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요즘 전당포 ‘철창 흥정’ 없어요”

[르포] 최초 법인등록 전당포에선…‘노트북 맡기고 50만원 대출’

조미르 기자 기자  2011.06.24 16:03:5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금융권으로부터 돈 빌릴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부업체로부터도 퇴짜를 맞는 극빈계층, 혹은 금융권으로부터 돈 빌릴 처지가 되지 못 하거나 그런 절차가 싫고 귀찮은 이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전당포다. 돈 빌릴 ‘최후의 수단’ 전당포는 예전부터 ‘궁핍의 애환’이 짙게 묻은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 전당포가 많이 달라졌다. 요즘 전당포들은 철장을 사이에 두고 물건과 돈이 오가던 ‘우울한 흥정’의 장소가 아니다. ‘잘 나간다’는 강남의 한 전당포를 찾아가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봤다.        
 
6월21일 오전 10시경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 갤러리로 가득한 주변에 한 전당포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로 법인등록을 한 전당포 A사. 깔끔한 고급  건물들 사이에 전당포라니…. 하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이돌 가수 아이유의 ‘좋은 날’이 은은하게 들린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된 방으로 들어서자 전당포 직원이 나와 1:1 상담 자리를 마련한다. 곧이어 다른 직원이 음료수를 건넨다.

“고객님, 건강에 좋은 토마토주스입니다. 이거 먼저 드세요.”

영화나 TV에서 보던 어두운 전당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고급 백화점 안내보다 더 친절한 접대였다. 

   
A사 고객 접견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흥정하던 종전 전당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백화점 안내보다 친절한 접대

이날 오후 4시 이곳 전당포 문을 들어선 대학생 이정현씨(20대초반·여·가명)는 이 전당포 방문이 벌써 세 번째라고 했다. 하지만 이씨 얼굴은 그리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우울한 얼굴이 아니었다. 전당포와 거래를 해본 고객이라면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만도 한데,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그런 기색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 곳 전당포 관계자에 따르면, 예전에는 전당포에서 먼저 고객에게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그렇다보니 보니 고객이 상환날짜를 놓치는 바람에 맡긴 물건을 빼앗기는(?) 경우도 빈번했다. 상환일을 넘긴 고객이 뒤늦게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다가 철창을 사이에 두고 전당포 주인과 격한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 전당포’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곳 관계자가 설명했다.

“고객과의 끊임 없는 소통으로 상환률을 높였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을 보면 알겠지만, 극빈층 고객이 아닙니다. 간단한 절차로 융통을 해갈 수 있는 편리한 곳이죠. 고객 만족도가 빠르게 올랐고 방문 고객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업체는 다른 전당포와 달리 담보물품을 감정하고, 대출가액을 책정한 다음 담보대출약정서를 작성하면 절차가 끝이 난다. 방문부터 송금까지 10분대에 끝난다.

이씨는 이날 담보물품으로 S사 노트북을 가져왔고, 15분 만에 50만원을 대출받아갔다.

A사는 업계 최초 ‘법인등록’ 기록을 갖고 있다. 따라서 모든 거래는 투명하게 국세청에 신고 된다. 디폴트 수익이 절대화되는 기존 전당업 시스템에서는 거래내역 공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업체는 고객에게 돌아가야 할 부분을 돌려주고, 그 과정을 상세히 공개한다.

이 전당포의 금고에는 다양한 물품들로 넘쳐났다. 미술작품에서 고급와인, 카펫, 오토바이, 카메라 등 폭넓은 상품이 보관돼 있었다. 금, 은 보석류가 주를 이루던 기존 전당포와는 다른 모습이다. 

   
한 대형 대부업체가 최근 전당포 A사에 대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기존 전당포 영업 스타일에서 탈피, 타깃마케팅을 통한 새로운 시장개척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사진은 A사가 위치한 서울 청담동 소재 빌딩.
◆왜 전당포 찾을까?

전당포를 찾는 고객들은 두 형태로 나뉜다. 먼저, 자금이 필요한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전당포를 이용하는 경우다. 자금이 막히면 주로 신용대출 또는 부동산대출을 찾는데, 여의치 않을 땐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이용한다. 대부업체나, 최악의 경우 사채를 쓰기도 한다. 전당포를 찾는 경로는 이도저도 안될 경우, 그 후였다.

