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빚 갚으라고 돈 빌려주기’ 괜찮을까?

[빚 권하는 사회] ②하우스푸어…동정론에 따른 추가대출은 위험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5.31 06:07:08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부동산 불패, 특히 아파트 신화에 동참한 이들이 최근 고생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30~40대 수도권 아파트 소유자들의 고생이 극심하다. 무엇보다 많은 대출을 안고 집을 사는 관행이 부동산 가격 조정 시대에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특히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빚을 내 이 대열에 동참한 이들이 사회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비싼 집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이른바 ‘하우스푸어’다. 사회 위기의 한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하우스푸어의 증가. 개인책임일까? 국가 책임일까?

   
빚을 안고 집을 샀던 이들 중 상환에 부담을 느끼면서 쪼들리는 이른바 하우스푸어가 눈길을 끌고 있다. 금리 조정 등 정책 구상과 집행에 부담이 될 정도로 이들이 사회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간 하우스푸어의 개념과 규모가 모호했지만, ‘하우스푸어’란 ‘무리한 대출로 집을 마련하였으나, 원리금 상환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가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요약되고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통계 자료를 자체 분석, 하우스푸어를 협의와 광의로 나누고, 그 규모를 산출해 내기도 했다.

◆하우스푸어 왜 문제인가?

△주택 한 채만 보유 △거주주택 마련 위한 대출 상태 △원리금 상환에 따른 생계 부담 △이로 인한 실제 가계지출 감소 등을 모두 충족하는 가구가 ‘광의의 하우스푸어’이며, 여기에 추가로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비중이 최소 10% 이상인 가구가 ‘협의의 하우스푸어’라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정의했다.

다만, 광의와 협의의 하우스푸어는 그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2010년 현재 광의의 하우스푸어는 전체 주택 보유 가구(1070.5만 가구) 중 14.7%인 156.9만 가구이고, 협의의 하우스푸어는 10.1%(108.4만 가구)다. 즉, 전체 주택 보유 가구 중 非하우스푸어(광의)는 85.3%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왜 집을 가진 이들 중 10~14% 가량에 불과한 집단이 시선을 모으고 있을까?

이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향후 부동산 시장의 방향이 부동산 버블 붕괴론과 하락 조정 분석 어느 쪽이 맞든 간에, 논의 자체와 별개로 이미 원리금과 이자를 갚지 못해 금융 불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하우스푸어의 대표 모델은 주로 수도권에 살면서 아파트를 가진 30∼40대 중산층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들 하우스푸어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억1105만원이고 이 중 주택가격은 73.7%인 2억2910만원이었다. 그런데, 하우스푸어 중 35만4000가구(38.4%)는 지난 1년간 부채가 증가했다. 향후 1년간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구도 22만5000가구(19.3%)였다. 아울러 이들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46만원이었으며 이 가운데 원리금은 102만3000원(41.6%)에 달해 향후 연체율이 늘어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망됐다.

이들은 현재 상황에서도 이미 이자를 내고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부담을 안고 있다. 하우스푸어를 소득분위별로 나눠본 현대경제연구원 자료를 보면, 월평균가처분소득 대비 월평균원리금이 1분위의 경우 121%로 이미 ‘초과’ 상태를 보였다. 2분위는 77.6%, 3분위는 45,9%에 달했고, 4분위와 5분위 역시 각각 40.1%와 33.2%를 기록했다.

많은 하우스푸어들이 주택담보대출의 거치 기간이 만료돼 원리금 상환에 나설 경우 가처분 소득 상당액을 빚 값는 데 쏟아부으며 허덕이게 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 금리 조정 등으로 이자 부담까지 상승하면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집값으로 인한 부담에 시달려 소비를 실제로 줄이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가 빚이 늘고 있거나 늘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연체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큰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경제 전체를 주름지게 할 수 있다. 광의의 하우스푸어 가구원수 549.1만명, 협의의 하우스푸어 총가수원수 374.4만명인데 이들 중 일정 비율이 연체의 늪에 빠진다면 그 파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2003년 한국 경제 전체를 흔든 바 있는 ‘카드대란’으로 양산된 서민 신용불량자 규모를 400만명으로 보는데, 이 규모와 하우스푸어 문제에 어떤 형태로든 연루된 인원 규모를 대비해 보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금리상승 견딜 수 없는 집단

기준금리가 오를 경우 이들이 받을 타격은, 기준금리가 1% 상승할 경우를 계산해 보면 하우스푸어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월평균 102만3000원에서 109만3000원으로 증가한다. 기준금리에 연동해 움직이는 변동금리로 담보대출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 나라의 기준금리는 금년내 3.5~3.75%에 안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지난 2010년 7월 기준금리는 2.25%).

