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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는 연착륙…우리는 장기침체 돌입?

[심층진단] 물가상승·성장둔화 징후…수출 더 어려워지기 전에 내부요인 단속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6.02 07: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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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성장 모멘텀을 잃은 게 아니냐는 우울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특히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조절(일명 금리 정상화)에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도 저도 놓치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아시아 지역 신흥국 경제에 전반적으로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이같은 상황을 겪는 것은 연착륙을 하기 위한 일시적인 것임에 비해 우리는 장기 침체라는 건전하지 못한 상황에 빠져 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5월31일(현지시간)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이를 막기 위한 긴축 여파로 아시아의 경제가 뒷걸음질치면서 과열 경기가 식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한국의 경제 지표에도 주목했다. 한국의 4월 광공업생산은 전달보다 1.5% 감소했고, 소매판매도 1.1% 줄었다고 전했다. 가구와 가전 등 생활 관련용품의 생산 침체가 주요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재고 누적과 판매 부진 상황도 선명해짐에 따라 향후 수개월에 걸쳐 한국의 광공업생산이 둔화할 것으로 관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시아 지역 성장 둔화가 바로 장기적 정체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런 WSJ의 일반적 분석과 달리 침체로 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WSJ은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지표 부진이 실제로 장기적 정체를 의미하는 것인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유도해온 당국의 연착륙 달성을 보여주는 일시적인 둔화인지 의문을 나타냈다. 한편, WSJ은 대부분의 낙관론자들은 급성장하는 신흥국의 경기둔화가 인플레이션 억제 시 나오는 ‘바람직한 현상’이며 “지표 부진은 일련의 긴축 정책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경제 상황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유도함으로써 반사적으로 이 같은 상황을 겪는 게 아니라고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소비자물가 고공행진 중, 인플레이션 고삐 못잡아

실제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를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1일 발표 자료를 보면, 소비자물가가 5개월 연속 4%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월 대비 4.1% 상승했다. 물가 상승을 주도하던 농산물·석유류 가격은 떨어졌지만, 공업제품·서비스요금이 오르면서 이를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의 목표관리 목표치(3±1%) 상단을 뚫은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는 3.5%. 이는 23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특히 주목된다. 근원소비자물가는 장기적이고 추세적인 물가상승 압력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향후 물가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대목이다.

근원소비자물가의 주요 구성 지표인 가공식품 가격과 서비스요금은 일단 오르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 아울러 다른 부문의 물가까지 상승하도록 일종의 선도적 역할을 한다(전이효과).

때문에 1~3개월 후 물가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주는 근원소비자물가의 흐름이 이 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향후 물가불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야채값 대란이나 구제역 파동으로 인한 농축산물 가격 급등에서 보듯, 농산물·원자재 가격이 또다시 돌발 변수를 만나 다시 들썩이기 시작한다면 이 같은 근원소비자물가 흐름과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물가대란’으로 국민경제가 고통 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한국경제 성장세 둔화 지속 시사 자료…‘모멘텀 상실 우려’

이렇게 물가관련 불안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제조업 신규주문 및 생산 증가세 약화 등에 따라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HSBC가 업계 내 400개 이상 기업의 구매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5월 한국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에 따르면, 이달 국내 제조업 PMI는 51.2를 기록하며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 장기 조사 평균치를 밑돌았다. PMI지수가 50.0을 초과하면 사업 환경이 개선된 것이며 50.0 미만이면 사업환경 악화를 뜻한다.

이달 PMI지수가 50.0을 넘으면서 사업 환경은 개선된 편에 속한다. 하지만, 반년새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함에 따라 이것이 한국 경제의 성장 모멘텀 상실을 시사하는 바라는 풀이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경제 성장에 사용될 자금줄의 기초 사정을 나타내는 저축률 역시 우울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소득 대비 저축률은 2.8%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6.1%)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러나 저축률이 이같이 나타나는 것은 실제로 경제성장률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1일 ‘가계저축률 하락의 원인과 경제적 파장’ 보고서에서 가계저축률이 1% 떨어지면 경제성장률은 최대 0.15% 하락하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총저축이 줄어들면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둔화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따라서 가계저축률이 1% 낮아지면 총고정투자율은 0.36%,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0.25%가 하락하는 것으로 이 수석연구원은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낮은 가계저축률의 원인으로 가계소득 증가세 둔화, 공적연금 확대에 따른 사회부담금 증가,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저축 여력 감소, 고령화 진전 등 인구구조 변화 등을 꼽았다.
저축은 이렇게 침체 중인 반면, 빚은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 금융부채는 외환위기 후 꾸준히 늘어 3월 말 현재 801조3900억원에 이르고 있다. ‘가계빚 1000조원 시대’가 목전에 닥친 꼴이다.

최근 하우스푸어 문제로 특히 회자되는 이 같은 부채 부담을 느끼는 개인이 많은 것은 소비를 늘려 경제 성장에 기여할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더욱이 금리 정책 등을 쳐는 데에도 부담 요인이 된다. 기준금리가 오를 경우 이들이 받을 타격은, 기준금리가 1% 상승할 경우를 가정해 계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우스푸어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월평균 102만3000원에서 109만3000원으로 증가한다.

◆기준금리, 소비자근원물가 뾰족한 답 없어 더 답답

이에 따라 곧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베이비 스텝’으로 기준금리 조절을 해온 금통위가 지난 번에는 금리를 동결했기 때문이다.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가계부채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을 의식해 물가 불안 조절을 위한 금리 상승 조치를 거른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하지만 이같이 경제 전반이 성장 모멘텀을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계속 현재와 같이 침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잖아도 국제통화기금(IMF)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8%에서 4.3%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선 이처럼 외부 성장이 주춤할 경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손성원 석좌교수는 지난달 31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포럼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수출이 호조세를 보였지만 앞으로는 가계부채가 높아져 돈을 많이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현상황을 요약하고 “한국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높아 변수에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시아 경제 동반 침체 경향 등 국제경제의 흐름이 비우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여건이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전에 물가 등 내부 단속을 시도할 필요가 높다고 하겠다. 기준금리 조절로 가계(개인)부채 문제를 모두 콘트롤 할 수 없다거나, 소비자근원물가는 공공적 규제로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요소들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