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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 대립각엔 오랜 ‘싸움의 법칙’이…

[심층진단] 정․재계 신경전…정권말에 건드리면 늘 강력 반발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7.04 09: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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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정치권과 재계가 심한 갈등을 빚고 있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포퓰리즘 논란’이라고 하고, 정치권에서는 ‘대의기관인 국회 경시이자 국민 무시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번 갈등은 단순히 양쪽의 자존심 싸움으로 요약할 순 없을 것 같다. 청와대의 봉합 노력만으로 유야무야되기에는 당장 정치권이 입은 상처가 크고, 재계를 자극할 만한 이야기를 모두 빼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 흐름이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QE2) 만료 후 회복세 둔화 등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세계 경제 위기는 일단 극복되었지만,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나 수출둔화 등 문제를 안고 있어 연착륙을 자신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재계가 민감할 만한 문제를 계속 꺼내드는 패턴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은 예산 조성 필요성과 사회 현안이라는 점에서 우연히 수면 위로 떠오른 감이 있지만, 실제로 이번 6월29일 지경위 공청회에서 언급된 이슈들은 감세 철회 논란 이상의 폭발력을 지닌 것들이었다. 불공정거래나 MRO(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업) 관련 논의, 대형유통업체 납품가 논란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지난 6월30일 당정간에 협의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중과세 추진’을 검토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액면만으로 보면, 이미 이번 여름 초입에 나온 정재계 갈등은 선거를 의식한 일시적인 재계 난타가 아니라 ‘재계 개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7월1일 새벽 재계측 인사들이 최저임금협상을 중단하고 사퇴 의사를 천명한 것도 재계가 이번 갈등을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초반에는 늘 엎드렸지만…

이 같은 대응은 유서 깊다. 이미 1992년 5월, 재계는 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런 반발은 1992년이 노태우 정권 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임기 반환점을 지난 정부가 핵심 이익을 뒤흔드는 구상을 할 경우 재계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라는 점에서 큰 관찰 가치가 있다. 이 해 6월 초 일부 언론에서 ‘정권 말기 번지는 누수’라거나 ‘재벌들이 대들다’(예를 들어, 같은 해 6월1일자 동아일보)라는 보도가 보이는데, 이는 일명 ‘신산업정책’에 관련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의 재벌 비판, 날카롭긴한데….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가 지난 7월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대기업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는 너무 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에는 기업인들이 경제발전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2, 3세 체제로 가면서 회사로 갈 돈을 편취해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는 인상을 주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보수라는 사람들이 부패와 무능, 얌체로 보인다면 심각한 일”이라고도 했다. 사진은 정 전 대표가 지난 6월12일 전북대에서 가진 특강 모습. 사진출처는 정몽준 홈페이지.
하지만 △차입경영방식을 개선하고 △상호지급보증을 축소하는 한편 △조립 대기업과 부품 중소기업간 효율성 제고 등을 골자로 한 신산업정책이 재벌(대기업)에 수용되기는 어려웠다.

당시는 투신사 사태로 ‘돈줄’이 옥죄어지던 시기다. 더욱이, 재계에서는 당시 조순 전 부총리가 한국은행 총재로 컴백하는 데 대해 일종의 재벌 길들이기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계로서는 금융실명제와 소득추계과세, 토지공개념 같은 정책 추진에 부담을 느꼈던 바 있고 이 같은 신산업정책이 정권 말에 추진되자 실력 행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같은 해 8월 전경련 측에서 언론을 상대로 “신산업정책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와 ‘휴전’을 하는 것으로 사실상 일단락지어진다.

만일 이때 신산업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됐거나 노태우 정권에서 금융실명제 등이 선제적으로 도입됐다면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재벌 개혁 수술이 좀 더 수월했거나 경제 투명성이 일찍이 높아질 수 있었겠지만, 재계와 임기말인 정권과의 힘겨루기는 이같이 매듭지어졌다.

