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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트 다운' 일본, 원전관련 태도 '가시적 변화' 언제쯤?

원전사고 2달…기술력·관리능력·관련외교 모두 '빨간불', 한·중·일회담 결과에 주목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5.15 14: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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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본이 동북부 대지진의 여파로 원자력발전소 관련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국제 사회와의 협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필요성은 특히 일본 당국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이로 인해 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의 멜트 다운(노심 융용) 문제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원전 수습 대책 전반에 관해서도 근원적인 접근 방식이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호기는 멜트 다운, 오판으로 '오히려 오염물질 양산'…기술강국 자부심 흠집

15일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이 후쿠시마 제1원전 건물 지하에서 약 3000t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점은 앞서 나온 도쿄전력의 멜트 다운 가능성 인정 회견과 맞물려 이번 일본 원전 사고 관리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15일자 보도에서 언급된 3000t 가량의 오염수는 고농도 방사성 오염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지하 계단 부근의 방사선량이 시간당 72 밀리시버트임을 감안하면, 건물 지하에 존재하는 물질 전반이 이같은 방사선량을 방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미 오염돼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멜트 다운 관련 오판이 문제를 키웠다는 우려가 확인된 것이다.

일본 당국은 그간 원전 사고 수습과 관련, 세부 방법지로 △민물 냉각수 주입 △수소 폭발을 막기 위한 격납용기 내 질소 주입 △수관 작업(압력용기를 감싸고 있는 격납용기를 물로 완전히 채워 핵연료를 냉각하는 것) 등을 채택, 진행해 왔다.

원자로 압력용기 수위계의 수치를 근거로 냉각수 수위는 4m짜리 연료봉이 2.4m 정도 물에 잠긴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도쿄전력은 판단, 계속 물을 채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수위계의 수치는 지진 직후부터 거의 변화가 없어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고, 최근 작업 근로자가 원전 건물에 진입해 수위계를 고친 결과 냉각수 수위가 1/4에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냉각수 중 상당량이 통제 불능 상태를 겪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은 멜트 다운 관련 기자회견 무렵, 3000t 이상의 물이 유출된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했는데, 15일 지하에서 발견된 물이 대략 이 정도 양인 것으로 추정되는 추가 보도가 나오면서 일단 불행 중 다행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은 면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제는 이 지하에 괸 물이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라는 우려에 있다.

그간 일본 당국이 수관 작업을 벌인 것은 제1원전 1호기의 연료 펠릿(핵 연료심)의 일부가 손상됐지만 멜트 다운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기자회견을 통해 "핵연료봉이 (녹아서) 압력용기 바닥에 쌓이면서 몇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렸고, 압력용기를 둘러싸고 있는 격납용기도 일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부 연료가 격납용기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혀 멜트 다운 상황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즉 격납용기까지 손상된 상황에서 물을 부어온 것이고, 정확한 상황파악 없이 수관 작업을 진행해 원전 안정화는커녕 대량의 고농도 오염수를 만들어낸 셈이 됐다.
 
◆ 4월 오염수 유출 이후 또 해양 오염 재발, '문제국가'로 스스로 전락

일본의 실패는 이처럼 기술적으로 중요한 전제 사실을 오판하는 데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점검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추가 피해를 통제하는 점, 오염과 관련 타국을 배려하는 문제에서도 허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일본 언론은, 제1원전 3호기 취수구 부근에 있는 전력 케이블용 터널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을 도쿄전력 직원이 발견, 경로를 콘크리트로 봉쇄했다고 전했다. 오염수에서는 바닷물 기준치의 62만배에 이르는 방사성 세슘134, 기준치 43만배의 세슘137이 검출됐다.

도쿄전력은 원전에서 오염수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취수구 부근 바다에 방제용 특수 커튼을 쳐두고 있었지만, 커튼 바깥쪽 바닷물에서도 기준치의 1만8000배에 이르는 방사성 세슘134가 검출됐다.

이는 지난 4월 초 제1원전 2호기에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된 데 이어 1개월여만에 문제가 '재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 오염수가 바다로 방출되는 것과 관련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처럼 국제적 비판을 받으면서도 일본은 추후로 해양 오염이 일어날 가능성을 관리하는 데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문'은 3호기 주변 오염수 해양 유출과 관련, "지난달(4월) 21일 이후 취수구 부근에 대한 점검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상황 판단이나 관리에 실패한 데다, 기초적인 점검을 소홀히 한 문제가 겹쳐 진행되면서 무방비로 해양 오염이 재발했다는 지적이다. 이미 지난 4월 상황과 관련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은 교훈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압박 있어야 협력 시늉해온 일본, 21일 한·중·일 정상회담 태도 변화 여부 눈길

이처럼 전반적인 상황 판단은 물론 세부적인 관리·점검 등에서도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일본이 동북부 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난 직후 보여온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은 1등 기술력을 갖춘 국가라는 자부심을 보여 왔으며 주변 국가들의 관련 문제 도움을 받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를 보일 자부심의 기반 중 상당한 부분이 이번에 멜트 다운 및 주변 상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허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사고와 관련, 정보를 수집하려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간 협의도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았던 바 있다. 지난 4월 일본 정부는 러시아 국영 기업인 로스아톰 측과 프랑스 원전 기업인 아레나로부터 원전 오염 해결 기술 지원을 받는 문제는 검토하면서도 중국과 한국의 지원 제안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15일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원전 사고와 관련, 미국과의 협력에 관해서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가 일본에 주재하는 자국민에게 강제 대피 명령을 내리겠다는 미국의 압박이 시작되자 정보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을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이 자국민 강제 대피에 나서면 연쇄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는 것이다.

해양 오염에 대해서도 충분히 외교적 제스처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현지 언론이 5월 들어 원전 사고와 관련, 외국과의 협력 문제 등에 대한 보도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보면 내부에서도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응집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고 초기부터 4월 오염 물질 해양 방출, 5월 추가 오염수 방출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결국 일본은 기술력에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데 적극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고, 해양 오염 등과 관련해서도 외교적인 노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하면 이처럼 강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며 일본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비판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전 사고 수습의 기술적인 면에서나 오염의 전지구적 확산 방지를 관리하는 문제에 있어서나 모두 국제 사회와 대화를 시도할 필요성을 일본 스스로 인정하고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받는 문제는 원자력 주권 침해 우려나, 기술 유출 등의 현실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중성을 기해야 할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정보 제공(공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다니엘 폰먼 미국 에너지부 부장관이 지적하는 대로, "(일본 원전의) 노심 용융 등과 관련, 냉각 안정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고, 이와 같은 장기적 과제를 푸는 것은 일본 혼자서는 힘에 부칠 것이라는 지적이 멜트 다운 상황의 뒤늦은 발견 등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중·일 세 나라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가질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어떤 전향적 입장 변화를 선보일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3개국 정상이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앞으로 공유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실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1류 기술 국가 신화' 붕괴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데다 다른 나라와의 대화는 안중에 없이 독불장군식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까지 받아온 일본이 앞으로 한층 성숙한 태도로 전환할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