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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강덕수 ‘속도전’에 하이닉스 휩쓸릴까?

[심층진단] SKT와 인수경쟁…시장반응 싸늘해도 기대되는 이유

이진이 기자 기자  2011.07.12 10: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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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STX그룹이 M&A시장 문을 또 다시 두드렸다. 이번에는 반도체 사업이다. 그룹 지주사격인 STX는 지난 7월8일 SK텔레콤과 올해 시장 최대어로 손꼽히는 하이닉스 인수전에 동참했다. 하지만 STX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예년 같지 않게 싸늘하기만 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보니 자금력 동원과 반도체사업 경험이 전무하다는 게 가장 크다. 바꿔 말하면 성공적인 하이닉스 인수에는 자금력 등 치밀한 전략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일까. 재무통으로 불렸던 강덕수 회장(사진)의 포석이 궁금하다. 강 회장이 가진 숱한 경험이 이번 인수전에 어떻게 녹아들지 살펴봤다.

STX가 지난 8일 하이닉스 매각주간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에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STX는 실사를 거쳐 본 입찰 참여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특히, 합리적인 조건과 가격 제시로 무리한 인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STX 측은 “실사과정을 거쳐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중동 국부펀드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본 입찰에 참여할 경우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과 우량자산 매각 등을 통해 무차입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TX컨소시엄의 주체는 그룹 지주사격인 STX가 되며, 컨소시엄에서 STX는 지분율 ‘50%+α’로 경영권은 STX가 갖고, 중동 국부펀드는 재무적투자자(FI)로 경영상황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이닉스 인수 성공 위한 해결과제 셋

상황은 이렇지만 STX가 헤쳐 나가야 할 관문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인수전에서 자금력이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크다. 하이닉스 인수자금은 2조5000억~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STX는 현재 현금성 자산 3조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순차입금 규모가 7조5400억원, 부채비율이 458.4% 달해 무리한 인수자금 조달은 그룹의 재무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STX는 우량자산 처분과 함께 중동 국부펀드를 재무적투자자(FI)로 끌어들여 50%씩 투자한다면 자금여력은 충분하다고 밝혔지만, 자회사들의 유동성을 고려할 때 현금성 자산을 모두 인수전에 투입할 수 없다.

게다가 경영권 확보가 가능한 상태에서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인수가격이 높아진다면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한 CJ그룹의 경우 주당 20만원을 써내며, 대한통운 주가 13만원을 크게 뛰어넘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50% 가량 붙은 셈이다.
 
앞서 STX는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인수의향을 밝혔지만, 재무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인수에서 무차입 인수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주주들과 회사채 시장 등에서 비판이 일고 있는 등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주가는 시장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볼 수 있다. 하이닉스 인수의사를 밝힌 지난 6일 STX 그룹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STX는 낙폭을 다소 만회해 1% 가까이 하락했고, STX조선해양은 5.87%, STX엔진과 STX메탈도 3~4% 급락했다. 피인수 대상인 하이닉스는 5% 넘게 내렸다. 

이 뿐만이 아니라, 반도체사업 특성상 매년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다. 하이닉스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히던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될 경우 투자금 투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시장에서는 향후 10년간 최대 60조원의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사업 경험이 없다는 점도 STX의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 ‘낙관’을 경계하게 한다. 과거 동부그룹이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고전한 사례가 있기 때문. 반도체사업이 STX의 주력사업인 조선‧해운 사업과 시너지효과가 없는 데다 경기변동 주기가 비슷해 리스크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인수 가능성을 어둡게 보는 이유다.

◆M&A 귀재 실력발휘 기대

강 회장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M&A 귀재다운 면모를 이번 하이닉스 인수전에 그대로 녹여낼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강 회장은 M&A를 통해 그룹 출범 10년 만에 STX를 자산총액 22조원, 재계순위 14위 기업으로 일궜다. 지난 2000년 쌍용중공업 최대주주에 오른 뒤 △201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8년 아커야즈(현 STX유럽) 등을 차례로 인수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있었고, 스스로 이 회사를 인수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는 성공했고, 이어 잇단 기지를 발휘하며 계열사 확보 역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M&A 성공의 밑바탕에는 신속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속도경영’이 한몫했다. 기업공개(IPO) 등으로 투자금을 신속하게 회수하는 전략도 그의 전략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그는 범양상선 인수 당시 4200억원에 인수한지 10개월 만에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시켜 3800억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보다 해운회사 주식가치를 높게 평가하던 해외시장을 공략한 강 회장의 금융 노하우가 발휘된 것이다.

이번 하이닉스 인수전에서 강 회장은 이미 첫 발을 내딛은 모양새다. STX유럽은 지난 8일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STX OSV 지분 일부 매각을 통해 25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현금성 자산 매각을 통해 인수자금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STX의 하이닉스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을 때 그의 또 다른 전략가적 기질이 시장의 우려를 어떻게 씻어낼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