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논리적인 주장으로 정평이 나있는 박창일 세브란스 병원장
[사진]이 최근 한 TV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진료비 부당청구에 대한 제도적 모순을 지적, 의료계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박창일 원장은 최근 KBS 2TV '주부, 세상을 말하자'라는 프로그램에 출연, 모호한 심사기준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의료기관들의 애로점을 피력했다.
'진료비 과다청구 논란, 진실은?'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방송에서 박창일 원장은 "환자를 위해 치료하면 악덕의사가 되고 기준대로 치료하면 환자가 고통받는게 작금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 원장은 관절염 환자의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의 진료비 심사기준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가에 대해 설파했다.
관절염의 경우 2주 이상 치료하면 부당한 치료로 분류돼 환수를 당해야 하지만 2주 이상 치료해도 낫지 않는 환자의 경우 환수를 감안하고라도 치료를 해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는 "관절염 환자가 2주만에 낫는다면 우리나라에 관절염 환자가 어디 있겠냐"며 "병원이 환수가 무서워 치료를 안해주면 환자들은 어디로 가느냐"고 성토했다.
박창일 원장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암 환자의 경우 의료진은 비현실적인 심사기준으로 인해 더 많은 고민에 빠져야 한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어떻게 이런 기준을 갖고 환자를 치료하라고 할 수 있냐"며 "제도의 모순은 인정하지 않고 의사들을 도둑놈 취급하고 부도덕하다고 매도하니까 너무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사들은 환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매도될 때는 의사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의료기관이 고의로 진료비를 더 청구하는 가능성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경계했다.
박창일 원장은 "어느 집단이나 부도덕한 사람들이 있고 물론 의료계에도 있다"고 인정한 뒤 "하지만 제도가 과잉처방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한 부분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당청구가 가장 많은 곳이 서울대, 세브란스, 아산병원과 같은 큰 병원들인데 여기서 일하는 의사들은 약을 많이 쓰든 적게 쓰든 똑같은 봉급을 받는다"며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 때문임을 강조했다.
한편 방송이 나간 후 의료계는 박창일 원장이 "답답한 심정을 속시원히 풀어줬다"며 절대적인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말 통쾌한 토론회였다"며 "방송을 본 국민이나 정부 관계자들에게 의사들의 고충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개원의는 "지금껏 의사들의 입장을 이렇게까지 속시원하게 풀어준 인물은 보지 못했다"며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들이 실제 의료정책에 적극 반영됐으면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