이런 상황에 집값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해 이들이 입을 심리적 타격과 이것이 일으킬 경제적 여파도 만만찮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일 연구위원은 13일 ‘주택가격의 장기 침체에 따른 자산효과’라는 논문을 통해, 주택 가격이 하락할 때는 물론이고 보합세를 유지할 때에도 민간소비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논문에 따르면 집값이 2년간 매년 10% 하락한 뒤 3년차부터 2000~2009년 연간 평균치인 5.79%의 상승률을 회복한다고 가정할 때, 민간소비는 1년차에 2.51% 2년차에 4.54% 각각 감소한다.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55%임을 감안하면 집값 10% 하락은 GDP를 1년차에 1.3~1.4%, 2년차에 2.3~2.5% 축소시키는 것으로 추정됐다.

요컨대, 이들이 집값 하락 국면에서 소비를 줄이는 부정적 효과와 아울러 빚을 갚지 못하는 집단으로 전락할 경우의 여파를 감안하면 하우스푸어 현상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주택가격 부양 지원 더 이상은 곤란  

이들을 연착륙시킬 방안으로는 몇 가지를 검토할 수 있다. 하우스푸어는 금융부담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아파트를 손절매하는 방향으로 정리하거나, 주택가격 상승시까지만 버티다 매도에 나서는 방식으로 대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전제가 되는 부동산 가격 회복을 기다리거나, 인위적으로 다시 하우스푸어들이 기대감을 갖고 주택을 사던 시점의 가격선으로 부양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이는 몇 가지 점에서 회의적으로 보인다.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해 몇 번의 대책이 강구, 발표됐지만, 이미 시장이 당국 정책의 약발을 받지 않는 정책 불신에 빠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부동산 정책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이 미국과 일본의 주택가격 버블 붕괴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던 바도 있는데, 이를 계속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게 타당한가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미 한국의 주택 적정가격을 ‘2억9000만원짜리 주택가격이 1억2000만원이 하락해 1억7000만원 선의 가격대가 형성돼야 하는 수준’이라고 본 보고서가 나온 바 있다. 지난해 3월 산은경제연구소는 ‘국내 주택가격 적정성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Price to Income Ratio)이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PIR이 높을수록 가계소득으로 집을 구매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PIR은 2006년 이후 3년간 6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미국은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인 2006년 4.03에서 2008년 3.55로 하락한 데 비해 월등히 높았다. 같은 기간 일본의 PIR도 3.89에서 3.72로 떨어진 것과 비교해도, 우리의 주택 가격이 소득 대비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다.

셋째, 지금 하우스푸어 연착륙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이것을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있다는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없다면 ‘폭탄돌리기’를 하는 데 불과하다. 지금 하우스푸어의 탈출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부동산을 어느 집단에 다시 떠맡긴다는 것도 도덕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은 현재 수준 가량에서 안정시키고, 하우스푸어의 상환 능력을 제고하는 선으로 대책이 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거치기간이나 상환기간을 연장해 주고, 고정금리로 전환해 주거나, 하우스푸어 중 1, 2 소득분위의 저소득층 하우스푸어 부담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서민금융 기반 강화’를 하는 안을 제안하고 있다. 연장과 갈아타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빚 더 얹어주기’는 위기 조장

다만, 이 같은 금융부담 경감 대책에도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빚 갈아타기까지는 몰라도 부담이 크다고 해서 이들에게 다시 빚을 늘려주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역대 최저치인 2%까지 낮췄던 기준금리를 지난해(2010년) 7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총 1% 인상한 바 있다. 이런 조치는 물가 급등 부담과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계대출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작년 4분기(10~12월)에만 20조9000억원이 늘어났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지만 6조3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금융권이 대출 영업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2003년 카드대란의 여파가 커진 것도 이자 경감 등 정책 판단을 할 때 손쉽지만 도덕적 해이인 선택을 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빚을 내 가장 비싼 소비재를 구매한 이들인 하우스푸어를 연착륙시키는 대책은 경제 전반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지만, ‘빚 권하는 사회’가 낳은 가장 어두운 문제를 다시 다른 빚, 더 큰 빚을 주는 방향으로 눈속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충족하는 선에서 해결책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빚 권하는 사회’의 부작용 처리를 위해 부담할 사회적 비용을 더 키우자는 과도한 ‘하우스푸어 동정론’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대두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