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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차별 폭력에 무방비 노출된 고객상담사들

김병호 기자 기자  2011.04.13 1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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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 때문에 작은 동물은 죽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겐 일상 중의 언어가 이런 ‘돌멩이’가 되곤 한다. 인터넷 악성댓글로 인해 실제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수차례 목도해왔다.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무자비한 언어 공격과 치명적 상처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전국민을 경악케 하는 아동 성폭력사건,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금할 수 없게 만드는 버스·택시기사들에 대한 강도·폭행사건 등…. 이처럼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에 대해선 다각도의 방지책이 마련되고 있다. 아동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화학적인 거세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 버스기사나 택시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투명보호막이 쳐지고 있으며 버스 운전기사를 폭행할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의거, 3년 이상의 징역형이 떨어진다.

우리는 육체적인 피해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도 심각한 폭행이 습관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 이슈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곳의 폭력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컨택센터 상담사들의 고충을 접한 기자는 너무 놀랐다. 갖은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이런 현상을 일상생활 정도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 무척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어떠한 방지책도 없다는 점은 실로 충격적이다.

다수의 컨택센터 상담사들에 따르면, 습관적으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고객들로부터 받는 상처와 모독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고객은 왕, 서비스 종사자들은 종’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상담사들을 죄인 다루듯 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 상담사들은 말 그대로 기업과 소비자 입장을 적절히 융화해 문제점을 접수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객들이 인격모독적 언사를 퍼붓곤 한다. 성희롱 발언도 다반사고, 마치 세상에서 겪은 멸시에 대한 분풀이를 상담사에게 다 털어놓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상담사들에게는 이런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일이 일상사다. ‘일하다 보면 다 그런 거지’, ‘빨리 잊어버리고 털어내는 게 최고’, ‘별 뾰족한 수가 있나’ 등의 생각으로 받은 상처가 아물기만을 기다린다. 언어폭력을 일삼는 고객들을 상대로 강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기업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담사들의 인권이 이처럼 짓밟히고 있는 현실은 그냥 넘기기 어려운 일이다.

언어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컨택센터 상담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고객의 입장을 대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상담사의 역할은 없어서는 안 될 주요 파트다. 왕 대접 받겠다고 작정한 듯 몰아붙이는 고객들 앞에서 상담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달래가며 문제 해결에 나선다. 하지만 이들의 힘든 처지는 이들로 하여금 일터를 떠나도록 부추긴다. 뛰어난 근무조건과 현장 환경이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무차별 폭력이 난무하는 곳을 ‘보람 있는 직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업들이 상담 인력난에 늘 허덕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지난 달 개최된 한국컨택센터협회 정기총회에선 이러한 상담사들의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좀 더 나은 근무환경 조건의 개선에 앞장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상담사들의 고객 대처 방안을 표준화해 상담사들의 대처요령을 통한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강제적인 제재조치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상담센터에서 중요한 것은 전문인력이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다. 뛰어난 순발력과 전문성을 갖춰 좀 더 빠르게 기업과 고객의 니즈에 대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이제 언어폭력은 상담사들이 스스로 삭혀야 할 문제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는 다른 파렴치한 범죄들과 똑같이 간주돼야 하고, 이를 중단시키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담사들이 약자의 입장에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언어폭력을 행하는 상담고객들을 범법자 취급하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실효성 있는 형사처벌만이 무차별 언어폭력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