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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프렌들리 어디가고’…정‧재계 갈등 2라운드

재계, 충돌 포인트 피하지만 불편한 심기 정치권에 고스란히 전달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6.28 14: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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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재계 갈등이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정치권의 재계를 향한 쓴소리와 이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며 눈길을 끈 가운데, 재계가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시간 끌기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재계의 대변인’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몸을 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계가 일방적으로 속앓이만 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포퓰리즘 정치권’에 맞서는 방법을 다양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재계 옥죄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인식 하에 더 이상 밀리면 곤란하다는 긴장감이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감세 철회 논란 등을 둘러싸고 정재계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29일 국회 공청회에 전경련 회장 참석 여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같은 정재계 갈등은 ‘비지니스 프렌들리 정권’을 표방하고 나선 MB정부 하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뉴스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 회복에 필요한 고용 창출 등 ‘통 큰’ 지원을 (특히 대기업에 해당하는) 재계가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다는 풀이가 나오면서 양쪽의 밀월 시대는 끝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권 반환점을 돈 청와대가 레임덕 방지를 위해 공정 사회 기치를 내걸고, 서민 사회 챙기기에 나서면서 이 같은 잡음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일부지만 대기업에 대해 검찰 등 사정 당국 칼날이 겨눠지고, 이익공유제 등의 개념이 언급되면서 양측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본심이 왜곡돼 전달됐다는 유감성 발언으로 ‘수습’됐지만, 최근에는 다시 전경련과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등의 사회 현안이 충돌 원인이 되고 있으나, 넓게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재계 길들이기(일각에서는 포퓰리즘으로 비판)를 하려는 정계와, 더 밀리면 곤란하다는 재계의 판단이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이 도로 재벌” 정면공격에 외연 넓혀 힘빼기 대응?

우선 최근 감세 철회 관련 정책 혼선이 빚어지는 것과 관련, 전경련 허창수 회장은 지난 21일 정치권의 감세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며 날카롭게 각을 세웠다.

여기에 민주당이 “마음도 넉넉한 부자가 되라”고 비판하고,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26일 “대기업은 다시 재벌이 되어버렸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대기업 공격에 나섰다. 정 의원은 “재벌개혁 없는 선진화는 불가능하다”며 “재벌개혁은 한나라당이 ‘부자정당’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서 “경제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서 후퇴를 거듭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재벌의 비대화”라고 겨냥했다.

발언이 나온 결은 다소 다르지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노사갈등과 관련, 매번 면담 요청을 피하는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 대해 “나한테도 이러니 노동자에게는 오죽했겠느냐”고 쓴소리를 한 것도 정계에 재계 비판론이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있는 방증으로 읽힌다.

이 같이 정계가 재계에 반발하면서, 재계는 직접적인 설전은 피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기업이 다시 개혁 대상의 대명사인 ‘재벌’로 돌아가고 있는 말까지 나온 상황에서 충돌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계산이 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8일로 예정됐던 감세정책에 관한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가 정계 움직임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은 아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경제단체들이 정치권의 반값등록금, 법인세 감세철회 등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한 데 대해 의견을 듣겠다며 전경련 허 회장을 비롯,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이희범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을 상대로 공청회 참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29일 열릴 예정인 이 공청회에 전경련은 실무자를 내보낼 방침을 사실상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으로 설전’을 벌이는 것도 피하겠지만, 정치권의 군기 잡기에 호락호락 응하지도 않겠다는 뜻을 간접 전달한 셈이다. 이미 국정감사 증인 소환을 해외 출장 등으로 피해 온 재계 관행을 활용하는 것이다.

무작정 시간을 끌며 유야무야 없던 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그런 내심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7일 정치권이 추진 중인 반값 등록금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반값 등록금을 현재 논의대로 추진하면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를 국민들에게 ‘검증’받겠다고 나선 셈이다. 아울러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을 필요로 하는 반값 등록금 문제를 분쇄함으로써, 감세 철회 논란 등의 필요성을 미리 제거하겠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여기에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두부를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의 전경련 측 파상 공세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해프닝’이라기보다는 공정 사회 논의와 관련, 필요 이상으로 대기업 옥죄기를 하는 정부와 정계 논리에 재계(대기업 중심)가 목소리를 내는 중에 일어난 파열음으로 읽힌다.

이렇게 정재계 충돌의 전선이 경제 정책 전반에서부터 각종 산업 영역 이슈 등으로까지 확대되면, 양상은 ‘시간 싸움’이 될 수 있다. 정해진 임기를 트랙으로 삼는 정계가 임기가 없는 시장을 적으로 돌리는 데에는 부담감이 없을 수 없다.

정치권 논리에 일일이 공박, 전선 넓혀 “권력은 시장에 있다”

재계는 각종 세금이나 규제의 생기고 없어지는 상황, 그 실질적인 집행 내역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부담을 지는 피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여차하면 쓸 데 없는 지출이나 잘못된 제도를 관리하겠다는 뜻을 비추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제는 묻힌 발언이지만, 전경련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지난해 7월 제주도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던 점은 현재 재계가 전선을 넓히는 데 사실상 한계를 두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단초가 된다. 정 부회장은 “국가 중대 사업이 당리당략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4대강 사업도 반대 세력의 여론몰이로 인해 혼선을 빚고 있다”며 정치권을 거침없이 비판한 전력이 있다.

재계와 정치권의 이번 갈등은 따라서 단지 총선을 앞둔 목소리 내기와 방어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부 정재계 스타 플레이어들의 설전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1라운드보다, 하반기(내년 총선 직전 기간) 내내 불편한 관계를 맺을 2라운드의 파장이 더 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