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단시간에 세계 2위로 급부상 했던 ELW(주식워런트증권) 시장,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만 봤던 기형적 구조의 이곳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ELW 시장에서 스캘퍼 즉, 초단타 매매 투자자와 증권사 간의 불공정 행위, 시세조작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은 지난 23일 5개의 증권사를 압수수색한데 이어 다음날인 24일 현대증권을 비롯 5개 증권사를 추가 압수수색하면서 조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지난 23일 삼성증권·우리투자증권·KTB투자증권·이트레이드증권·HMC투자증권을, 24일엔 현대증권·대신증권·신한금융투자·유진투자증권·LIG증권 등 모두 10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들 증권사들은 모두 그동안 업계에서 스캘퍼의 활동창구로 알려졌던 곳이다. 29일에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스캘퍼의 거래 기록을 확보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확인 결과 증권사들의 비리 사실이 일부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 다른 증권사에 대한 검찰의 추가 압수수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조만간 수사범위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증권사 임원 대거 포함된 스캘퍼 특혜
ELW는 기초자산을 미래의 한 시점에 미리 정해둔 가격(행사가격)에 사거나(콜) 팔 수 있는(풋) 권리를 거래하는 파생상품이다.
국내 ELW 시장은 지난 2005년에 처음 문을 열고 꾸준히 팽창하다 지난해 5월 일평균 거래대금 2조원 시대를 열며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이처럼 ELW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ELW가 주식투자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레버러지 효과’에 있었다. 하지만 고수익에는 항상 높은 리스크가 따른다. ELW는 시장의 방향성과 변동성에 따라 수익률이 극명하게 결정돼 도박성이 짙은 상품임에도 투자자들은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검찰이 증권사 10곳을 비롯 한국거래소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감행, 스캘퍼의 거래 기록을 확보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한국증권학회지 ‘ELW 시장의 가격 행태 분석’에 따르면 ELW 시장에서 스캘퍼를 제외한 개인 투자자는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 5645억원의 매매손실을 기록한 반면 스캘퍼와 LP로 참여한 증권사는 각각 1043억원, 1789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모 증권사 연구원은 “ELW 상품은 시장 방향성과 변동성에 따라 수익률이 극과 극으로 결정되는 구조로 투자자들의 경각심이 부족하고 충분한 지식 없이 대박만을 바라보고 뛰어드는 투기 형태와 같다”며 “ELW의 가격을 결정짓는 것은 내재변동성인데 ELW는 기본적으로 내재변동성이 크고 가격결정권을 갖는 LP의 공신력도 떨어져 ELW가 개인 투자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2009년부터 ELW 위탁매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스캘퍼 유치 경쟁에 열을 올렸다. 검찰은 이 부분에 주목하고 증권사들이 주요 스캘퍼들과 짜고 불공정 거래를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스캘퍼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단타로 수십억원을 굴리는 스캘퍼 한 명만 유치해도 증권사의 위탁매매 점유율과 수익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 증권사 파생상품 트레이더는 “증권사들이 스캘퍼들에게 빠른 속도로 매매가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서버를 열어주는 등의 특혜는 100% 가능한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례도 있다”며 “스캘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전직 증권사 임원도 대거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곪은 부위가 터지자 증권업계 ‘술렁’
검찰 수사로 곪은 부위가 터지자 증권업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ELW시장의 급락은 업계이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압수수색으로 개인투자자들의 ELW에 대한 불신으로 거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캘퍼들의 불공정 거래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던바 지난해 10월 감독당국은 'ELW 건전화 방안'을 내놨다. 일평균 2조2000억~2조3000억원대 거래량을 유지하던 ELW 시장은 감독당국이 내놓은 방안을 기점으로 일평균 거래대금이 1조4000억~1조5000억원 수준으로 위축됐고 이번 검찰 수사의 후폭풍으로 지난 24일 ELW 전체 거래대금은 1조190억원에 그쳤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검찰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서 ELW시장은 증권사와 스캘퍼들의 짜고치는 고스톱판이라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며 “신규 투자자유치와 기존 투자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될까 우려된다”고 털어놨다.
과열양상을 보이며 급성장한 ELW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그동안 대박의 꿈을 안고 뛰어들었지만 불공정거래 및 불리한 구조로 번번이 큰 손해를 봐왔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업계 이익과 직결된 문제라는 이유로 그동안 쉬쉬해 온 측면이 있다.
이번에 검찰이 금융감독원이나 거래소의 고발 없이 증권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감행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상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시장 정화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