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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구자관-아웃소싱 업계 ‘바위 위 거목(巨木)’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책임사원 ‘사람과 사는 삶’

김병호 기자 기자  2011.04.13 10: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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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첨단을 달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누구보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한 인물이 있다. 업계에서 그는 우리 곁에 가장 친숙한 선배이자 형님, 인생의 조언자인 친구로 통한다. 세간에 그는 35년 동안 삼구아이앤씨(구 삼구개발)를 경영해온 경영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인 그는 업계에 언제 들어왔는지 또 준비했는지 뚜렷이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는 1976년 5월15일이 납세 번호일 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전하며, 기억이 나는 삼구의 시작은 68년쯤이라고 소박한 미소를 짓는다.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책임사원·대표
그는 사업의 준비와 시작 등에 대해서도 별다른 뜻을 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삼구아이앤씨 를 떠올리며 현존하는 아웃소싱업계에서 경비·청소 등 종합 아웃소싱사업의 대부 격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말들은 가당치 않다며 가벼운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책임사원이자 대표인 그의 말을 들어본다.

◆무일푼, 저학력으로 시작한 열정

삼구아이앤씨의 약력은 1976년 법인설립 계기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업의 시작은 구 대표조차 기억이 희미하다며 말을 흐린다. 까마득한 1960년대 남들이 하지 않았던 미화용역을 시작으로 그는 지금의 삼구를 만들었다. 모르는 이들은 그를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다고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가슴 아픈 그의 노력과 사연이 즐비하다.

그는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7남매 중에 한명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부유한 가정환경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 시대 환경에서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제통치하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특별한 빛을 보지 못하며 자영업을 시작했다. 구 대표의 아버지는 양계사업, 고무사업 등 그 시대의 혁명적인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는 곧 연이은 실패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의 가족은 7남매를 포함한 9명으로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중에 공부를 시킨다는 것 또한 사치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7남매(딸 셋, 아들 넷) 중 하나만을 공부시키고 나머지는 어려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점점 가세가 기울며 끝내 그의 가정은 7남매 중 3명이 친척집을 전전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그는 초창기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가지지 못했다. 밀린 육성회비 등으로 인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 후 그는 생계유지를 위해 이른 나이에 일선에 뛰어들었고, 먹고 살기 위해 처음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무작정 미화 일을 시작했다. 무일푼에 저학력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진입장벽이 낮고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일이 미화 일이였던 것이다.

청소일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았다. 누구도 청소를 대신해 주는 구대표를 터치 하지 않았고 그는 1968년도에 일을 시작해 1986년도에는 연간 87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인원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매출이었다. 그는 지금도 “47살에 집을 마련했다”며 “순탄치 않은 삶이였고 자신과 같은 험난한 인생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올해 1000대 기업 진입 ‘2500억원’ 목표

대한민국에서 매출액을 기준한 1000대 기업이라면 지난해 연간 2300억원 이상을 기록한 기업들을 꼽을 수 있다. 삼구아이앤씨는 올해는 2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창출해야 명실공히 1000대기업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구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350만개의 기업들이 존재 한다”며 “삼구아이앤씨는 올해 2500억원, 1000대 기업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2350억원 정도의 매출이 잡혀 있어 150억원의 매출 발생은 올해 충분할 것이며 정확한 일정은 아니지만 좀 더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IPO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용으로 시작한 고객관리, 차별화 전략

아웃소싱은 생각의 전환을 통하면 업종자체의 특성상 특별한 차별화 전략이라는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현재 업계에서 모두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전문성 강화이고 뛰어난 인재 육성이다. 업계에선 이는 살아남기 위한 불문율에 속한다.

구 대표는 “삼구아이앤씨에게는 특별한 전략이나 특화된 것이 없다”며 광고와 같은 말을 전한다. 삼구아이앤씨 관계자는 “본사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신용, 고객과의 믿음, 사람을 기본으로 생각하며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 한다”고 전했다. 이 말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기본을 지키는 것 아웃소싱사업을 영위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고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고객만족의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다. 여기에는 특화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기본의 마음이 담겨있다.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대표(가운데)와 임원들.
삼구아이앤씨의 고객들은 특히 장기고객들이 많다. 일을 맡기고 다음해에 다른 기업들과 계약을 변경하는 일이 없는 삼구아이앤씨의 기업 이미지도 한몫을 한다. 삼구아이앤씨에게는 대한항공, 농심, 신도리코, SK 등 크고 탄탄한 기업들이 고정고객으로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삼구아이앤씨의 특별한 차별화 전략이나 특화된 전문성이 아닌 ‘기본’이라는 기업이념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기본에 대한 생각은 우선 계약에서 시작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며 연간 4억원의 적자를 무릅쓰고도 고객과의 약속을 볼멘소리 하나 하지 않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켜냈다”고 전한다. 이는 ‘계약할 때는 까다롭게 이후에는 퍼펙트하게 일을 하라’라는 삼구의 계약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으며, 업계와 우리에게 주는 책임경영과 신용, 믿음에 대한 교훈으로 설명된다.

◆목표는 성실과 노력의 결실, 꿈은 야무지게

그는 어려서 일을 하면서도 그의 목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그가 하고자 하는 업계에서의 충실이다. 그는 일을 겸하며 학업의 열정을 틈틈이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독학으로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인대학교를 2004년에 졸업한 것이다. 그의 늦은 학업에 대한 열정은 주변의 직원과 동기학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구 대표는 “현재 한 평생을 살아가며 글을 쓰는 것, 정치 등의 욕심은 없지만 두 가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평생에 내가 유일하게 학교다운 것을 나온 것이 용문 고등학교”라며 “모교의 총동문회장과 업계에 몸을 담은 만큼 경비협회 회장은 꼭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그의 열정을 모두 이뤘다. 총동문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경비협회회장직을 얼마 전 역임하고 퇴임한 것이다.

◆젊은 생각과 도전, 삶의 근원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과 도전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64살에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한 구 대표는 현재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에 재학 중에 있다.

삼구아이앤씨의 젊은 생각과 도전은 구 대표가 대학교를 다니던 때 빛을 발한다. 직장에서 오전 6시50분 모여 회의를 하던 것을 그가 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5시50분에 구 대표를 위해 회사의 임원들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억지로 등 떠밀리듯 한 인상을 지울 순 업지만, 공적인 일을 하며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열정과 신념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구 대표 “자신의 입장을 고려해준 직장동료와 틈틈이 자신의 학과 일정을 도와주던 선·후배,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며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여러 가지일을 하며 졸업을 했고 여러 신념을 지키고 바쁜 일정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들을 성사하고 소화했다. 이는 기업의 CEO로서 또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그의 주변사람들마저 변화시킨다. 또한 그를 통해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을 불태우고, 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 학생들은 할 수 있다는 삶의 열정, 노력을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44년생인 그는 지금 이순간도 삶의 열정을 위해, 기업의 대표가 아닌 기업의 구성원으로, 또한 ‘존중’이라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스스로에 충실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