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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빼내기’ 당했던 88년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의 대한항공 스카웃…‘기업윤리 저버린 부도덕 행위’ 맹비난

전훈식 기자 기자  2011.05.11 12: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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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항공사간 ‘조종사 빼내기’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과거에 자사 조종사를 다른 항공사에게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대한항공으로선 그 ‘쓴맛’을 알만도 하겠지만, 대한항공은 에어부산이 주장하는 ‘조종사 빼가기’ 주장에 ‘정당한 방법으로 조종사를 채용했다’며 끄덕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에어부산은 ‘대한항공이 중소항공사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대한항공의 행위의 불공정성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에어부산은 대한항공이 자사 부기장들을 채용해 운송에 지장을 줌과 동시에 공정사회 추구 및 대·중소기업 상생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대한항공을 신고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정당한 채용절차를 거친 사안으로 에어부산이 조종사들의 직업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20여년 전의 조종사 빼가기 논란이 새삼 재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에도 대한항공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입장은 지금과 반대였다.

◆88올림픽 당시, 700명 중 10명 스카웃

1988년 8월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조종사 빼가기’ 문제를 제기했다. 그해 2월에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스카웃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한항공은 88올림픽 당시, 아시아나가 자사 조종사를 스카웃해 안전운항에 지장을 준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참조 경향신문)
제2 민항사인 아시아나의 발족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대한항공은 직원들이 아시아나항공으로 자리를 옮기자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정상운항에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이유로 정비를 포함한 일체 기술 협조를 거부하며 과민반응을 보였다. 

당시 대한항공은 “기업 윤리 및 인사질서를 크게 어지럽힌다”며 “대한항공이 투자한 교육훈련비를 공짜로 얻겠다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발표했고, 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뿌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여수, 서울-울산 간 노선을 각 1편씩 감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업계는 “700여명의 조종사 중 1.4%에 해당하는 10명이 빠졌다고 정기선 운항을 줄인 것은 경쟁사를 의식한 지나친 조치”라며 “감편노선 역시 수익이 시원치 않은 국내선을 대상으로 해 국민을 볼모로 뜻을 이뤄보겠다는 졸렬한 발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참조 경향신문 1988년 9월2일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했나?

이번 대한항공의 에어부산 조종사 빼가기 논란의 경우,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게임 등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로 당시 정부는 신규 항공사 도입을 독려했고 국내 여론도 제2 항공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런 정황 때문에 대한항공은 경력 조종사가 아시아나 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특별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큰 항공사가 이제 갓 태어난 항공사를 상대로 ‘몽니’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당시와는 반대다.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소형사인 에어부산의 조종사를 영입한 데 따른 심각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에어부산은 대한항공을 ‘불공정 행위’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종사 빼내기 논란은 형식적으로는 공정위 결정에 따라 마무리 될 예정이지만 대한항공의 불공정 행위 혐의는 쉽게 판가름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 같은 저가항공사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대형 항공사가 중소기업의 인력을 공개 채용하는 등의 불공정한 행위에 문제가 있다”며 “개선을 촉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의 요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3조의 2’ 3호(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와 4호(새로운 경쟁사업자의 참가를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에 적용 여부로 파악된다. 특히 에어부산은 부기장 이탈로 항공기 운영에 심대한 지장을 준다는 점과 이로 인해 신생항공사 존립 위협 등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반박 역시 만만찮다. 대한항공 측은 “경력 조종사 채용은 지원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오히려 저비용항공사나 특정 항공사 출신 조종사들의 지원을 제한하거나 불합격 처리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항공사들의 항공기 도입과 신규 취항 등으로 오는 2016년까지 약 1600명 정도의 조종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의 ‘개인 선택 문제’와 에어부산의 ‘불공정행위’라는 엇갈리는 주장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조종사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한항공 측은 최근 ‘조종사 빼가기’ 논란과 관련 “표현 자체가 틀리다”는 입장이다. 소정의 지원자격을 갖춘 조종사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공개채용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빼가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1988년의 ‘조종사 빼가기’ 사례에 대해서는 아시아나항공 측은 당시 대한항공의 조종사를 스카우트했고, 최근 대한항공의 경우 공개채용 형식이었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대한항공 측은  “아시아나항공은 당시 10명이 아닌 30여명의 조종사를 스카우트해 당사에 큰 피해를 입혔다”며 “당시 정부(교통부)는 조종사 스카우트 방지에 관한 행정명령을 시달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