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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1년 4월 ‘아, 서태지’…“마구 걷어채이는 슈퍼스타 서태지.”

최봉석 기자 기자  2011.04.22 19: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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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이메일 답장, 이지아닷컴, 이지아 졸업사진, 김종서 서태지 당부, 이지아 결혼증명서, 이지아 공식입장 발표, 서태지 과거 인터뷰 화제. 2011년 4월 슈퍼스타 서태지가 싸구려 기사들로 마구 걷어채이고 있다.
[프라임경제] “마구 걷어채이는 슈퍼스타 서태지.”

2011년, 한국 언론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는 서태지의 모습을 한 줄로 표현해봤습니다.

19년 전인 1992년, 21살의 나이로 음악시장을 평정하고 수년에 걸쳐 ‘음악대통령’으로 군림하면서 자신에 대한 말도 안되는 공격과 음해를 꿋꿋하게 견딘 채 ‘제왕’과 ‘신화’로 존재했던 서태지가 20주년의 찬란한 음악인생을 불과 1년 앞두고 그 위상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순전히 서태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팬들과 함께 했던 영광스럽고 찬란했던 음악 여행을 내년인 20주년에 지금보다 더 멋진 모습으로, 아무런 오점과 흠집없이 대중 앞에서 중간 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어제 오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속사 조차 과거를 모르는 ‘외계인’ 여배우 이지아와 결혼 소식이 한 스포츠신문을 통해 전해지면서 서태지는 안팎으로 가장 큰 위기에 처한,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힘없고 불쌍하고 나약한 가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서태지와 서태지 측근들은 그 어떤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고 조심스런 행보를 하고 있는데, 이지아와 이지아 측근들의 입을 통해 서태지는 지금 대국민사기극을 벌인 최악의 가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9년동안 팬들을 속이고 가수로 활동을 해왔다” “팬들에게 마누라라고 부르며 음악활동을 빙자해 돈을 긁어 모았다” “변심한 이지아에게 팬들이 준 돈을 몽땅 퍼부었다.”라는 3류 양아치 글부터 시작해 “서태지는 정신 이상자” “서태지는 사기꾼” 등의 글쓴이의 정신을 의심할만한 글들도 속속 올라옵니다.

서태지와 이지아가 실시간 검색어로 등극하면서 ‘이지아닷컴’ ‘이지아 졸업사진’ ‘서태지 딸’ ‘서태지 그림’ ‘서태지 아들’ ‘서태지 자녀’ ‘서태지 과거 인터뷰 화제’ ‘서태지 재산’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뜨면서 서태지는 현재 뜻하지 않게 대중들로부터 계속 시달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침묵 행보를 벌이고 있는 ‘거대 권력’ 서태지를 두고 여기서 저기서 신명나게 발로 걷어차며 서태지를 집 앞 동네 놀이터에 주인없이 굴러 다니는 축구공쯤으로 생각하듯 ‘서태지 죽이기’에 너도 나도 나서고 있습니다.

본론입니다. 결혼은 분명컨대 사생활입니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철저한 개인적 사생활을, 법원도 쉽게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 두 사람만의 비밀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엄청난 자랑인 듯 ‘3끼 밥 먹듯이’ 카메라 앞에서 노출하고 또 이에 환호하고 박수하는 대중들에겐 이지아의 결혼과 이혼 폭로가 ‘훔쳐보기’ 차원에서 즐거운 요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서태지란 사람에겐 인간 ‘정현철’이라는 신분으로 소중했던 과거지사이고 최측근들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은(대중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오로지 그만의 ‘추억’이었습니다. 적당한 예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위해 조용한 교회나 성당을 찾아 촛불 하나 켜놓고 단 둘이 조촐한,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서태지라는 인물이 입을 꼭 다물고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이지아 측의 입장만 들어도 서태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서태지 역시 90년대에는 지금 ‘잘 나가는’ 슈퍼스타급 연예인들처럼 ‘잘 나가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지금 연예인들은 누구누구랑 사귄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면 박수를 받는 세상이지만 92년, 93년도에는 좀처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서태지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숨겼던 것이고, 한국에서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마음에 들었던 여자친구가 미국에서 생긴 것 같습니다.

