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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피할 수 없는 선택 기초식량의 안보, 우리밀

박광근 박사 기자  2011.04.04 09: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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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광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벼맥류부 농업연구관

[프라임경제]1년 365일이 모자랄 정도로 연일 접하는 재앙이 우리에게는 멀게만 느껴졌으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온몸에 오싹한 전율을 느끼게 하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사태는 식량 부족과 식료품 가격폭등이 원인으로, 첨단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식량을 부정하고서는 어떠한 국가와 권력도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옛말에 삼일 굶어 도둑질 안하는 사람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가 폭등과 식료품값 인상이 뉴스가 아니라 피부와 입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풍요의 시대에 넘쳐나는 헤아릴 수 없는 편리한 생활용품들로 우리는 어느새 과학기술의 편익에 길들여져 있고, 없으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식료품이 부족하면 불편함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만 흉년이 들어도 그 여파는 엄청나게 크다.

내가 밀과 인연을 맺은 1984년은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 밀 수매가 중단되던 해였다. 당시 염원이었던 주곡인 쌀을 자급하게 되면서 제2 주곡인 밀에 대한 증산을 꿈꾸며 1977년 맥류연구소가 설립되었지만 14년 만에 문을 닫고 밀 식량주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20여년이 지났다.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미 480호 원조 밀가루에 의존하여 미국 밀가루에 익숙해지며 자랐던 당시 방과 후 사방공사에 나서 삯으로 받은 밀가루로 칼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푸레기(밀가루에 물을 붓고 버무려 걸쭉하게 쑨 죽)를 쑤어먹고 생활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어린 시절의 생활로 밀에 대한 애증이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빵류 보다는 면류인 칼국수, 수제비, 범벅, 부침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밀 수매가 중단되어 전국에 산재해 있던 정미소의 밀 방앗간은 문을 닫고 제분기도 모두 사라졌으며, 70년대 초 9만여ha에 이르던 밀 재배면적은 1992년에는 164ha 까지 줄어드는 시련의 시기를 겪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 90년대 초 순수 민간중심의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일어나면서 1~3천 ha 수준으로 명맥을 이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일본은 오래전부터 밀 11% 자급을 식량안보 차원에서 유지하는 정책을 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히려 13% 수준으로 자급률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대재앙 앞에서 일본인들의 차분함을 보며, 주곡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일본 정책의 원천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쌀 자급에 안주하여 제2 주곡인 밀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우리나라의 농토와 기후 환경은 주곡을 쌀과 맥류를 기반으로 하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여름에는 벼, 겨울에는 보리와 밀을 심으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 국제곡물시장의 급변에 따른 식량안보 위험을 크게 경감시킬 수 있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 입장에서 매우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농업도 농업자체만을 바라보는 우물 안 개구리 시각에서 벗어나 자립형, 나아가 선도형 농업으로 정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창조적 농업, 창의적인 밀농사, 혁신적인 밀 산업으로 발전하기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이다.

전통적인 농(農)도 호남지역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농촌진흥청도 주곡자급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20세기의 역동적인 힘을 모아 자연과 농토에 순응하는 21세기 창의적인 농업 발전에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박광근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벼맥류부 농업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