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최보기의 책보기]조세희의 ‘난쏘공’

박유니 기자 기자  2011.06.09 15:49:39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원제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보다 ‘난쏘공’으로 더 많이 검색되고 있다. 1975년부터 연작으로 발표, 78년에 책으로 출판됐지만 이 제목의 소설은 76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으로 저항한 지 6년 후였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개호주의 안경이었다. ‘인간백정 김일성을 찢어 죽이자’는 검은색, 빨간색 글씨의 무시무시한 표어가 적힌 대형 시멘트 탑이 동네 입구마다 서있고, 술자리에서 말 한마디 삐끗 잘못했다간 감옥으로 직행했다는,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독재, 막걸리보안법 시대에 근로기준법이 존재했다면 그건 십중팔구 ‘사용자를 위해 노동자가 지켜야 할 근로기준’이 분명했을 것 같다. 하물며 시대의 폐부를 여지없이 찌르며 손에서 손으로 저항의 불씨를 퍼뜨렸던 ‘난쏘공’이라면 그것을 펴냈던 출판사 대표나 작가가 살아남았다는 건 명백한 부조리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난쏘공’이 40여 년 전의 암울했던 추억의 이야기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 조세희는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통찰보다 40년 후 한국의 실상을 예언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30만원이 없어 임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고 새 터전을 찾아 떠나는 재개발 지구의 철거민들. 행복 3구역 재개발지구는 9월 30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철거하고 철거비를 징수하겠다는 낙원구청장의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최후까지 버틴 사람들로부터25만원에 입주권을 긁어 모은 양복의 사나이는 하룻밤 사이 40만원에 되팔았다. 마루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동안 철거인부들이 쇠망치를 들고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고 어머니가 상을 집밖으로 들고나가자 쇠망치들은 순식간에 집을 허물어 버렸다. 우리는 서울 근교의 은강시로 기어들어갔다.

-(난쏘공 조세희) 용산참사는 30년 전보다 더 야만적이다. 70년대 철거깡패들은 눈이 마주치면 상대가 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물러서곤 했는데 철거민들을 뜨거운 화염 속에서 죽인 것은 범죄와 학살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장이가 벽돌공장 굴뚝에서 자살했었다.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와 뉴타운 개발 피해자들의 자살이 뒤를 잇고 있다. 힘과 법으로 무장한 가진 자의 경제논리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가난하고 무지한 난장이를 아버지로 둔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원주민이 일정구역에서 보호를 받듯이 이질 집단으로 보호를 받았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엄격하게 나뉘어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생존비를 위해 공장으로 내몰린 우리는 첫 번 째 싸움에서 벌써 져버렸다.

-명문대 진학의 3조건은 할아버지의 돈,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다. 이미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게 돼버렸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은 질서가 되었고, 학벌중심의 기득권은 더욱 더 강고해졌다. 부가 학벌과 스펙을 만들고 학벌과 스펙은 다시 부를 키운다. 10%가 집, 땅, 돈, 권력 등 힘의 90%를 움켜쥐고 있다. 양극화의 블랙홀은 아예 100%를 향해 치닫고 있다. 난장이의 손자는 싸움도 해보기 전에 88만원의 비정규직과 백수로 내몰렸고, 대출받은 대학 등록금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여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나는 제군을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 사물을 옳게 이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수학을 못 가르쳤다고 다음학기엔 윤리를 맡으라고 한다. 이건 윤리를 시간표에서 빼겠다는 의도였는데 우리만 몰랐다. 제군과 나는 어느 틈에 목적이 아닌 수단이 돼버린 것이다.

-(조선일보)구두회사에서 월급 200만원을 받으며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는 이모(31)씨는 결혼식을 미뤘다. 대학에 들어간 여동생 등록금 때문이었다. 여동생은 몇 차례 휴학을 거쳐 지난 해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취업난이었다. 학원강사, 무역회사 경리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나 이런 자리도 계속 구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무직상태다.

어느 것이 40년 전 이야기이고, 어느 것이 지금의 이야기인지 확실히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은 ‘난쏘공’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구별이 되는 사람은 ‘난쏘공’을 다시 읽으며 시대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난장이와 그의 가족들이 정녕 바라는 이웃과 정치인은 진정으로 그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져줄 사람이다. 어느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썩어 들어가 아무도 살 수 없게 되는 연못, 난장이가 어두운 밤하늘에 쏘아 올렸던 작은 공은 ‘검은 쇠공’이었다. 악당을 죽이는 검은 쇠공.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