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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뱅크論’…고개숙인 여의도, 고개든 회현동?

[심층진단] 우리은행 메가뱅크 중심론…‘대마불사 구상 불과’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3.24 10: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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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들어 ‘메가뱅크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메가뱅크론자로 알려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산업은행 입성이다. 논의 가운데는 우리금융지주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각도 포함돼 있다. 이명박 정부의 유력자 중 하나인 이팔성 회장이 연임을 한 상황에 민영화 추진 그 이후를 구상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반영된 풀이다.

이런 와중에 산업은행과 당국 쪽은 메가뱅크론에 속도 조절을 하고, 우리금융의 근간을 이루는 우리은행 쪽에서 오히려 자신만만한 발언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회장과 더불어 민영화를 이끌 신임 은행장이 공식 절차인 주주총회 승인 전에 내놓은 발언이라 더 눈길을 끈다. 

행장 내정자 “우리은행이 중심에 있을 것”

우리은행의 이순우 행장 내정자는 22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메가뱅크론과 관련 “어떤 경우가 됐든 그 중심에는 우리은행이 있을 것이다. 은행의 가치에는 인력, 자산규모와 이익 규모 등의 눈에 보이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은행만의 특징인 고객 구성 포트폴리오를 보면 우리은행이 어느 은행도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하고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면서 메가뱅크 탄생의 중핵을 떠맡을 역량이 충분하다는 관점을 드러냈다.

같은 날 산업은행 쪽에서는 몸을 한껏 낮춘 발언이 나왔다. 강 행장은 “산은금융지주 민영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책당국이 결정할 사안(강 행장은 산은지주 회장도 겸임함)”이라고 전제했다.

강 행장은 기자상견례에서 평소 소신이던 ‘메가뱅크’는 물론이고 산은 민영화를 둘러싼 여러 현안에 대한 질문에 “보고를 받았고 어떤 게 최선일지 고민하고 있다. 다음에 차차 이야기하겠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 4월 중순께 워크숍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논의한 다음 방향을 정하겠다”며 시간 벌기에 나섰다. “감독(금융당국)과 배우(산은금융지주)의 역할은 나뉘어 있다”고도 했다. “(다른 은행과의 합병 등은)
   
산업은행 강만수 행장이 메가뱅크론에 대한 일각의 질타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회현동 우리은행에서 이에 대한 발언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정부가 대주주로서 결정하는 사항”이라는 그의 발언은 당국과의 교감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쉽게 소신을 접지도 않겠지만 당국이나 제 3자가 나서 풀릴 수도 있는 일에 혼자 나서서 매를 모두 맞지는 않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들 발언이 나온 23일 아침에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재개를 2분기 중 발표하겠다고 말하고, 메가뱅크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메가뱅크’란 말을 (평소) 쓴 적이 없다”고 답했다.

주체 아니어도 중심일 수 있다는 우리은행식 셈법

우리금융은 이미 지난해 민영화 무기한 연기라는 상황을 경험했다. 회현동에서 이같이 민감한 시기에 발언을 내놓을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애물단지 우리금융 못지않게 산은지주도 당국의 고심거리라는 배경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은지주의 예대율이 지난해말 기준 350%로 독자생존인 불가능한 만큼 수신기반이 탄탄한 은행과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선민영화, 후대형화가 맞겠지만,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해서는 수신기반 보완 등으로 좀더 매력적인 매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이 주체일 수는 없지만 ‘중심’일 수 있다는 계산은 그래서 나온다. 이미 M&A 대전에서 가장 매력적인 매물로 꼽히던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으로의 매각 추진이 진행 중이다.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 최종 판단에 따라 문제가 달라질 수 있지만 자신감을 갖고 산업은행 민영화 시나리오 중 주요 변수로서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아울러 이 같은 돌발상황이 벌어질 것을 감안해서라도 이전에 시나리오를 가장 유리하게 굳히기 위한 포석을 깔 필요도 없지 않다).

