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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감기약 슈퍼판매’ 복지냐 밥그릇 사수냐

조민경 기자 기자  2011.06.23 18: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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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감기약, 진통해열제 등 가정상비약을 슈퍼에서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멀었다’가 정답이다.

지난 6월15일 보건복지부가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의약품재분류소분과위원회(이하 소위) 1차 회의에서 박카스 등 44개 일반의약품을 약국 외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의약외품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덩달아 오른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에 대한 기대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박카스 등이 슈퍼나 편의점에서 판매될 경우 약국 내 매출이 감소할 것을 우려한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가 44개 일반의약품의 의약외품 전환에 반기를 들면서 감기약, 해열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는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도 이유지만 실질적인 문제를 파고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의료계와 약사계의 지지부진한 밥그릇 싸움에 소비자들만 애먼 상황에 놓인 모양새다.

지난 21일 ‘약국외 판매 의약품’ 도입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을 추진하기 위해 2차 회의가 열렸고,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해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의약품 재분류 대상 품목 선정’이 안건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도 의료계는 약국외 판매 의약품 도입을 위한 약사법 개정안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약사계는 의약품 재분류 대상 품목 선정 안건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만 높았다.

의료계는 현행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는 의약품 분류 체계에 약국외 판매 의약품 분류항목을 도입해 약국외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약국외 판매 의약품의 경우, 감기약이나 해열진통제 등 대부분이 일반의약품에서 전환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과 직결되는 전문의약품과는 큰 관련이 없다. 

반면, 약사계는 약국외 판매 의약품이 분류 체계에 도입될 경우 자신들이 판매권을 쥐고 있던 일반의약품을 슈퍼, 편의점 등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돼 매출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약국외 판매 의약품 분류 도입보다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의약품 재분류 대상 품목 선정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약사계를 대표하는 약사회는 앞서 20일 사후피임약과 비만치료제 등 전문의약품 20개 성분 479개 품목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의약품 재분류 신청서 1차분’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총 12명으로 구성된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의료계와 약사계, 공익대표가 각각 4명으로 이뤄져있다. 이 가운데 의료계와 약사계가 각각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안건 논의가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이날 2차 회의는 안건 논의 순서를 정하지 못해 논의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됐다.

의료계와 약사계가 날선 신경전을 펼치며 회의 불참 얘기까지 나오면서 회의는 한 차례 정회되는 사태까지 악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양측 모두 일단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회의 진행 차질에 대한 우려는 수그러들었다. 복지부는 한 발 물러서 오는 7월1일 예정된 3차 회의에서 두 안건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기로 한 채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국민의 의약품 구매 불편 해소 문제가 의료계와 약사계의 제 밥그릇 지키기에 등 떠밀려 실망감으로 되돌 아온 꼴이다.

그나마, 복지부가 처음으로 나서 감기약과 진통제 등 가정상비약을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장소에서 판매하는 약사법 개정안 구상을 내놓고 가정상비약 구매 불편 해소 의지를 보인만큼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기대해볼만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근래 들어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