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진짜 감옥 이야기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의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있다’는 데도 입시 감옥에 갇혀 별볼일 없었다, 부모님 강압에 가수의 길을 접고 법대를 갔다, 옆집 순희가 아직도 내 맘속의 풍금이라는 식의 넋두리가 아니라 20대 꽃 같은 청춘에 전주교도소로 징역간 시절의 역사서다.
가벼움과 의리를 값지게 여긴다는, 그러나 겁도 많았고 시력도 형편없던, 기타와 노래를 좋아해 대학가면 밴드를 꿈꿨던 저자. 군사독재정권이 대학 교정에 사복경찰, 일명 ‘짭새’들을 상주시켜 벤치의 대화를 엿듣던, 언론엔 그들이 허락한 기사와 ‘땡전뉴스’만 나오고, 제대로 된 실상은 어두운 밤 등사기로 찍어낸 지하신문에서나 접했던 원시공화국.
피 끓는 청춘들은 민주공화국 코리아를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항의 불덩어리에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다. 그 불꽃의 중심에 딱 섰던 저자는 이른바 ‘386’의 중간 세대, 더구나 투쟁의 선봉에서 물불 안 가려야 겨우 밥값 좀 하는 것으로 치부됐던 서울대 사회학과에 결국은 제대로 걸려 들었다.
열악한 시력으로 뵈는 게 없어 날아오는 최루탄을 이마로 받아내던 어리버리(?) 저자는 86년 밀려드는 진압경찰로부터 학우들의 대피시간 확보를 위해 전방에서 버티다 퇴로 없는 겨울 빙벽의 관악산으로 튀는 바람에 꼼짝없이 잡히면서 ‘구속-집행유예-무기정학-복학-졸업-결혼-구속’의 가시밭길 청춘 10년을 보냈다.
이 책은 그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구속 되었던 3년의 징역살이, 아무리 감옥이지만 그곳에도 사람은 산다는 이야기다. 웃음과 감동이 묻어나고 기발한 창조가 난무한다. 칼, 끈, 종이는 유복한 징역나기의 3대 필수요소다. 그 중에 제일이 칼이다. 칼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칼만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칼은 어떻게 만드는가? 아무런 쇠붙이 하나만 구하면 된다. 나머지는 저자가 항상 말하듯이 징역생활의 무기는 시간싸움이다. 세월아, 네월아 벽에 갈면 된다. 끈은 감방 간 소통의 도구로 요긴하다. 가는 끈은 면장갑을 풀어 잇고, 동아줄은 란닝구를 찢는다. 종이는 실내 인테리어와 엔터테인먼트에 필수다. 종이만 있으면 장롱과 책상, 화투까지도 만든다. 밥풀떼기를 풀 삼아 종이를 덧붙여 만드는 장롱의 설계, 마름질, 표면처리의 과정이 흡사 수십 년 장인의 작업을 지켜보는 듯 하다. 저자의 가르침대로 가는 실을 겹으로 꽈서 나무토막을 톱질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나무가 잘린다. 에프킬라와 솜, 라이터돌로 불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 꼭 해볼 참이다.
그러나 ‘체험! 징역의 현장’ 최고 압권은 역시 도박이다. ‘우유곽 종이에 미대생이 그린 화투로 고스톱을 친다. 어느 설 연휴, 면회도 편지도 끊기는 콘크리트 감옥에서도 잃는 이는 마냥 열 받고, 따는 이는 그저 즐겁다. 반전에 반전, 환호와 탄식. 혹시 누구에게 특별면회라도 왔다면 그런 사람 없다고 교도관을 돌려보낼 판이었다.’에 이르면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로빈슨크루소가 울고, 쇼생크탈출도 능가하겠다. 그러니 ‘1박2일’은 교도소로 가고, 라디오스타는 신, 이, 홍 아무개와 새다리 씨를 부르고, 무릅팍도사는 저자를 부르라!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어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랴. 감옥은 감옥이고 징역은 징역이다. 진하디 진한 눈물과 연민, 고통의 현대사가 처음과 끝을 관통한다. 먼 길 달려온 늙으신 아버지의 뒷모습, 유리창 사이로 애잔한 눈빛만 주고받았을 신혼부부, 해외출장 간 아빠를 그리는 어린 아들과 그를 달래는 젊은 새댁, 다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뿐인 청년이건만 죄수복과 수갑, 포승줄에 묶인 그를 슬슬 피하는 병원의 민간인들.
부산 동의대 사건으로 평범한 학생에서 무기수로 징역살이를 하던 윤 아무개 씨, 사실 이 책을 막 읽는 순간부터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오히려 저자가 아니라 그였다. 운명처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 가엾은 청년은 끝끝내 감옥에서 이렇게 슬픈 눈망울로 지내고야 말 것인지, 저자가 그에게 물기 어린 농담을 남기며 먼저 출옥할 때는 애간장이 다 녹았다. 얄밉게도 저자는 책 끝에서야 그가 95년에 사면됐음을 일러준다.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오지랖 넓어 바쁘다. 지난해 큰 상 탔던 책 ‘좌우파사전’이 그의 작품이었고, 한글문화연대에서 우리말 잘 좀 쓰자고 우기고 산다. ‘내 자식이 서울대 갈 것 같지도 않은데 서울대 법인화 반대하러 주말에 바쁘다’는 저자는 여전히 유쾌한 의리파다. 밉지 않은 저자의 유쾌함이 맘에 들어 저자가 몹시 그리워하는 서울구치소의 소고기 뭇국을 구해보려 했더니 포장이나 배달은 어렵고 ‘본인이 직접 오면’ 가능하단다. 본인이 직접 가게 해줘야 도리일런지.
표지제목에서 신영복 교수의 그 엄청난, 도저히 ‘책보기’ 쓰기가 겁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세 글자 ‘감•옥•의’가 어깨동무체로 정확히 일치하는 이 책, 87페이지에 등장하는 어느 허허로운 뱀장수의 감회가 새로운 이책, 그러나 꼭 청소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냉장 보관하시라! 그들이 올 여름방학 체험학습 과제를 징역살이로 하겠다 우기면 머리 아프실테니.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