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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 설립, 이후락 압력·이맹희 눈물 ‘이중주’

[대기업해부] 동서식품ⓛ…태동과 성장

전지현·조민경 기자 기자  2011.05.12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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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대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동서식품을 조명한다. 동서식품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국내최초 커피 생산, 국내최초 커피크리머(프리마) 생산, 국내최초 커피믹스 생산, 국내 커피믹스 시장 1위 등은 동서식품의 자랑스러운 과거이자 현재다. 그 중에서도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을 지금 이 위치에 있게 한 주역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쟁사의 시장진입 방해, 사업다각화 실패 등 뼈아픈 과거가 있다. 

◆제일제당의 커피사업 부문 될 뻔

동서식품은 미군 PX로부터 커피가 불법 유통되던 시기인, 1968년 5월23일 출범했다. 창업주 故서정귀 회장은 ‘식품과 청량음료의 제조 및 판매, 농장 경영 등 사업’을 목적으로 동서식품을 설립하게 된다. 서 회장은 직접 경영 대신 설립 자본금 일부를 부담한 신원희씨에게 대표직을 위임하면서 신씨가 동서식품 창업 초기를 이끌어 갔다.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서정귀 동서식품 창업주, 이후락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좌측부터).
창업주 故서 회장은 동서식품 설립에 자본금을 투자했을 뿐 시장 조사, 사업 계획 등 전반적인 사업 준비 단계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故이병철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기반을 닦아 놓은 사업을 박정희 정권이 빼앗다시피 해 박 前 대통령의 동창인 故서정귀씨에게 넘긴 것.

이맹희씨의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이맹희씨는 67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이자 아버지 故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을 물려받은 초기, 실권자 이후락씨로부터 사업을 권유받게 된다. 당시 삼성은 박정희 정권의 견제로 인해 모든 사업에서 제재를 받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맹희씨는 이후락씨의 개인적인 권유라면 사업이 충분히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해 평소 염두에 뒀던 커피공장 사업을 제안하게 된다.

60년대 후반에는 전쟁 이후 부산 피난 시절 시작된 다방 문화가 번져 국내 커피 소비가 상당했다. 그러나 모두 미군PX를 통한 밀수품이었기 때문에 이맹희씨는 커피 사업이 해볼만 하다고 판단, 삼성 사원들을 책임자로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삼성물산의 직원을 선발해 시장 조사를 위한 팀을 꾸리게 된다. 이들은 전국을 돌며 커피 소비량을 조사했고, 연간 커피 소비량이 400톤에 달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보고서를 받은 이맹희씨는 본격적인 커피공장 준공을 위해 외국 커피 회사와의 제휴에 착수한다. 이맹희씨는 ‘맥스웰하우스’ 커피 동아시아 시장권을 갖고 있는 일본 맥스웰하우스 야마모토와 한국에서 커피를 생산하기로 합의에 이른다. 정부 실권자인 이후락씨의 제의에 의해 시작된 사업은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 같았으나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당초 제일제당과 국내 커피생산에 동의했던 일본 맥스웰하우스 측이 합작을 앞두고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 일본 맥스웰하우스 야마모토는 ‘이후락씨가 제일제당과 합작을 하면 절대 허가가 나지 않는다. 대신 서정귀라는 사람과 합작을 하면 바로 허가를 내주겠다고 했다’며 합작에 난색을 표했다. 이 같은 압박에 이맹희씨와 제일제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커피 사업을 서정귀씨에게 넘기고 손을 떼게 된다.

이에 동서식품을 설립하게 된 서정귀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동창생으로, 박  대통령이 일본이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 중위시절 하얼빈 부지사로 부임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서정귀씨는 이후 호남석유 사장으로 정유업계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독보적 위치…대표 비리·경쟁사 영업 방해 ‘오명’

창립 후 2년 뒤인 1970년 6월, 동서식품은 미 GF(General Foods, 제너럴 푸드)사와 기술도입 계약 및 합작사업 체결을 통해 합작투자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서정귀 회장이 47.1%, 미국 제너럴 푸드사가 33.4%의 지분을 확보한다. 합작을 계기로 서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은 신원희 사장은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동서식품은 그 해 부평공장(제1공장)을 준공하고 ‘맥스웰하우스 레규라 그라인드 커피’와 ‘맥스웰하우스 인스턴트 커피’ 생산·판매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커피 국내생산 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나 동서식품은 당시 사치성 기호품으로 여겨지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 막대한 외자를 투입해 공장을 세운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신원희 사장의 배임 및 횡령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신 사장은 회사주식의 2/3를 보유하고 있던 서 회장이 사망하자 이 주식 매수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리점으로부터 받은 거래보증금을 횡령해 주식대금으로 사용했다. 또 회사공금을 가불형식으로 횡령하고 개인사채에 회사명의의 어음·수표를 발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73년 10월6일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에 김재명(現 동서 명예회장)씨가 동서식품을 인수하게 된다. 서 회장은 앞서 제일제당이 다 이뤄놓은 동서식품을 빼앗다시피 설립했으나 막상 동서식품 운영이 생각만큼 쉽지 않자, 빼앗아온 제일제당에 공장 인수를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맹희씨가 인수할 의사를 보이지 않자, 당시 제일제당 사장이었던 김재명씨(現 동서 명예회장)가 퇴직금으로 이맹희씨 친척인 이홍희씨와 함께 개인적으로 동서식품을 인수하게 된다.

