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 논란…10년의 갈등

[대한항공 인력운영 실태 ①] 조종사노조 “취약한 고용환경”

나원재, 전훈식 기자 기자  2011.03.17 17:28:5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올해 재무구조개선 졸업을 기대할 만큼 지난해 최대실적을 달성한 대한항공. 겉은 화려할지 모르겠지만, 안팎으로 쌓인 과제가 많다. 근래 들어 잦은 정비결함으로 안전불감증 비판을 받아오던 대한항공은 급기야 최근엔 대통령 전용기 회항 소동까지 벌인 터라 이 회사의 안전시스템을 바라보는 여론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안으로는 조종사들과의 갈등을 풀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에 의해 제기된 ‘외국인조종사 파견 논란’ 그 이면에는 대한항공이 인재육성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뒤따른다. 대한항공의 인력 운영 실태를 3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사측과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항공은 “검찰을 통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조종사노조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이 문제의 핵심은 사측이 외국인조종사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해외파견사업주를 통해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종사노조는 “사측의 외국인조종사 채용에 따라 국내 조종사들이 역차별을 받아 사기가 저하돼 있고 이 때문에 고급인력이 이직하는 등 심각한 인재 누수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조와 업계 등에 따르면, 특히 대한항공은 최근 수지타산 때문에 항공훈련원을 폐지하는 등 인재개발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난도 받는데,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 논란은 결국 ‘핵심인재 부실 운영’이라는 경영상 실책에 해당한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노사 마찰

외국인 조종사 파견문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은 10년간 이어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2001년 5월 조종사 인력공급 업체를 통해 5년간 조종사를 고용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8개 조종사 인력공급사로부터 외국인조종사 262명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노조는 대한항공의 이 같은 행위를 파견법 위반으로 보고, 창립 당시부터 문제점을 지적하며 고소고발을 제기해왔다.  

조종사노조는 지난 2000년 12월26일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고소했지만 이후 2001년 6월26일 외국인조종사 동결에 따른 고소 취하, 다시 2002년 10월1일 서울 남부지방노동청에 고발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사측과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정부의 긴급조정으로 파업이 중단된 가운데 조종사노조가 이후 사측이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며 부당한 조치에 대해 집회를 벌이고 있는 현장 모습.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2001년 사측은 2007년 12월31일까지 외국인조종사를 25~30%까지 줄인다고 약속을 했지만 불기소 처분이 떨어지니 2007년까지만 그렇게 하고 그 이후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예를 들어 슈퍼를 차리고 장사를 하는데 길을 점거하면서까지 자리를 늘려 영업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덧붙였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영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2003년 서울남부지검은 대한항공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남부지검은 근로자파견사업을 위해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국내 근로자파견사업자를 그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근로자파견사업체에는 적용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즉, 해외파견사업주를 통한 외국인조종사 근로 파견이기 때문에 범죄혐의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이 조종사노조와 현재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명분도 여기에 있다.

◆관련기관 상황파악 중…내용 따라 처벌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31일 조종사노조는 사측을 또 다시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 내용으로 고용노동부 관할 지청에 고발했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상황은 예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조종사노조는 사측의 파견법 위반을 주장, 고용노동부 관할지청에 고발한 상태다. 사진은 조종사노조 김홍연 위원장.
지난 2006년 이후 통칭 비정규직법 내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나오며 파견허용업무 대상 직군이 명확해진 까닭이다. 즉, 파견허용업종에서 조종사 업무가 명확히 제외됐다.

게다가 해외파견사업주가 해당지역 법을 적용 받으려면 사업허가를 받는 등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지만, 해외 파견사업자에 국내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파견사업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해당 지역의 동일한 법이 적용돼야 하고, 조종사의 경우 파견허용업무 대상이 아니다”며 “국내법 적용 여부 등 사실관계를 살펴봐야 하는 등 세부적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남창우 사무국장은 “만약 이 자체가 불법파견이라고 하면 대한항공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하나는 정규직 또는 계약직 등 직접채용을 해야 하고, 또는 외국 에이전시가 합법적으로 국내에 파견회사가 아닌 관련 항공조종 에이전시를 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노무법인 관계자는 “계약서 및 비자관계 등 기타 사항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현재 국내법 상 인명과 안전에 직접적 관계가 있는 업종에 대해서는 파견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대한항공 외국인조종사는 명백히 불법적 요인을 볼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종사노조에 따르면, 대한항공 사측은 이를 두고 ‘도급’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파견과 도급의 명확한 차이를 알게 되면 위장도급의 형태가 된다.

파견은 일반적으로 사업주의 인사노무 형태의 지휘와 감독이 인정되지만 도급은 인사노무의 지휘와 감독이 인정되지 않는다. 즉, 도급으로 풀이하면 인사노무의 지휘와 감독이 없어야 하는데, 조종사 업무는 지휘와 감독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대한항공 조종사노조가 이러한 고용노동부 관할지청에 고발했지만 담당 근로감독관이 올 2월 새롭게 바뀌었으며, 2개월간의 상황조사를 통해 검찰로 이첩될 예정이다. 불법파견이 적용되면 파견근로자 사용사업주인 대한항공은 외국인조종사에 대한 직접고용 의무와 일부 과태료가 부과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불법파견 논란과 관련, 본지 취재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인재육성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

대한항공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으로 노사 간 날선 공방이 예상되고 있지만 이러한 논란은 또 다른 문제와 공통분모를 이룬다. 외국인조종사를 파견근로자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제대로 된 인재육성이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이에 대해 한 마디로 “취약한 고용환경”이라 꼬집는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운영한 비행교육훈련원은 조종사를 양성할 당시만 해도 큰 사고는 없었다”며 “지금은 훈련비용 전액을 학생에게 떠넘기고 취직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사측은 불법파견 논란과 관련, 본지 취재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집회 현장 모습.
“대한항공이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외국인을 사용하려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게 이들이 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의 이러한 근로자 운영 형태는 조종사 이직과, 역차별로 인한 사기 저하 등으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할 수 있다.
 
한편, 대한항공은 지난해 2002년 말 비행기 총 110대 중 내국인조종사 1514명, 외국인조종사 265명으로 외국인조종사가 전체 17.5%를 차지, 이후 2004년말 117대 비행기와 내국인조종사 1673명, 외국인조종사 213명(12.7%), 2010년 총 128대 비행기에 내국인조종사 2073명, 외국인조종사 394명(19%)을 보유하고 있다.

※ ‘대한항공 인력운영 실태’ 시리즈 두 번째에선 ‘인재육성 문제점’에 대해 보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