굳이 이지아 측의 보도자료 내용을 빌리지 않더라도 90년대 초반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서태지는 1994년 3집 활동부터 외부세력의 본격적인 공격을 많이 받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위기와 아웃사이더들의 위협은 서태지와 서태지 팬들이라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힘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에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한류’를 당시 ‘한류’라는 이름조차 없을 때 일본 진출 등을 통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단순히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힘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도 스스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최루탄을 볼 수 없었지만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이 최고의 인기였을 때 전국의 거리는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집회와 시위로 봇물을 이뤘고, 통일을 갈망하는 전국 대학생들의 몸부림도 전성기였습니다. 1등 지상주의가 전국 중고등학교 곳곳에 침투하면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면서 교육현실에 대한 비난 여론도 들끓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지도자들의 한국사회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좌표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서태지는 ‘발해를 꿈꾸며’를 통해 통일을 외쳤고, ‘교실이데아’를 통해 교육의 혁명을 갈망했습니다. 물론 서태지가 내놓은 좌표에 공감하는 목소리보단 비난 여론이 쇄도했고, 서태지 죽이기가 본격화됐습니다.

서태지는 사탄과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으로 묘사됐고, ‘1위를 독차지하는’ 서태지는 가요계에서 퇴출되어야 할 적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서태지와 서태지의 음악은 이용당했고, 서태지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기엔 주변 여건이 너무나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서태지는 팬들의 절대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4집 활동까지 한국 사회 최고의 이슈 메이커는 됐지만 ‘시체를 노리는 까마귀’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는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태지에게 보이지 않는 시련이 닥쳤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서태지는 그렇게 4집 활동을 마지막으로 96년 1월 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은퇴를 공식 선언,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서태지라는 이름을 벗어 던지고 정현철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정현철의 심정으로 생각한다면, 그때 정현철의 심정은 이랬을 것 같습니다. “서태지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나 힘이 들다, 절대 서태지로 돌아가지 말자,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자”라고.

서태지는 그때 여자친구를 알았고,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 여자만을 위해 올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프로포즈도 멋지게 했고, 두 사람의 바람대로 결혼도 했던 것 같습니다. 서태지는 이때까지만 해도 절대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었던 같습니다.

결혼발표 타이밍을 서태지가 놓쳤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서태지는 정현철의 신분으로 결혼을 발표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결혼한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서태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결혼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추측기사는 자제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회사의 클릭수를 먹는 것이야 해당 언론사의 자유겠지만, 받아쓰기 보도와 카더라 통신은 자제해야 합니다. 속단은 절대 금물입니다.

서태지 측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혼시기가 다르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또한 50억원대 규모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공방이라는 한쪽의 주장만 나왔지, 왜 이 같은 거액의 소송이 제기됐는지 분석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그저 서태지의 재산이 50억원 이상일까? 하는 관심은 ‘니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방식으로 관심표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소송금액이 50억원대인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는 눈치입니다. 그러면서 서태지를 나쁘다고 욕하고 있습니다.

서태지의 결혼과 이혼이라는 충격요법이 한국사회를 뒤흔든지 벌써 이틀째입니다.

