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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7성급호텔 추진…“후손에게 죄 짓는 일”

[심층진단]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경복궁·여학교 앞에 호텔이라니”

이종엽 기자·전훈식 기자 기자  2011.06.24 11: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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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6월22일 조선 519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법궁인 경복궁 끝자락에 이색적인 현수막이 걸려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형 가로 현수막에는 ‘한진아! 경복궁과 여학교 앞에 7성급 호텔을 지어야겠니!’라는 내용이 내걸렸고, 1인 시위가 함께 진행됐다.

사연은 이렇다. 경복궁 동십자각 끝 자락 땅은 과거 미국 대사관 숙소부지 3만6000㎡로 지난 2002년 국방부로부터 삼성이 미술관을 짓기 위해 매입한 후 다시 이를 2009년에 한진그룹(대한항공)이 인수한 뒤 지상4층, 지하4층 연면적 13만7000여㎡의 규모로 7성급 고급 한옥호텔을 지을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날 1인 시위와 현수막을 내 건 인물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지난 2007년 MBC ‘느낌표: 위대한 유산 74434’ 프로그램에서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 캠페인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널리 알린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로, 문화재청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황 소장은 이번 미국 대사관 숙소를 비롯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 2002년,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을 짓겠다고 정부와 미국 대사관 측은 이번에 문제가 된 송현동 미대사관직원숙소 부지와 을지로 입구 미국 문화원 건물(현 서울시청 별관)과 덕수궁 터인 옛 경기여고 터와 교환했다.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이 지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뒤 황 소장은 뜻 있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중지를 모아 무려 4년 반을 싸워 결국 덕수궁 터를 지켜낸 인물이다.

그 황평우 소장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번에는 대한항공이 그 상대다.

   
황평우 소장은 서울 도심 역사문화공간에 대한항공이 호텔 건축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한항공에 특혜 베푼 셈”

현재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을 짓겠다고 한 부지는 경복궁과 광화문 국가상징거리와 인접해 있으며,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전통문화거리가 있어 일반 상업시설을 짓기에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있었다.

게다가 학교보건법상 호텔이 유해시설로 규정되어 있는 만큼 주변의 덕성여중ㆍ고와 풍문여고와의 직선거리가 불과 50여m에 불과한 점을 들어 중부교육청 심의결과는 물론 행정소송에서도 호텔 건립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다시 서울 고등법원에 항소에 법원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지난 5월31일 국무회의에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에서도 관광호텔의 건립이 가능하도록 관광 진흥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관광 진흥법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외에도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될 관광숙박시설 확충지원 등에 관한 특별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는 등 사실상 호텔 건립이 가시화 된 것이다.

황 소장은 “이번 호텔 건립은 자칫 자본과 권력에 굴복해 특혜를 베푸는 꼴이 됐다”며 “주변 지역을 감안해 면밀한 발굴 조사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 지역 인근에는 고종황제의 후궁인 삼축당과 광화당의 별궁이 1970년대 까지 운영되면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사 한번 이뤄지지 못한 곳이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 측은 호텔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학계와 연계해 지속적인 1인 시위와 홍보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속박물관 이전 부지로 활용해야

문제는 또 있다. 바로 호텔 옆에 학교가 인접해 있어 교육 환경에 침해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황 소장은 “중부교육청 심의결과는 물론 행정소송에서도 호텔 건립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국토해양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축법과 관광 진흥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면서까지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준 것은 대한항공을 위한 사실상의 특혜”라고 밝혔다.

현재 대한항공 측은 해당 부지가 역사문화지구에 위치한 점을 감안해 문화공간을 갖춘 전통문화 명품 관광타운으로 꾸미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해당 호텔은 저급 호텔이나 여관과 달리 교육환경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청과 해당 학교 학부모의 입장은 달랐다. 덕성여중, 덕성여고, 풍문여고 학부모들은 여학교 옆에 호텔 건립되는 것 자체가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고 이는 현행 학교보호법상 호텔은 ‘유해시설’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호텔 건립은 불가하다는 것.

중부교육청 역시 이들 학부모들의 입장과 현행법 그리고 기타 여론을 감안해 호텔 건립 불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사건에 황평우 소장은 특정 기업을 위해 과도한 특혜가 제공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소장은 “현재 부지는 경복궁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흉물로 자리 잡고 있는 민속박물관 이전 부지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며 “높은 담벼락으로 국민들과 단절됐던 이곳이 이제는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9년 전 소중한 문화유산을 살리기 위해 싸웠다. 후손에게 떳떳하고 죄 짓지 않는 조상이 되기 위해 이제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역사문화경관과 사랑스러운 우리 자녀들의 안정적인 학습권 보장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