YS 시절에도 재계는 초반에는 엎드리지만, 임기 말에 그것도 자기 핵심 이권에 메스를 들이대는 위협 상황을 만나면 정치권과 갈등을 빚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1994년 가을에는 당시 상공부 등 당국이 일명 재벌 업종 참여에 적극 개입해 훈수를 두는 등 재벌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당시 삼성의 승용차 사업이나 현대그룹의 제철소 사업 등은 모두 당국의 불허 방침으로 퇴짜를 맞는다. 여기에 ‘성역 없는 사정’을 내세운 YS정부는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을 수감하는데, 전경련 등 재계가 반재벌 여론을 우려, 몸 사리기 모습을 보인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다만, 이 같은 ‘몸조심, 입조심’ 패턴은 다시 정권 말에 가면 변화를 겪는데 삼성의 자동차 사업 허가 등으로 관계가 부드러워진 데다 외환위기 국면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됐기 때문에 정권 내지 정치권과 재계의 대립 구도로만 이해하기는 적절치 않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우그룹 해체 등 재계 손보기를 한 DJ 정권에서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재계가 임기 초반에 대립각을 세우고 나서기 어려웠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재계는 정권 만료 1년여 전인 2001년 봄 정권과 ‘재벌 논쟁’을 빚는다. 그해 5월16일 열린 정재계 간담회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는 대기업 규제 완화 논란의 대립 구도를 한결 누그러뜨리게 된다. 이 간담회에서 정부는 재벌개혁의 대원칙을 흐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기업의 투자와 수출을 늘리기 위한 대책 마련 제스처를 보이고, 재계 역시 정부 측이 강력히 거부감을 나타내는 출자총액제도 폐지 등의 요구 등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들어선 참여정부는 아예 재계와 언론 등과 늘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도 한 시기다.

선심성 정책 우려쯤이야?

결국 재계는 민주화 이후 임기가 정해져 있는 단임제 정부들과 대립하는 데서 크게 손해를 보거나 (외환위기 등 특수한 사정 속에서 일부 기업들을 빼고는) 정권 의도대로 ‘대수술’을 당하는 경우는 겪지 않아 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권들이 재계를 상대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좌클릭을 하려 할 때마다) 정권 초기에는 몸 사리기로, 중후반기에는 갈등 양상을 만들며 대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재계는 정권과도 직접 ‘밀고 당기기’를 통해 이익 지키기를 해 온 노하우가 있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던 MB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지금, 야당이나 여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파상 공세에 어느 정도 위기의식을 느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대응 방향을 잡기에 혼란스럽기로 따지면, 지난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애초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했다 공정사회·친서민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MB정부의 행보나 현재 정치권 움직임보다 더 까다로웠다고도 할 수 있다.

좌측 깜박이를 넣고 우회전을 했다는 평을 듣는 참여정부는 물론 ‘정체불명 정권’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바 있는 국민의 정부(2001년 당시 성균관대에 근무하던 故 김일영 교수는 “정책의 내용에 있어 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와 관치경제, 포퓰리즘이 혼재된 ‘정체불명의 정권’”이라는 시론을 언론에 게재한 바 있다)보다 오히려 포퓰리즘으로 비판하기에 더 쉬운 상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야 내부는 각종 현안에서 의견이 갈려 이념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법인세 인하와 고환율·저금리 정책의 혜택을 누린 재계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그런 한켠에서도 이들이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민생 정책에 강도 높은 ‘포퓰리즘 논란’을 시도할 수 있는 틈새다. 더욱이 정부는 여야 경쟁은 물론,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정권 말 갈등(레임덕 우려)까지 드러난 상황에서 이 같은 모든 변수에 눈치 보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번 정재계 갈등은 과거 신산업정책 갈등이나 재벌 논란 등 여러 정권 말기 정재계 힘겨루기처럼, 논의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아쉬움을 남기며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차례의 전환기적 상황이 사장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