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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저축은행 문제, 맥나마라式 자성 기대한다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4.22 12: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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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대한 청문회가 마련됐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저축은행이 부실화돼 금융업 전반에 주름살을 깊게 해 국회에 전·현직 금융당국 수장들을 불러모아 내막을 되짚은 것이다.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 규명 및 대책 마련을 주제로, 여야 의원들은 △예금보호 한도 상향 △상호신용금고 명칭 변경 △'8·8클럽' 여신한도우대조치 등 저축은행 부실을 초래한 것으로 지적된 쟁점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오간 질문과 답변들을 보노라면, 여야간 입장차에, 당국자들의 책임 외면으로 문제의 원인을 밝혀낸다는 청문 취지에는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제 1야당인 민주당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대에 집권 여당이었고, 한나라당은 저축은행과 관련,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지난 10년간 야당이어서 정무적 책임에 대한 시각차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고, 자존심 강한 당국자들로서는 자신의 업무 판단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문제는 논의하는 일이 기본적으로 반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패턴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자기 입장만을 외치는 말의 향연으로 흘러가면서 문제를 밝혀내는 청문회의 기본 취지에 하등 부합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시간을 할애해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던진 “저축은행들이 당시 먹을거리가 없어서 PF를 찾았는데, 증인이 장관된 이후 골프장을 250개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저축은행 PF가 다시 늘어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이헌재 전 부총리는 “골프장 200개 건설을 허가한 것은 PF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거나, 민주당 우제창 의원의 “현 정권 들어 저축은행과 건설사 간 위험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2006년 우대조치를) 유지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윤증현 장관이 “지금에 와서, 지금의 시각과 잣대로 주장하신다면 정부가 정책을 선택하거나 변경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맞받은 부분은 특히 우려스럽다.

정책 판단에 재량을 인정하고 여론몰이식으로 몰매를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과, 거시적으로 또 회고적으로 과거 정부 정책과 그 파급 효과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다르다.

전체적인 경제 흐름에서 볼 때, 당시 어떤 (부동산) 정책이 다른 (금융) 문제에서는 어떤 파급 효과를 일으킨 것을 뒤늦게라도 되짚어 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위 당국자가 가져야 할, 경제 전체에서의 정책이 갖는 의미 조망이라는 역량과도 관련이 깊다. 이제 와서 그걸 지금 다시 평가하면 어렵다거나, 이 문제와 저 문제는 관련 없다는 식으로 답이 돌아오는 것은 업무 폭이 좁은 하위 실무직 공직자에게서라면 모를까 고위 당국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이런 맥락으로 청문회에 나와 답을 하려면, ‘주사 행정(6급 공무원이 실상 많은 일을 떠맡은 과거 행정 실무를 비판하던 말)’의 시각으로 일을 해 왔기에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는 전제를 깔아야 적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전이 끝나고 20년 후인 1995년 나온 ‘과거를 돌아보며: 베트남전쟁의 비극과 교훈’ 회고록을 되짚어 보려고 한다. 전쟁 당시 미 국방부를 이끌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전 장관은 날카롭고 치밀한 사고능력으로 인재가 많은 미 정부 내에서도 ‘면도날 두뇌’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런 천재적인 인물이 14개 항목으로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중대한 오판들을 뼈저리게 반추, 정리해 낸 것이 이 책이다.

보기 드문 문제가 발생했는데, 자신이 맡았던 개개의 연결고리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미시적이고 수세적으로 방어형 답안들만 속출하는 상황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당장 머릿수대로 ‘1/n’로 기계적으로 책임의 나눗셈을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없는 책임을 의제(擬制: 본질이 다른 것을 일정한 이유로 인해 동일한 것으로 간주함)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지만, 어떤 형태로든 진
   
 
솔하고 깊이 있는 해설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를 충족하는 이가 청문회에 출석한 금융 수장 8명 중에는 없는 것 같다. 오늘날 청문회에 나왔던 금융 수장 중 누군가는 20년내로 “역시 그 자리에 아무나 오르는 게 아니야”라는 소리가 나올 만한 회고록을 남겨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