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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격호 흉상, 차라리 호텔로비가 낫지 않나?

전지현 기자 기자  2011.05.30 13: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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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20여년 전, MBC TV의 ‘일요일 일요일밤에’ 코너 중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몰래카메라’의 가수 현철 편에는 현씨의 동상제막식을 거행하겠다는 설정으로 모교에 초청, 그의 반응을 살펴보는 편이 방송됐다.

흉상 건립은 실제 상황이 아닌, 현철씨를 속이기 위한 ‘설정’이었다. 중간에 동상이 넘어지며 목이 부러지는 장면을 연출하던 중 현장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보기에 당시 현씨는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제작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동상제작 자체에 대한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르네상스 이래 널리 행해진 흉상 제작·건립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가슴 부분까지 묘사한 조각 또는 회화로서 초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하지만 최근 롯데제주스카히힐 컨트리클럽에 롯데의 창립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흉상이 설치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록 졸수(卒壽)의 나이에 이르긴 했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흉상 건립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이 세워지는 경우는 실제로 더러 있다. 탁월한 국위 선양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은 몇몇 운동선수의 흉상이 있고, 또 이와는 전혀 다르게,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현직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신격호 회장의 흉상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제주컨트리클럽에서 자체 제작한 것으로 그룹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지난 4월24일 개관한 소공동 롯데호텔 1층 역사박물관에 신 회장의 흉상이 들어설 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롯데 측은 흉상 설립을 취소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호텔 1층에 흉상을 두기엔 다소 부담스럽다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흉상이 있는 제주컨트리클럽은 신 회장의 애정이 각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롯데 핵심 관계자들의 발길이 자주 이곳에 닿는다고 한다. 특히 홀인원을 기록했던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과 롯데마트의 노병용 사장의 이름이 금속판에 찍혀 공개돼 있기도 하다. 흉상과 금속판을 보면서 ‘이곳은 롯데 구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립자를 존경해 마지않는 롯데의 마음이 이 흉상에서 잘 묻어난 것 같지만, 때 이른 흉상 건립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흉상 건립의 목적이 ‘주인공’을 널리 기리기 위함이란 점을 롯데도 공감한다면, 흉상 건립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호텔이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호텔은 좀 부담스럽고, 롯데 사람들이 주로 많이 찾는 제주의 골프장은 덜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제주에 신격호 흉상이 들어선 것이라면, 흉상 건립의 목적과 실행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