이로써 74년 김재명 사장 체제가 출범하게 된다. 조필제(前 제일제당 상무) 부사장과 이창업(前 제일모직 사장), 이인식, 이홍희, 김도생 등 새로운 주주들이 기존 경영권을 인계받는 등 조직전반에 걸친 개편이 단행되면서 동서식품은 제2의 창업기를 맞게 된다. 

김재명 사장은 정부의 유통조직 축소정책에 따라 판촉활동 강화를 위해 설립된 동서판매(주)를 해체한다. 이에 동서판매 이인식 사장이 동서식품 부사장으로, 김도생 상무가 동서식품 상무로 자리를 옮기게 되며, 동서식품은 소비자직거래 체제로 판매조직을 개편한다.

김재명 사장 체제를 갖춘 동서식품은 국내 최초 분말형태의 식물성 커피크리머인 ‘프리마’를 본격 생산하게 된다. 동서식품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이듬해 호주에 인스턴트커피 50톤을 수출하나, 그 이후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가 벅차 수출이 이뤄지지 않다 80년대 들어 재개됐다. 

1976년에는 김재명 사장이 초대 회장에, 이인식 부사장이 사장에 취임하면서 커피와 커피크리머, 설탕을 배합한 커피믹스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커피믹스 생산은 앞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분말 커피크리머인 ‘프리마’ 생산으로 인해 가능했다. 기존 동물성, 액상 크리머에 비해 프리마는 식물성 크리머로 보존성이 좋아 커피믹스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 이렇게 탄생한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을 현재 커피믹스 시장 1위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이듬해 동서식품은 포장재 생산과 보온병 제조를 위해 아폴로보온병을 인수한다. 동서식품 김재성 이사가 회장 겸 이사로, 동서식품 김도생 상무가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권을 인수하게 된다. 이후 아폴로보온병은 이름을 (주)유동기업으로 바꾸고 이후 (주)동서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꾸고 코스닥에 상장하게 된다. 동서는 현재 동서식품의 지주회사 격으로,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동서식품 김석수 회장의 형인 김상헌 회장이 이끌고 있다. 

1980년, 이인식 사장이 2대 회장으로, 조필제 부사장이 사장에 선임된다. 그 해 10월 동서식품은 동결건조커피인 ‘맥심’을 내놓는다. 앞서 판매하던 열풍분무건조(SD, Spray Dry) 공법인 ‘맥스웰하우스 인스턴트커피’에 비해 커피향을 그대로 보존한 제품으로 인기를 끌게 된다.

동서식품은 ‘맥심’을 앞세워 커피 시장 88%를 점유하며 미주산업과 함께 독과점 업체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시장 독과점 상황에서도 불구 내수판매가 부진하자, 동서식품은 프리마 수출 등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한다.

이후 업소용커피류에 주력하던 미주산업이 인스턴트 커피시장 참여를 결정하면서 인스턴트 커피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동서식품의 위상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주산업은 스위스 네슬레사와 51:49의 출자비율로 미주식품을 설립, 네슬레 상표 커피생산 계획을 밝힌다. 이에 동서식품은 미국 GF사의 출자비율을 49%까지 높이게 되고 국내 커피시장에서 외자사의 제휴를 기반으로 한 경쟁이 시작됐다.

동서식품은 미주산업의 인스턴트 커피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영업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유통업체에 경쟁사 제품을 취급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어길시 자사 제품 납품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경쟁사의 영업활동을 방해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기에 이른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동서식품은 언론을 통해 해명사과문을 게재하는 망신을 당한다.

◆커피시장 경쟁 심화…사업 다각화 주력

커피시장에서 동서식품과 미주산업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서식품은 83년에는 꿀(건강보조식품), 84년 곡물가공식품, 85년 국산차 등 사업영역 확장에 나섰다. 앞서 창립 초기 커피사업과 함께 국산차 생산을 해왔으나 이후 사업을 접은 뒤 최근 정부의 국산차 장려 움직임에 다시 사업을 재개한 것이다.

