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희를 훌쩍 넘기신, 무난하게 인생을 가꾸어 오신 분들과 함께 하는 산악회가 있다. 산 정상에 이르러 멀리 성냥갑 같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쉬는 시간에 ‘성공한 인생을 위한 한 가지 지혜’에 대해 여쭈었다. 간단한 설왕설래 끝에 답은 ‘겸손해서 손해 본 적 없었다. 건강한 놈이 이기는 놈이다.’로 모아졌다. 어려운 한자성어가 섞인 대단한 비결을 풀어 내실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요즘 유행하는 SNS(소셜 네트웍 서비스)라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에서 짧으나 강렬한 서평을 자주 올리시는 지인, @Sangki Choi 씨의 이 책에 대한 역시나 짧고 강렬한 서평을 무단 전재한다.
[‘인도방랑’의 전설, 후지와라 신야의 신간 산문집. 수십년 오지를 헤매던 그가 동경 한 복판에서 세상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역시 후지와라! 편견이지만, 노작가가 쓴 소설은 산문처럼 심심하고, 노작가의 산문은 소설보다 드라마틱하다. 살아온 시간의 무게 때문.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후지와라 신야를 추천한다. 울림이 크다. 좋은 산문의 첫 번 째 요건이 글재주가 아니다. 사람에 대한 따듯하고 웅숭깊은 시선, 관조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생철학이 우선이다. 인생 9단 노작가의 글이 전하는 혜안과 가르침이 무거우면서도 예리한 이유다.]
도쿄의 젊은이들을 위해 신문에 연재했던 산문 중에 추려낸 14가지 이야기. 말 그대로 ‘파 송송, 무 탁’에 소금 간마저 연한, 맑은 민어 국이다. 산정에서 백전노장들의 간단한 가르침처럼 명쾌하고 단순하나, 쉽기까지 하다. 돌아보면 언제나 있는 ‘너’는 ‘사랑’이다. 그러나 죽고 못사는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이 아니라 긴 막대기로 설익은 감나무를 휘젓는 어린 아이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 보는, 괜찮은 감이라도 하나 얼른 떨어지길 바라는 뒷집 할아버지의 그윽한 눈빛이다.
나일강이 아니라 맑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며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이다. 우둥탕탕 쉬익쉬익 타오르는 장작불이 아니라 타닥타닥 톡톡, 잔가지들 모아 어린 연기를 뿜는 모닥불이다. 그 안에는 돌아보면 항상 있는 ‘너’에게 줄 감자도 서너 개 들어있다. 거장, 노장이 일갈할 만한 천둥폭우 대신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스쳐 내려오는 가랑비로 밤새 내린다. 통근열차에서 내다보는 풍경의 방향만 오른 쪽에서 왼 쪽으로 바뀌어도 인생은 얼마든지 지금보다 나은 쪽으로 달라질 수 있다며 귓볼을 간지럽힌다.
타인에게 신랄했던 젊은 날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함께 젊은 사진작가를 격려하기 위한 거장의 세심한 배려는 사진 한 점을 일부러 사주는 일이다. 매뉴얼 사회 일본답게 매뉴얼 대화만 존재하는 편의점 점원과의 간단한 일상에서도 노작가의 따듯한 시선과 관심은 핸드폰의 오르골 벨소리에 실린 사랑 한 스푼을 경쾌하게 퍼 올린다. 후지산 그림엽서 같은 맑은 사랑이다.
무척 동의한다. 다만 ‘찬란한 슬픔의 봄’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라는 관조 역시 필자에게는 아직 더 세상을 살아봐야 하는 것인가 보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