존 정상들이 21일(현지시간) 긴급 정상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식 성명서는 “유로화를 지키고 유로존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재정통합’으로 해석되는 “보다 중앙집권화된 예산 및 세금정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선언까지 나왔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유럽의 연방화’라고 보도했다.

물론 유로존 ‘재정통합’의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당장 가장 부유한 유로존 국가인 독일부터 강력한 반대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그 외 국가의 지도자들도 자국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분명 그리스를 한숨 돌리게 할 것이고 그 진행도 순조롭지는 않아도 결국 유럽인들에게 수용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로 가는 일을 완벽하게 피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디폴트의 충격이 크지 않게 완충해 줄 효과는 분명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모든 투자자들이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계산이 바로 액면상 거창해 보이는 유럽 재정통합 결단을 낳은 냉철한 기반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유로존이라는 개념이 빛을 본 것도 ‘유럽은 하나’라는 ‘이념과 꿈’의 산물인 동시에 냉철한 정치적, 경제적 타협과 조율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정치가들 가운데는 ‘국민국가’의 전통을 극복하고 초국가적 공동체를 창설하는 것만이 유럽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 중 첫 세대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짧은 평화기에 활약한 독일의 슈트레제만과 프랑스의 브리앙이라고 할 수 있다(이 두 사람은 1926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과 전후처리 과정에서 상호 증오와 적대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양국의 화해를 추구한 인물이면서도, 통합 만능주의자라기 보다는 각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럽국가연합의 결성을 촉구했다는 평가다.

2차 대전 이후 적대국이었던 독일의 아데나워와 프랑스의 드골 시대에 유럽공동체(EC)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를 태동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도 각자 자국 이익에 가장 충실한 대변자들이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 한반도의 개성에서도 흥미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22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개성공단 사업 관계자들과 북측은 5% 임금 인상안에 합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다. 남측 기업책임자회의는 북측의 이런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효율적인 근로자 배치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기업들은 현재 북측 직장장(근로자 대표)이 인력을 배치할 때 남측 의견이 많이 반영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같은 밀고 당기기가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매년 5% 인상’이라고 하면 어찌 보면 사실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은 그렇다고 인도적 차원이라든지 기분좋게 집어주고 끝내자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가벼운 선택도 아니다.

금강산 관광길이 얼어붙은지 오래인 지금, 개성공단을 매개로 한 대북 간접 지원 줄다리기는 낭만 못지 않게 냉철한 계산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접근해야 할 일이다. 과거 해 왔던 쌀지원이나 금강산 관광을 통한 ‘현금 내지 식량 유입’에 대해서는 퍼주기 논란과 함께 독재 정권만 살찌운다는 효용성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개성 공단 가동과 남북 경협은 그러한 비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렇게 가장 냉정한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문제가 남북 대화 창구의 부동항 역할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소화해 내고 있다. 아울러 그 방법으로도 임금 5% 협상이라는 구체적 카드를 매개로 관리되는 현상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유로존이 오랜 ‘통합의 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이 그리스 디폴트 문제 등 여러 위기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과정으로 담보되듯, 남북 문제 역시 개성공단이라는 실증적 문제와 임금 협상 등에 적지
   
 
않은 부분을 의지해 암중모색을 예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서로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논하기 위해서는 가장 밑바닥의 문제부터 함께 조율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막연한 거부감이나 도저한 낭만주의에 빠져 잘못된 길을 빠르게 택하기 보다는 동전 하나까지도 세고 계산을 맞춰본 뒤 움직이는 치밀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로존과 개성이 택한 실험은 틀과 전개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많은 닮은 부분이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