이후 80년대 후반 1600억 규모의 커피시장에서 동서식품(90%), MJC(舊 미주산업, 8%), 조치원식품, 한국커피 등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자, 동서식품은 종합식품회사로 본격 탈바꿈을 시도한다. 이에 1987년 9월 유가공 사업 진출을 위해 인천축협우유를 인수하고, 라면사업을 위해 청보식품 인수에 나섰으나 라면시장 진출은 무산됐다.

이 같이 동서식품이 80년대 들어 사업다각화에 주력한 가장 큰 이유는 커피시장의 경쟁 심화 때문이다. 1984년 941억 매출을 기록한 동서식품은 1985년 1240억, 1986년 1725억을 돌파하며 30% 수준의 매출 상승을 기록했으나 1987년에는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하지 못한다. 커피시장 경쟁은 1989년 네슬레와 손잡은 두산그룹이 뛰어들면서 더욱 과열됐고,  특히 커피수입자유화는 여러 업체들의 커피시장 진출과 캔 커피 출시 등을 가능케 했다.

미원이 MJC를 인수하면서 커피시장은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두산그룹과 네슬레 합작사), 미원이 3파전을 펼치게 된다. 그 동안 동서식품은 독보적인 지위 탓에 소비자 대상 프로모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위기를 의식한 듯 각종 판촉 행사와 더불어 제품 디자인 개선, 신제품 개발로 돌파구를 찾게 된다.

   
1980년 발매된 동서식품의 동결건조커피 '맥심'. 맥심커피는 맥심커피믹스와 함께 동서식품의 주력 제품으로 커피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네슬레가 1990년, 국내 커피시장 진출 1년 만에 당초 목표했던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하면서 커피시장 판도 변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커피전쟁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는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열띤 판촉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양사는 과다 경품 제공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인스턴트 커피뿐 아니라 캔 커피 시장도 과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기존 커피업체들뿐 아니라 음료업계의 진출이 활발해졌고, 롯데칠성음료, 코카콜라, 해태음료 등이 캔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코카콜라는 네슬레와의 합작법인인 코카콜라네슬레리프레시먼트(CCNR)를 설립하고 캔 커피를 출시한다.

업계 전체가 경쟁으로 흉흉한 가운데, 특히 동서식품은 임금교섭으로 인한 파업으로 회사 안팎으로 진통을 겪게 된다. 캔 커피 시장 1위인 동서식품이 노사분규로 캔 커피 출고를 중단하면서 롯데칠성음료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되고, 동서식품의 시장 1위 지위가 위태로워진다.

결국 동서식품은 CCNR에 캔 커피 시장 1위를 내놓게 된다. 이후 동서식품은 캔커피 선두를 되찾지만 유지에 실패해 3위까지 밀려났다 현재는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 우물 파왔다? 종합식품회사 도약 거듭 실패

동서식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맥심’ 커피믹스다. 커피생산을 위해 설립됐고 현재 커피믹스 시장에서 점유율 78%를 차지하며 커피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종합식품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사업 다각화에 실패한 과거가 있다.

캔 커피 시장 선두를 빼앗긴데 이어 동서식품의 다른 사업영역에서도 악재가 겹치게 된다. 유가공 사업과 외식사업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면서 커피시장에서의 입지도 위협받고 있다. 

1992년 유가공업계의 비수기인 겨울, 업체들의 신제품 출시와 원유 비축을 위해 집유 경쟁이 계속되면서 원유부족현상이 발생한다. 이에 동서식품은 무리한 집유권 확보에 나서다 분유 배정에서 제외되는 상황에 이르러 유가공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후 1995년 동서식품이 생산·판매하던 동서우유에서도 타사 제품과 마찬가지로 항균물질, 항생물질이 검출됐다는 정부 발표로 인해 우유 매출이 급감하게 된다. 이 같은 우유파동으로 판매부진 등 어려움을 겪던 동서식품은 8년여 만에 유가공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인스턴트 커피 보급으로 원두커피시장이 하향세로 돌아섰으나 90년대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면서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동서식품도 ‘헤르젠’이라는 커피전문점을 열고 가맹 사업에 진출한다. 이와 함께 외식사업에도 발을 들이게 된다. 패밀리레스토랑 ‘아리조나’를 선보였으나 현재는 커피전문점과 외식사업 모두 접은 상태다. 

커피 외 사업영역에서도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네슬레가 국내 시장 진출 3년 만에 점유율 30%대까지 치고 오르면서 동서식품을 위협하게 된다. 현재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가 각각 78%, 20% 정도의 점유율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남양유업과 롯데칠성음료가 커피믹스 시장에 참여하면서 커피믹스 시장 경쟁은 더욱 과열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하지 못한 동서식품이 사활을 건 커피시장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