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주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노조(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파업을 지지하는 외부 단체와 사측 용역 직원들이 충돌하면서, 외부 단체의 개입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우리나라 근대 조선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인건비문제 등 여러 경영 난제로 필리핀 수빅 조선소 개척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생존 능력 높이기를 모색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수익을 충분히 내고 있으면서도 노조원을 정리해고한다는 노조 측 반발과 사측의 경영산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한진중공업 상황을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 현안의 바로미터로 이해하는 측에서는 노조 투쟁에 심정적으로 동조해 왔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사태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든, 여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노동 문제에 당사자 외에 다른 세력이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갖는 게 허용되어야 옳은가’라는 문제 외에도 한진중공업이 방산 관련 기업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한진중공업은 전투함과 상륙함, 고속정 등 군함을 건조하는 ‘가급(최상급) 국가보안 목표시설’로 외부인은 회사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다.
◆ 쇠파이프 무장 사실상 ‘무법지대’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이 외부 지지 세력에 방위산업시설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을 끼쳤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지난 주말, 트위터 세상에서는 많은 트위터리안들이 탤런트 김여진씨의 연행 소식에 관심을 보였다. 김씨가 연행 상황과 모처에서 걸려온 전화 이후 훈방(방면)되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전해졌기 때문.
하지만 이러한 뉴스거리 사실 이면에 어떤 것이 뉴스를 낳은 ‘팩트’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장기적으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씨의 연행 배경이 된 한진중공업 침범 상황과 참여 세력의 내심(의도)에 대한 규정과 평가는 아무래도 상당히 시간이 흐른 뒤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대목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대한민국의 중요 보안시설을 강제로 뚫어 사진과 동영상 등이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현행 국가 안보 시설에 대해서는 출입을 금한다는 최소한의 ‘룰’마저 깨버린 것이다.
상황을 종합하면, 지난 12일 새벽 1시경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등 전국에서 모인 시민, 노동단체 회원 500여명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 모였다.
이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각지에서 부산 봉래시장에 모여 들었다. 촛불을 들고 행진을 시도, 노조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이후 이들은 사다리를 이용, 조선소 담장을 통과했으며, 물리적 충돌로 노사 양측에서 모두 부상자가 나왔다.
문제는 충돌이 예견된 상황에서 사다리 진입이 강행됐다는 점이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전인 10일 한진중공업 공장 봉쇄를 시도했고, 이러한 상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외부 침입을 거부한다는 점이 명확히 표명된 셈이다.
이 와중에서도 이미 물리적 충돌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13일 아침 MBC라디오에 출연한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오셨던 분들 중에는 공선옥 작가, 김선우 시인도 계셨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분들이 오셨던 건데 그렇게 물리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의 말에 따르면 “그냥 놔뒀으면 먹고 놀고 돌아갔을 사람들인데 정말 안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다리를 활용, 적극적으로 침입해 평화적 시위인지, ‘그냥 놔뒀으면 됐을 일’로 이번 충돌을 보는 게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회사와 관련 없는 외부 단체가 조선소를 점거하고 불법 시위를 벌였다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외부 단체 중 일부는 쇠파이프로 용역직원을 폭행해 24명이 상처를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종합해 보면, 11일 새벽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일어난 충돌은 군함 건조지역은 접근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폭력적인 상황도 불사하는 기류가 ‘메인 스트림’을 이룬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군함 건조와 관련된 곳을 실제로 침범, 파괴하는 등 최소한의 선만 넘지 않았을 뿐, 이미 보안시설에 대한 침해는 이뤄져 추상적 위험성 면에서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 의사가 확실하게 드러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불법 조장 세력에 엄정한 법 집행 필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1일 “한진중공업 노조는 외부 세력과 연계해 사측의 적법한 구조조정을 불법적으로 저지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어젠다 발표 이후 어지간한 노사갈등에는 목소리 내기를 주저해온 경영자들이 이러한 우려를 낸 것은 단순히 일개 기업의 파업 손실에 대한 우려 외에도 방산업 전반 내지 필수유지사업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자체가 파괴되는 게 아니냐는 긴박감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총은 “공권력을 투입해 불법 점거농성을 해제하고 불법투쟁을 지원하는 외부세력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이 성명에서 밝혔다.
쌍용차 공장 강제진압 등 여러 사건이 없지 않았지만, 6월 항쟁 이후 노동 운동에 대해서는 가급적 ‘탄압’으로 비춰질 일을 삼가하는 것을 근래 민주 정부들은 기본으로 삼아 왔다. 이것이 과거의 군사정부가 노동운동 관리하던 방식과 기본적인 차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같이 노동운동의 필요 불가결성과 이를 위해 허용되는 사회적 합의와 배려를 악용하는 경우까지 방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87년 7~9월까지의 일명 ‘노동자 대투쟁’은 오랫동안 숨 죽여 왔던 노동운동이 일거에 불거져 나온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로 인해 일부 불만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이들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일단 폭발력을 자각하게 된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강경 투쟁 일변도의 행보는 시간이 흐르면서 좋지 않은 평가를 얻게 된다.
1990년 5월 초 강영훈 당시 국무총리가 당정회의에서 “현대중공업 사태는 정치투쟁의 성격이 짙다”고 규정했다. 이 무렵 파출소와 현대차 영업소 등에 당시 20대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화염병 공격을 하며 현대중공업 사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유인물로 뿌리는 상황이 빚어졌다.
외부 세력을 등에 업거나 외부 세력 의도에 이용되는 상황이 알려지면서 현대중공업 쟁의는 노동운동의 상징으로서 갖는 긍정적 의미를 모두 박탈당하고 흔히 보는 노동쟁의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졌다.
굳이 경총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한진중공업이 외부 세력의 연대의식을 어떤 선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마음만 받을 것’인지에 대해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점이 현대중공업 파업 사태에서 반면교사를 할 교훈이다.
참고로 현대중공업은 1994년에도 63일의 장기파업을 겪으면서 매출액 역시 동반 하락해 성과급 비율이 67%로 낮아졌고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 따라 2개월간 임금 미지급 상황까지 직면한 바 했다.
한진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의 과거 지난 날 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장기적 불안으로 인한 매출 감소는 물론, 방산업체 노조원 스스로가 외부 침입자에게 사다리를 제공했다는 점이 주는 충격으로 민-관 양쪽에서 외면 받는 상황으로 스스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폭주하기 시작한 ‘노조+외부세력’과 이를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합쳐질 경우 회사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 밖에 없다는 공식을 한진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이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교훈에서 간접 학습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