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네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울게 하리라’에서 매화 향기는 독립의지로 밑줄 쫙, 광야에 동그라미 땡, 독립된 조국을 의미한다. 은유법, 대유법에 기승전결을 갖췄고, 여기저기 상징법이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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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에는 시를 이렇게 감상하도록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시만 접하면 논리와 의미를 찾으려,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려 덤빈다. 시는 하나의 이미지고 느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처음에서 끝으로 읽어 내리는 동안 마음 속에 어떤 동요나 감정, 깨우침이 형성되면 시는 감상된 것이다.
요즘 인터넷 문학가 ‘귀여니’로 잘 알려지기보다 많이 알려진, 스물 네 살의 이윤세 씨가 대학 교수로 임명된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정통과 보수의 입장에서는 ‘국어파괴자, 낙서’ 수준인 그녀가 교수가 된 것이 헤프닝인 반면 그녀에게 익숙한 ‘호모이모티콘인’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최소한 문학과 예술의 세계라면 작가가 있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 호불호는 존중돼야 한다. 다만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들을 벗어나는 파격이 아니라는 전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돈을 위해 써대는 조철봉 따위에겐 눈길도 안 준다. 작가 자신이 불리하다고 엉뚱하게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나섰던 ‘무뢰배’의 소설도 ‘폭우 오던 날’ 내다 버렸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인 이상엔 소명감, 양심, 정직함 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가치들을 절대 배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 그 이유다.
젊은 작가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깔끔하고, 솔직하고, 시원하다. *이 *같이 많이 나오지만 ‘조철봉’과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필자 생각에만. 대부분 소설집이나 시집의 작가 사진은 일정한 틀이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이거나 돌린 상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의 흑백사진, 맨발에 걸터앉은 의자, 거기에 가끔은 짙은 담배연기, 뭐 그렇다. 그런데 소설가 김영하는 평범한 배경과 복장으로 누군가와 핸드폰 통화 중이다. 아니다. 핸드폰을 귀에만 대고 있지 통화중인 건 아닌 듯한 표정이다. 천리안 채팅에서 삐삐, 핸드폰에 걸치는 작가의 시대적 특징을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가 주로 접해왔던 대형, 노 작가들의 소설과 배경이나 장치가 다른 건 당연할 것이다. 정신 없이 빠른 호흡, 간결한 단문, 글로 그리는 그림 같은 심리묘사. 그러니 숨가쁠 일이 없어 좋다. 읽다 보면 끝이다. 헤리포터를 따른 듯 몽환적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게 사실은 몽환이 아니라 은유일 뿐이다. 우리가 애써 눈감아 버리는 불편한 현실, 그러니까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파고다 공원의 노숙자는 사실 ‘투명인간’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가장의 불행한 소식에 내일 닥친 곗돈과 큰아이 등록금 걱정이 앞서는 것은 좀 지독하긴 해도 100%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는 걸, 우리, 알잖은가.
그는 예리한 만큼 풍자와 유머도 송곳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이-젊음의 기준 숫자는 특별히 없다. 이 소설을 읽고 공감하면 젊다-들의 심리와 현실을 정확하게 헤집는다. 결론은 아무리 성에 안차는, 한심한 그들일지라도 인간적인 사랑과 진실, 꿈이 있다는 것, 김영하는 그것을 따듯하게 껴안는다.
누구의 인생도 100% 창조적이다. 우주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자기만의 세계, 영원히 혼자서 가져가야 할 ‘당신만의 달’이 지금도 떠있다. 눈을 감고 잘 찾아보라. 달이 보인다. 비록 엿 같을 지라도 어쩔 수 없는 당신의 달. 19금이다. 대사가 가끔 너무 쿨한데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용이 좀 어려울 수도 있다. 요즘 아이들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대학생 정도는 돼서 읽는 게 좋겠다.
마지막 한마디 더. 남자의 로망은 ‘자동차, 시계, 만년필’이라고 어떤 기업이 선전해왔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젊은 소설가 김영하가 보는 남자의 로망은 오직 하나, 딱 그 자세의 그것이다. 아닌가?!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진짜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