팬들과 의사소통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서태지가 지금까지 조용한 이유는, 결국 서태지라는 인물과 상관이 없는 정현철이라는 인물과 이번 소송이 연관돼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서태지는 늘 정현철과 서태지는 별개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해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서태지가 오래 전 어느 인터뷰에서 “정현철이 서태지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서태지가 조금 독특하고 기괴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유명 연예인들처럼 결혼한다고 여기저기 동네방네에 소문내고, 엄청난 축의금을 받고, 언론매체들을 가려서 초대하고, 지인들만 초대하는 비밀 결혼식을 한다면서 언론에 소문내는 그런 결혼식엔 관심과 흥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서태지의 결혼법에 이지아도 당시엔 고개를 끄덕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파가 잠잠해질수록 서태지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라 조성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지아가 위자료를 받으려면 이혼의 책임이 전적으로 서태지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지만 서태지가 음악적 외길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을 이지아가 몰랐을 상황도 아니고, 이지아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것처럼 평범하지 않은 서태지의 직업과 생활방식, 성격차이 등이 이유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이혼의 책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할 수 있는 요인은 되겠지만, 위자료를 받기 위한 이혼의 책임이 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이지아에게 대중들은 묻습니다. 서태지의 실체를 모르고 결혼했나요?

내가 하면 로멘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합니다.

사귈 때는 좋게만 보이던 그의 평범하지 않은 직업과 생활방식, 성격차이가, 막상 살아보니 안좋게 보였는지를 묻고 싶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피하겠습니다.

다만, 평범하지 않는 직업과 생활방식, 성격 등이 문제라면 왜 본인은 평범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했고,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생활방식을 선택하고, 대중들 앞에서 이상한 성격으로 손가락질 받는지 답변을 공식적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혹시, 남편인 서태지로부터 그런 행동을 배웠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배웠다면 당장 위자료 소송을 취하하세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제와서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이유들로 서태지에게 책임론을 돌리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입니다.

서태지에게 책임이 크다는 것을 소명하기 위해선 서태지가 바람을 피는 것 정도가 맞을텐데, 서태지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자신의 음악팬들을 향해 ‘마누라’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낸 것이 혹여나 바람을 피는 행위에 속한다면, 가정법원에서 신중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재산분할은 이혼 후 2년, 위자료는 3년이 지나면 소멸 시효가 완성되므로 서태지 측이 아직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서태지가 또 다른 반론을 펼친다면 이지아의 주장은 곧바로 설득력이 없어집니다.

이지아는 남편인 서태지도 잃고, 애인인 정우성도 잃고, 나아가 연예인으로서 가치도 상실하게 됩니다. 말 그래도 최악의 선택을 한 셈입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의문을 갖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해결할 문제를,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공방을 벌여왔던 문제를, 그 어떤 측면으로 해석해도 이지아에게 불리한 이 상황을, 왜 2011년 4월 어느 날, 끄집어냈는지 말입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 이지아는 저런 이상한 색깔의 ‘불리한’ 카드를 꺼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고, 도대체 가정법원의 누가 모 스포츠지 기자에게 이런 묘한 시점에 저런 특종거리를 줬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여전히, 서태지를 깎아내리며 서태지를 ‘씹는’ 아이템을 찾느라 부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음악을 꿈꿔왔던 음악인들과 서태지를 아는 사람들에겐 당면한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 각박하고 가혹합니다.

지금은 서태지를 죽여야만 장사가 되는 시점입니다. 서태지 변론은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태지가 96년 팬들 곁을 훌쩍 떠났을 때와 상황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너무 비판적인 관측일까요?

서태지는 교주가 아니었습니다. 신비주의를 내세운 적도 없습니다. 언론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신비함이나 은밀성은 대중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때 신비함이 존재하고 은밀성이 존재하는 행위입니다. 서태지는 그런 측면에서 신비함과 은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몰래 결혼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다수의 팬들을 믿고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었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결심했고, 정현철로 돌아갔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을 것이라고 저 역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이 다시 하고 싶었고, 그런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던 팬들이 보고 싶었고, 파란 하늘 속에는 팬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았고, 밤마다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별보다 반짝이던 팬들의 눈빛이 생각나서 이지아에게 다시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서태지는 용기를 내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갈등과 충돌은 여기서 비롯됐고, 결국 서태지의 주장대로 2006년 결혼생활을 마무리한 것 아니냐는 게 이번 사건을 이틀 동안 지켜본 저의 생각입니다.

서태지가 “걱정말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팬들의 주문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2011년 4월 22일 오후 7시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