우리은행, 더 나아가 우리금융의 외형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우리금융의 주력계열사인 우리은행은 2010년 순영업수익 5조9564억원, 당기순이익 1조1523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충당금전입액이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당기순이익이 큰 폭 증가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하지만 우리금융의 비이자수익은 일회적 요인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한금융투자가 현대건설 매각으로 비이자이익 부문 1조원 증가 효과가 있다고 풀이하면서도(2011년 2월) “세간을 팔아 버는 돈은 얼마 못 간다”라고 평가한 것은 이 같은 사정을 잘 함축한 것으로 평가된다(현대건설 매각 건으로 1조원대 일회성 비이자수익효과를 보는 금융기관은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등에 불과하다). 아울러 우리은행 부실채권을 보면 1.60%에서 3.24%로 2배 이상 증가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자수익을 은행업의 본류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돈이 떼일 부담을 안고 영업을 펼쳐 얻는 것인 만큼 여기에 치중해 포트폴리오를 짜면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도 된다. 그런데 비이자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이자수익은 방카슈랑스나 펀드 그리고 퇴직연금 등에서 주로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카드 분사에 속도를 내거나 매듭지은 다른 4대 금융지주와 달리 우리은행은 아직 카드업을 안고 있다.

펀드 역시 불완전판매 대란 이후 본격적 재건을 장담하기 어렵다. 퇴직연금은 삼성생명 등과 함께 시장의 5대 점유업체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나, 업체간 덤핑 유치전이 불붙은 점으로 인해 대표적인 저수익영업영역으로 꼽히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금년도 신년사에서 곧 퇴임하는 이종휘 행장이 ‘제값 주고 제값 받는 영업’ 및 ‘비이자수익 증대 등을 통한 안정적 수익 창출’을 당부한 점도 이같은 속사정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소매금융+투자은행’ 투뱅크식 메가뱅크는 한계?

이렇게 되면 이 행장 내정자의 ‘기업금융과 소매금융 모두에 역량이 있는 것이 우리은행의 강점’이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우리은행은 그간 다각화를 강조하면서 확장해 온 소매금융에 치중하고, 산업은행은 기업투자금융에 매진하자는 방식의 메가뱅크가 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한 메가뱅크 추진이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일본 금융계 사정과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2000년 봄, 일본의 복잡한 은행권은 4대 메가뱅크 중심 체제로 개편됐다. 미즈호파이낸셜그룹과 스미토모은행 연합과 함께 도쿄미쓰비씨은행의 3개 메가뱅크가 돛을 올리고, 산와은행이 뒤늦게 아사히은행 등과 손을 잡아 이것이 UFJ를 이뤘다. UFJ는 이후 M&A되면서   일본 최대 금융기관 미쓰비시UFJ를 만들었다.

이 국면에서 눈여겨 볼 두 문제는, 산와은행이 아사히은행연합과 합쳐질 때만 해도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종합금융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노선 중심의 통합(통합 기자회견 발언)이었던 UFJ가 후에 미쓰비시UFJ로 변신하고 ‘엔고’ 와중에서 모건스탠리에 투자를 하는 등 외형성장 위주 기업에 참여한 과정에 있다.

미쓰비시UFJ는 금년초 2월 조기퇴직제도 시행으로 투자은행 부문 직원 300명을 감축하기로 칼을 빼들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미즈호은행과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미즈호CP은행)의 두 개의 은행 틀로 갔던 미즈호금융이 2010년 경영진을 대거 교체하는 등 홍역을 치르면서 이 같은 체제의 불합리성(근래에 미쓰이스미토모은행에 최종수익 규모를 역전당하기까지 하는 경험을 했다)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우리은행에서 메가뱅크 중심 발언이 나오고 있는 점은 일정 정도 이상 우려를 안을 수 밖에 없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이팔성+이순우 시대를 정식으로 열기 전부터 이같은 발언이 나오는 상황에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