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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직원 한달새 3명 투신자살, 왜?

직장동료 “까마득한 후배가 팀장 오르자 스트레스에 우울증”

박지영 기자 기자  2011.03.24 1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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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한항공 직원 세 명이 최근 한 달 새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지난 3월7일 늦은 밤,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권모(남·52) 사무장이 숙소인 R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권 사무장은 청주행 야간 비행근무를 마치고 R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중 베란다서 투신자살했다.

1987년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신입승무원으로 입사한 권 사무장은 2009년까지 국제선 팀장을 맡으며 기내서비스를 이끌었다. 그러던 지난해 8월 근무저평가자로 분류된 고인은 하루아침에 국내선 일개 승무원으로 좌천됐다.

이와 관련, 직장동료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제선 국내선을 떠나 권 사무장의 경우 차장급으로 국제선 팀장까지 맡아오다 지난해부터 보직 없이 일반 국내선 승무원으로 일했다”며 “여기에 까마득한 후배가 국제선 팀장에 오르자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귀띔했다.

A씨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직원을 대상으로 근무평가제를 실시, 하위 5%에 해당하는 ‘C플레이어’에겐 업무상 불이익을 줘 사실상 퇴사를 종용했다. 권 사무장은 지난해 ‘C플레이어’로 지목됐다. 대한항공은 또 일명 ‘X맨 제도’를 도입, 동료들끼리 서로를 감시감독하게 했다고. 특히 동료 잘못을 고발한 직원에겐 플러스점수를 주기도 했다는 게 다수의 내부직원 전언이다.

◆“X맨제도, 동료들끼리 감시감독”

이보다 하루 앞선 6일에도 대한항공 기체정비팀 박모(남·39)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3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부산정비공장서 항공기 부품제작 업무를 보던 박씨는 이날 밤 부산 안락동 자택 아파트서 추락사했다.

박씨는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으로 5년 전부터 정신과치료를 받아왔지만 최근엔 적절한 상담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직원의 잇단 자살은 지난달 중순에도 벌어졌다. 지난 2월14일 새벽 임 모(남·41)씨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 대한항공 신갈연수원 옥상에서 떨어져 숨졌다. 숨진 임씨는 객실승무원 진급대상자 문제출제를 위해 연수원에 입소했다가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인은 한 달 후면 그토록 바라던 둘째를 안아볼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1996년 대한항공 신입승무원으로 입사한 임씨는 최근까지 객실업무와 무관한 변호사 업무지원과 국토해양부 업무지원을 맡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 B씨는 “객실승무원이었던 임씨가 실제로 했던 업무는 변호사 지원업무 및 국토해양부 지원업무였다”며 “그중 고인은 변호사 지원업무를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B씨에 따르면 변호사 지원업무란 변호사와 상의해 객실승무원 징계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에 대해 B씨는 “고인은 늘 동료의 징계를 정당화하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하곤 했다”며 “주머니에 ‘업무자체가 힘들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힌 메모지를 항상 갖고 다녔다”고 덧붙였다. 

◆일반노조-조종사노조 ‘엇갈린 반응’

대한항공 직원들의 잇단 자살 사건과 관련, 대한항공 홍보실 관계자는 “(자살한 이들이) 업무와 관련해 자살을 했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거니와 유족들이 산재 신청을 한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원치도 않는다”고도 했다. 

대한항공노동조합은 말을 아꼈다.

노조 측 관계자는 “(이 사안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어렵다”며 “죄송하다”고 짧게 말한 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반면, 또 다른 노동조합인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일반노조의 ‘모르쇠 태도’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고인들의 경우 일반노조 소속”이라며 “자신의 조합원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홈페이지나 그 어디에도 이와 관련해 일언반구도 없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노조는 지난 46년 간 사측 눈치만 살살 살피고 있다”며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었다면 고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그리 허무하게 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직원의 자살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7월10일 낮 12시30분께, 대한항공 기체정비팀 최 모 과장이 15년간 몸담고 있던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지붕서 투신자살했다.

당시 유가족 측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

처남 정 모씨에 따르면, 최 과장은 UA항공기 납품을 일주일 앞두고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해 한 두 시간만 눈을 붙인 후 다시 새벽 3~4시에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지난 한달 간 고인의 몸무게는 자그마치 8kg이나 줄었다고.

사건 당일에도 새벽 2시20분경 퇴근해 집에 왔다가 다시 샤워만 하고 새벽 3시께 회사로 출근했다는 게 유가족 측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