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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선칼럼]대한항공의 언론 재갈물리기 '이제 그만'

박광선 기자 기자  2011.05.24 08: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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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직접 해코지하는 사람보다 겉으로는 자신을 위해 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 해치려는 사람이 더 얄밉다는 뜻이다.

지난주 이 속담에 걸맞는 사건이 있었다. 한국광고주협회가 배포한 '나쁜 언론 선정' 관련 자료를 놓고 벌인 언론계의 태도다. 재벌기업의 언론 길들이기라며 쓰레기통으로 버린 곳이 있는 반면 부화뇌동해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은 언론사도 적지 않다.

이러이러한 곳이 나쁜언론이라며 광고주협회가 발표한 보도자료의 주요골자는 *기사내용을 미리 공지한 후 이를 보도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기업에 광고협찬을 강요한 곳 *허위 사실 및 근거 없는 음해성 기사를 게재한 후 광고협찬을 하면 기사를 삭제하겠다며 거래를 제안한 곳 *이미 종료된 사건 기사를 일부 수정하여 마치 새로운 기사처럼 부풀리기한 후 광고협찬을 강요한 5개사를 나쁜 언론으로 선정했다는 것. 이들 언론으로 인해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광고마케팅 활동이 방해받고, 홍보나 광고 담당자들은 협박성 막말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협회의 주장이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들 언론사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왜곡된 보도로 인해 기업이 문을 닫아야 되는 등 그 폐혜가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론직필(正論直筆)에서 벗어나 패악질을 일삼는 언론이야말로 사회악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도자료의 진실성 여부다. 광고주협회에서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나서서라도 이들 5개 언론의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이 바로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를 경우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시시비비가 명백히 가려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개 기업의 농간으로 인해 정론직필에 매진하던 언론사가 하루 아침에 사이비언론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한국광고주협회는 보도자료에 대한 세부 근거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3월 16일부터 2달간 사이비언론신고센터를 통해 광고협찬을 강요하는 언론사의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회원사의 피해가 중복되는 곳을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으로 선정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정확한 소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설문조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 대상과 설문참여 기업 수, 선정 기준, 절차 등도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소속 회원사의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대답이며, 조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들게 하는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광고주협회가 근거자료를 밝히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이비언론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대한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급하게 만든 것이 이번 보도자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고주협회는 회원사들에게 이번 설문조사는 언론과 소송에 나선 대한항공을 지원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대놓고 말한바 있다. 

대한항공이 사익을 위해 만든 것이 이번 자료의 본질이다.

이처럼 일개 기업이 사익을 위해 자신이 속한 협회를 선봉장으로 내세워 만든 자료로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건이 기사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가장 있기 있는 예능 프로인 일박이일에서 강호동이 자주 하는 말처럼 '나만 아니면 돼'라는 자사 이기주의가 만든 결과는 아닌지 궁금하다. 아니면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옥죄는 대기업의 무서운 힘이 작용한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정부기관이나 국책연구소 등에서 만든 자료도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생기지 않을까'  이중삼중의 확인작업을 거친 후 기사화하던 종전의 패턴과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구심은 더욱 깊어진다.

보도자료를 낸 한국광고주협회가 200여개 기업이 내는 회비 등으로 운영되는 단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단체로 공신력이 담보되지 않는 곳에서 만든 허접스런 자료를 보도하게 된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갖는 이유는 또있다. 대한항공과의 소송에 연루됐던 곳은 모두 나쁜언론으로 선정됐다는 점이다.

본지의 경우 외국인 조종사 불법채용, 연이어 발생한 대한항공 직원 4명의 자살사건, 승무원기내판매 강매의혹, 기내 면세점 설립문제 등 대한항공의 치부를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 광고와 협찬이라는 당근을 내밀며 기사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론직필을 고집하며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자 대한항공은 태도가 돌변, 법무법인을 통해 조그만 언론사가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기업의 엄청난 힘이 작용했다고 느낀 또 다른 이유는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 있다. 광고주협회가 이 시점에 왜 보도자료를 배포했는지 그 경위와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마녀사냥식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특히 D일보의 보도행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여타 언론들처럼 광고주협회의 보도자료를 쓴 것은 그렇다 치자. 또 사이비언론의 횡포를 지적한 논설위원의 칼럼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라는 거대기업이 소규모 온라인매체인 프라임경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대한항공이 허위 추측성기사를 연속 게재한 프라임경제에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이라는 사설까지 쓰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잘 알다시피 언론을 상대로한 대한항공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사에 불리한 기사를 게재한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대한항공의 고소사건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프라임사건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이 프라임경제를 상대로 3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언론중재위 조정을 거쳐 마무리된 사안이다. 설사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대한항공이 프라임경제를 제소할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기업이 눈에 가시같은 소규모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해 소송키로 했다는 것이 사설로 쓸만한 사안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큰 사건이라면 다른 신문과 방송은 왜 쓰지 않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D일보는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언론이다. 부정과 불의에 맞서 주 수입원인 광고 없이 신문을 발행할 정도로 용기있는 신문사였다. 이러한 신문사가 보여주는 작금의 현실은 마치 금력에 굴복하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더 큰 문제는 이를 계기로 재벌의 언론 길들이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규제라고는 하지만 광고주협회로 대변되는 기업이 사실상의 언론규제에 나선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광고 유치를 목적으로 기사를 훼절하거나 언론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부적절한 행위는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수익의 대부분을 광고수입으로 채우고 있는 국내 언론계의 수익구조를 감안하면 이번 사태가 자칫 '광고에 의한 언론통제`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광고시장이 더욱 협소해지고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하반기에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종편을 제도권 대형 언론사들이 운영한다고 하나 광고를 기본 수입으로 한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 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