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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후지와라 신야 산문집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프라임경제 기자  2011.07.19 18: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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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고희를 훌쩍 넘기신, 무난하게 인생을 가꾸어 오신 분들과 함께 하는 산악회가 있다. 산 정상에 이르러 멀리 성냥갑 같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쉬는 시간에 ‘성공한 인생을 위한 한 가지 지혜’에 대해 여쭈었다. 간단한 설왕설래 끝에 답은 ‘겸손해서 손해 본 적 없었다. 건강한 놈이 이기는 놈이다.’로 모아졌다. 어려운 한자성어가 섞인 대단한 비결을 풀어 내실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요즘 유행하는 SNS(소셜 네트웍 서비스)라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에서 짧으나 강렬한 서평을 자주 올리시는 지인, @Sangki Choi 씨의 이 책에 대한 역시나 짧고 강렬한 서평을 무단 전재한다.

   
 

[‘인도방랑’의 전설, 후지와라 신야의 신간 산문집. 수십년 오지를 헤매던 그가 동경 한 복판에서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역시 후지와라! 편견이지만, 노작가가 쓴 소설은 산문처럼 심심하고, 노작가의 산문은 소설보다 드라마틱하다. 살아온 시간의 무게 때문.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후지와라 신야를 추천한다. 울림이 크다. 좋은 산문의 첫 번 째 요건이 글재주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따듯하고 웅숭깊은 시선, 관조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생철학이 우선이다. 인생 9단 노작가의 글이 전하는 혜안과 가르침이 무거우면서도 예리한 이유다.]

도쿄의 젊은이들을 위해 신문에 연재했던 산문 중에 추려낸 14가지 이야기. 말 그대로 ‘파 송송, 무 탁’에 소금 간마저 연한, 맑은 민어 국이다. 산정에서 백전노장들의 간단한 가르침처럼 명쾌하고 단순하나, 쉽기까지 하다. 돌아보면 언제나 있는 ‘너’는 ‘사랑’이다. 그러나 죽고 못사는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이 아니라 긴 막대기로 설익은 감나무를 휘젓는 어린 아이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 보는, 괜찮은 감이라도 하나 얼른 떨어지길 바라는 뒷집 할아버지의 그윽한 눈빛이다.

나일강이 아니라 맑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며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이다. 우둥탕탕 쉬익쉬익 타오르는 장작불이 아니라 타닥타닥 톡톡, 잔가지들 모아 어린 연기를 뿜는 모닥불이다. 그 안에는 돌아보면 항상 있는 ‘너’에게 줄 감자도 서너 개 들어있다. 거장, 노장이 일갈할 만한 천둥폭우 대신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스쳐 내려오는 가랑비로 밤새 내린다. 통근열차에서 내다보는 풍경의 방향만 오른 쪽에서 왼 쪽으로 바뀌어도 인생은 얼마든지 지금보다 나은 쪽으로 달라질 수 있다며 귓볼을 간지럽힌다.

타인에게 신랄했던 젊은 날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함께 젊은 사진작가를 격려하기 위한 거장의 세심한 배려는 사진 한 점을 일부러 사주는 일이다. 매뉴얼 사회 일본답게 매뉴얼 대화만 존재하는 편의점 점원과의 간단한 일상에서도 노작가의 따듯한 시선과 관심은 핸드폰의 오르골 벨소리에 실린 사랑 한 스푼을 경쾌하게 퍼 올린다. 후지산 그림엽서 같은 맑은 사랑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압도적 존재감’으로 자리매김한 노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평범한 소시민들을 향해 보내는 따뜻한 눈빛. 격정의 시대를 지나 삶의 원리를 터득, 관조의 단계에 들어선 노인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세상.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힘든 이들에게 리얼리티가 넘치는 응원가.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라는 깨달음의 경지까지 다른 사람들의 수식어도 대부분 비슷한 맥락이다.

무척 동의한다. 다만 ‘찬란한 슬픔의 봄’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라는 관조 역시 필자에게는 아직 더 세상을 살아봐야 하는 것인가 보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