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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프라임경제 기자  2011.05.31 08: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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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너의 어머니, 진달래 여사의 정확한 존함은 陳端禮 님이시다. 진 여사의 고향은 남해 쪽섬 거금도의 발마끄미고, 열아홉 살에 산 너머 샛감도리로 시집을 오셨으며, 올해 공식(?) 연세가 만 여든다섯이시다. 여사는 평소 TV를 보시다 전직 대통령이 나오면 "대주이, 영샘이 저것들하고 甲"이라 말씀하시지만 호적은 1926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정시대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하셨듯 여사 또한 문맹이시나 덧셈하고 뺄셈 만큼은 기가 막히셨다. 만약에 여사께서 셈법마저 모르셨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명백한 결과 하나는 '책보기 너는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육군상사’ 출신 남편의 해찰에 맞서 4남 2녀의 가족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여사의 몫이었다. 

매입원가, 당기순이익 같은 복잡한 말 몰라도 만 원에 멸치 한 포를 사서, 열다섯 봉지로 쪼개 담아 재래시장 이불가게 앞, 모퉁이에 앉아 가게 주인 눈치 봐가며 봉지당 천 원에 팔면 오천 원이 떨어진다는 것, 그리고 만 원짜리 지폐를 받으면 천 원짜리 아홉 장을 남겨줘야 한다는 것을 진 여사는 정확히 아셨다. 

때로는 셈법이 너무 밝으셔서 너희 형제들이 학교에서 내라는 돈 일이백 원을 여사에게서 타내려면 삼사 일은 꼬박 매달려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안주고 버티다 보면 그냥 넘어 갈 때도 있더라, 돈이란 흐지부지 써버리면 안 모인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시장에서 늦게까지 깻잎을 팔던 어느 여름날 오후, 점심을 거른 탓에 배가 너무 고파 붕어빵 한 개를 사먹을까 말까 100원짜리 동전을 스무 번도 더 매만지며 빵 장수 앞을 서성이다 집으로 와서 맹물을 마셨다는 여사께서 그렇게 한푼 두푼 모으신 돈은 그러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너의 학자금을 위해 전신환으로 바뀌었다. 

“보기군 보게나, 나는 옆집 안나 오빠일세. 자네 모친 부탁으로 전신환을 보내네. 이제는 자네 부친께서도 술 안 드시고 모친 일을 잘 도와주시니 자네는 걱정 말고 공부에만 전념 하라네. 그럼 다음 달에 또 보냄세” 

아버지가 어머니의 일을 잘 도우신다는 뻔한 거짓말과 함께 월말이면 옆집 형의 편지는 어김없이 너에게 배달됐고, 팔월 땡볕과 겨울 한발에도 함지박은 진 여사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으며, 너의 가방끈이 길어지는 것에 비례해 함지박의 무게도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러던1980년 5월, 광주는 전쟁터였다. 고등학생인 네가 그 도시에 갇혀있던 어느 날, 진 여사께서 불쑥 너의 자취방에 나타나셨다. 헝클어진 머리, 아무렇게나 둘러쓴 수건, 햇볕에 그을린 얼굴은 누가 봐도 열혈 시민 전사셨다. 진 여사 당신에겐 꿀단지 같았을 네가 죽었는가 싶어 고흥에서 화순까지 완행버스를 타고 올라와 총알이 난무하는 무등산을 넘으셨다. 광주에 들어와 풍향동 백림약국이 어딘지를 몰라 헤맬 적에는 어떤 50대 아저씨께서 "아짐씨, 그라고 댕기믄 총알맞기 딱 좋단께라" 하시며 자전거에 태워 두 시간을 풍향동까지 자원봉사 하셨다. 80년 5월의 광주는 인심이 그랬었단다. 며칠 뒤 신새벽, 진 여사는 너의 아침 밥상을 따뜻이 차려놓으시고는 다시 무등산을 넘어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기둥 같던 장남과 ‘내 평생 웬수’를 가슴에 묻고, 간난신고의 옛 시절도 모두 접은 체 싸목싸목 세월을 보내시는 진 여사께서는 너를 포함해 대처로 떠나간 자식들, 누구보다도 네 나이가 낼 모레 쉰을 바라봄에도 ‘오메! 내 막둥아!’인 너에게 직접 전화를 하고픈 맘이 크시다. 24시간 네 목소리가 그리운 탓이다. 그러나 숫자에 어두운데다 요즘의 기나 긴 핸드폰 번호를 순서에 따라 해독하며 시간 맞춰 누르기가 여사에겐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게, 어렵게 번호를 하나하나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수화기 저쪽에서 명랑한 아가씨가 진 여사께 친절하게 말을 해준다. 

"다이알이 늦었으니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이알링 이즈 딜레이트. 프리즈 콜 어게인.

뚜뚜뚜뚜 삐~~~" 

몇 번이나 시도하다 화가 나신 진 여사, 그 아가씨에게 호통을 치신다. "아, 이 징한 간네 새끼야! 잔 봐주라! 너는 애비애미도 없냐? 나가 낼모레 나이가 구십인디 이만 하믄 됐재 얼마나 더한다야! 인정머리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이 잡녀느 새끼야! 꽝~~" 

네 엄마께 '그 잡녀느 새끼'가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는 것을 납득시켜 드리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신 말씀 하시고 또 하시고, 어디서 무릎을 다쳤는지도 모르시는 진 여사가 너에겐 가슴 아플 것이다. 조금만 섭섭하게 굴어도 진하게 삐치시는 진 여사 때문에 애닯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네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KT의 명랑 아가씨에게 화내시지 않도록 전화나마 꼬박꼬박 드릴 것을 너에게 특별히 부탁한다. 엄마가 사라진 후에야 회한에 떨며 피에타 상 앞에서 ‘엄마를 부탁한다’고 울지 않도록.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