신용에 민감한 고객들이 전당포를 찾는 경우도 있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신용기록이 남는다는 단점이 있다. 전당포의 경우 ‘신용’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신용관리가 필요한 이들이 편리성 보다는 안정성 때문에 전당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전당포를 방문한 대학원생 김상훈씨(30·남)씨는 판매가 2억원 상당의 루비반지를 갖고 왔다. 몇달째 밀린 월세가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했다. 현재 김씨는 신용불량자라 다른 대출수단은 이미 끊긴 상태였다. 결국 김씨는 전당포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이 담보물로 어느 정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 했지만, 담보물의 가치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  
이 전당포가 100%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전당포의 물품 가격책정 때문에 고객이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4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가격책정 과정에서 얼굴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600만원짜리 시계를 왜 250만원 밖에 안 쳐주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적어도 반 이상은 가격을 잡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평했다.

이런 고객 불만에 대해 전당포는 “시장을 한번 둘러보라”고 조언한다.

전당포 측은 “업계에선 암암리에 정해진 시세가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다”며 “고객에게 이렇게 설명하면 대개의 경우 수긍한다”고 설명했다.

   
‘어느 것이 전당포 간판일까’ 간판 분위기를 보자면, 전당포가 아니라 카페 같은 인상을 풍긴다.
◆기존 전당포들은? “문 닫을 지경”

대부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존 ‘전당포’의 모습은 어떠할까. 종로·명동 주변 전당포의 모습은 현저히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일반 전당포의 방문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고, 심지어 간신히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다.

종로의 한 전당포 주인은 “성인오락실이 사라진 이후 손님들이 계속 줄고 있다”며 “요즘엔 하루에 손님 한명도 안 오는 게 대부분이라 이젠 거의 문 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인은 “이런 사정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주인의 말은 어디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실제 종로와 명동의 전당포에서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한 달에 손님 7~8명이 전부인 전당포도 있었다. 또한, 이들 전당포는 대출보다는 중고명품 위탁판매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사실 일반 전당포에서는 여전히 금·은 등의 귀금속만 취급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담보는 한 달. 주 고객은 30대에서 50대로 이뤄진다.

명동의 한 전당포 주인은 “요즘 누가 금 팔려고 여기까지 와서 팔려고 하겠냐”며 “금은방과 겸업하고 있어 의무감으로 전당포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 문 닫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다음은 이 곳 전당포 고영모 대표(사진)와의 일문일답.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 명품시계, 다이아, 그림 등 모든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캐피탈회사에서 잠시 근무한 적이 있는데, 회사 및 부동산담보대출이 주업무였다. 그때, 문득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들도 담보상품으로 개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충분한 시뮬레이션 결과 수익성을 확신하고 창업을 하게 됐다.

-‘전당포 업계 최초의 법인등록’ 기록을 세웠다고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법인등록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기보다는 법인 이후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디폴트 품목들에 대해서 판매 처리를 하고 대출건을 상계 처리해야 한다. 현행 세법상 구매 계산서가 없는 품목들을 판매하게 되니 부가세 과다 부과 문제가 발생해 세무서 및 국세청에 일일이 서면질의를 넣어야 해서 꽤나 고생했다.

-가계대출이 정부가 걱정할 만큼 늘고 있다. 향후 전당포 수요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사실 전당포에 대한 불편한 인식 때문에 선진화된 전당금융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잠재고객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잠재고객들이 선진화된 전당금융의 존재를 인지할 때 그 수요는 폭발적일 것이라 예상한다.

   
고영모 대표이사
-고객이 날짜기일을 제대로 못 지킬 경우 상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마련해놓고 있나.
▲우리의 전산시스템은 이자기일부터 8일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문자안내를 하고 있다. 연락이 없으면 유선 상으로도 추가적으로 체크를 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날짜기일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지키지 못할 경우는 거의 없다.

-전당포를 방문하지 않고, 홈페이지에서 무방문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아직 인식이 개선되지 않은 전당업 이용을 껄끄러워 하는 고객님들이 많다. 그런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무방문 서비스를 적용하게 됐다.

-예전과 비교할 때 전당포 업계 변화 중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과거에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주먹구구식의 전당포가 대부분이었다. 현재는 신개념 이미지를 내세운 수많은 전당회사들이 많은 곳에서 문을 열고 있다. 동종 업 키워드 광고만 보더라도 유래가 없는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전당금융 시장의 규모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해 있다.

-이곳 전당포의 하루평균 고객 이용률과 주요 고객층은.
▲현재 일평균 이용고객은 4~5명 정도로, 30대 후반에서 40대 남성분들이 주 고객층이다. 남녀 대비로 하면 남성이 65% 여성이 35% 정도다. 여성분들의 고객층은 주로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