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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

프라임경제 기자  2011.07.01 0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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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전 세계 160 여 개 나라 66 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한 우리시대 가장 사랑 받는,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십대 시절의 정신병력과 청년 시절의 반정부 활동, 히피, 저널리스트, 락스타, 배우, 희곡작가, 연극연출, 희곡, TV프로듀서, 음반회사 중역, 그리고 작가’. 책 서두에 출판사에서 소개한 작가의 대충 경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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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정신이 없다. 범람한 강물 같은 인생인데 100개의 토막 에세이 모음인 ‘흐르는 강물처럼’은 범람 후 안정을 찾은 거대한 강물의 담담한 삶의 성찰이다. 폭풍 같은 한 시절을 보낸 노작가의 깨달음이 삼박 사일 끓여서 우려낸 한 사발의 담백한 사골국물로 남은 느낌이다.

우선 프롤로그에서 ‘작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영락없이 필자가 ‘책보기’를 시작했던 이유를 밝혀주고 있어 무엇보다 반갑다. “작가라는 사람은 기호학, 인식론, 신구체주의 같은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명사에 조예가 깊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문학비평을 한다. 비평가로서 동료들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러나 그가 쓴 평론의 반은 외국 작가의 인용구로, 나머지 반은 ‘인식론적 단락’이니 ‘융화된 2차원적 삶의 비전’같은 표현 따위로 점철되어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감탄할 것이다. ‘참 똑똑한 사람이야!’ 하지만 막상 책을 사기는 꺼린다. 인식론적 단락 앞에 쩔쩔매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프롤로그가 이런 만큼 흐르는 강물처럼 참말로 읽기가 편하다. 100 편의 짧은 글들은 모두 작가가 한평생 직접 겪었거나, 들었거나, 깨우쳤거나 하는 일들이다. 창작이나 공상이 아닌 체험담이라 피부에 팍팍 와 닿는데 내용으로 보자면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와 차동엽 신부의 ‘무지개원리’가 합쳐진 책이라면 딱 맞을 것 같다.

조그만 삶의 조각들로부터 예리하게 톺아 낸 ‘편하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 좌절과 고난을 극복 하라는 정신적 위로와 유머’를 통해 작가가 끊임없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랑, 관용, 배려, 감사’이다. 독자는 그 네 가지를 가지고 살면 흐르는 강물처럼 마음도 삶도 편해지겠다는 설득을 순간순간 당한다.

작가는 손자에게 연필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한다. 연필은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 신이 있어 당신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연필은 깎아야 계속 쓸 수 있다. 사람도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더 낳은 사람이 된다. 연필은 지우개가 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연필의 핵심은 외피가 아니라 심이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마지막으로 연필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작가는 산책을 좋아한다. 스틱을 구해 ‘노르딕 워킹’을 흉내 냈는데 몸의 반응이 너무 좋아 계속 즐겼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노르딕 워킹’의 엄격한 규칙들을 발견했다. 작가의 현재 방식은 엉터리였다. 규칙을 모두 지키려 노력했다. 규칙에 얽매이다 보니 경치와 명상과 아내와의 대화가 실종됐다. 일주일 후 작가는 규칙을 포기했다. 사람의 몸은 직관적으로 스틱에 적응하고, 균형을 잡는다. 작가는 칼로리를 46퍼센트 더 소모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신의 방식대로 걸으면서 긴장을 풀고 행복을 느낀다며 우리는 왜 매사 규칙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냐고 묻는다. 등산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무시하고 남의 페이스에 맞춰 무리하다 리듬을 잃은 사람이 가장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참선과 고양이’에 대한 일본의 고사 이야기는 목적과 수단, 본말이 전도된 인간 삶의 모순을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영화 <모세>에서 찰턴 헤스턴이 지팡이를 번쩍 들자 바닷물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는 건 성서와 다르다. 신이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말하라, 앞으로 나아가라고.’ 라고 말했고, 그들이 움직이고 나서야 모세는 지팡이를 들었다. 홍해가 갈라진 건 그 다음이다. 결국 길을 갈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길은 열리는 법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욕을 가진 자 욕을 주고, 사랑을 가진 자 사랑을 주고, 칭찬은 칭찬, 증오는 증오를 준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는 법인데 ‘당신이 가진 것은 무엇이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하느님은 눈이 나쁘신 척 한다. 사람들의 잘못을 잘 안 보인다고 하시며 용서해 주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는 돋보기를 꼭 챙겨서 보신다. 그러니 ‘살며 사랑하며’ 해야 한다고, 남풍에 실려 먼 초지에 비를 뿌려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고 사막으로 내려온 어린 구름이 그의 삶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어린 모래언덕에게 바침으로써 일어난 ‘오아시스’ 대목에 이르면 ‘여우를 길들이는 어린왕자’처럼 독자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방파제에서 작가가 손으로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는 갈매기의 체험은 사랑이 얼마나 기적을 만드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불가능한 것을 변화시키고,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해 준다고 끝없이 되뇐다.

네팔에서 수도승을 만났다. 점심 때가 되어 승려는 바랑에서 바나나를 꺼냈다. 썩은 바나나여서 버렸다. 제때 쓰지 않아서 흘러가버린 인생, 이제 너무 늦었으므로. 초록빛 바나나, 다시 바랑에 집어넣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인생이니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잘 익은 바나나, 이것이 현재다. 두려움이나 죄의식 없이 맛있게 먹는 법을 배우란다. 나이보다 훨씬 왕성하게 활동하는 브라질 노르마 할머니의 비결은 마법의 달력이었다. 그 달력에는 날마다 그 날짜에 일어난 좋은 일, 감사할 일이 한가지 적혀있었다. 달력을 보여준 당일은 ‘소아마비 예방 백신이 개발된 날’이었다.

삶은 뫼비우스 띠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며, 앞이 뒤고, 뒤가 앞이다. 사랑, 관용, 배려, 감사가 뒤섞여 뱅글뱅글 돌다 보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신은 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도 버터 바른 반대쪽이 바닥에 닿도록 하는 것에서조차 그것을 항상 보여주고 계신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