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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저격 한방’에 M&A 판도 바뀌나?

‘론스타 의결권정지 가처분’ 판 흔들어 협상력↑…M&A 상대방 바뀌기도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3.16 14: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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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하나금융지주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문제를 놓고 금융 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11일 나온 대법원 판결 이후 외환은행의 최대 주주인 론스타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대주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6일로 예정됐던 금융위원회의 승인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당국은 일단 대주주 적격만 회의 주제로 올리고 하나금융 인수 승인 문제는 차후에 논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당국은 물론 론스타를 골치 아프게 하는 새 변수가 등장했다.

‘론스타의 은행 소유는 무효’라는 반대 여론 즉, 국부를 투기 자본이 유출해 떠나게 당국과 하나금융이 돕는다는 ‘먹튀 논란’과 그 연장선 상에 있는 ‘매각 유보론(관련 재판이 아직 결론이 안 났으니 확정 때까지 매각 승인을 내주지 말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어 왔고, 실제로도 국민은행과 HSBC은행이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각 협상을 진행하던 판을 깨는 효과도 거뒀지만, 론스타가 당국의 배상 책임 운운하면서 더 이상 이에만 기대긴 어려워졌다.

평소 ‘속전속결’을 강조해온 김종창 금융위원장의 스타일상 곤란함과 고심이 더 깊을 수 밖에 없다는 풀이도 나온다. 어찌 됐든 론스타만 웃는다는 볼멘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본부가 15일 ‘외환은행 지분 4% 이상에 대한 론스타의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이 이같은 상황에서 론스타를 곤란하게 할 변수로 떠올라 눈길을 끈다.

◆론스타 존재 자체에 의문제기

범국본의 주장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것. 범국본은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할 당시 론스타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이었기 때문에 10%(의결권 4%)가 넘는 지분을 취득한 것은 당연히 무효라며 가처분을 제기했다. 범국본은 아울러 비금융주력자에 대한 매각 자체가 잘못됐다며 관련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범국본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그간 심정적 차원에서 요구돼 온 론스타 대주주 적격 인정 유보론에 실질적 근거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전제를 깔고 있는 가처분이 인용되면, 현재까지의 논의상 협상력 절대 우위를 점해왔던 론스타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외환은행의 제1대 주주로 한국 시장에 화려하게 등장, 하나금융과 인수 협상을 할 때까지의 행위 전반에 대한 정당성이 부인되는 상화에 직면하기 때문에 한달에 329억원씩 지연금을 받으며 상황을 지켜볼 여지가 없게 된다. 스스로 위치에 대한 분쟁에 격렬하게 휘말리게 됨으로써, 수령지체 내지 그와 유사한 상황이 조성돼 지연책임을 추궁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무엇보다 그간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니 매각을 지연한다는 매각 유보론이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다분히 위법 소지가 있었다면, 이에 정당성이 일정 부분 인정된다는 효과도 있다. 금융위가 경제개혁연대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해 벌써 5년째 끌고 있는 관련 소송(대법원 계류 중)도 덩달아 빠른 진행을 기대할 수 있다.

◆가처분 유탄 한 발에 SK 치명상 입은 메디슨사건

이렇게 가처분 하나가 소송이나 M&A에 진행 상황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예는 비일비재하다.

우선 가까이는 2010년에 박기택 변호사 및 스카이더블유 등이 제기한 메디슨 주식매각금지 가처분소송으로 칸서스자산운용이 매각 협상의 주도권을 잃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

칸서스측은 지분 43%(보유지분 40%+메디슨 직원지분 3%)을 매각하려 했는데, 메디슨 지분에 콜옵션을 가진 박 변호사의 이 같은 가처분으로 실제 매각할 수 있는 지분이 40% 중 15%가 묶이게 됐다.

결국 메디슨의 ‘경영권’을 넘기려면 칸서스 지분(25~28%)에 신보 지분 혹은 메디슨 우리사주조합 및 임직원 지분 등을 합쳐야 하는 데 포섭에 실패한 것. 이런 상황에서 메디슨에 눈독을 들였던 SK그룹은 인수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SK는 지주회사관련법상 지분의 피인수측의 주식 일정 부분 이상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 가처분으로 인수분에 차질이 생긴 것.

결국 SK가 포기한 상황에서 메디슨 M&A 건에는 협상 주도권의 진공 상태가 일시 조성됐고, 이후 칸서스측은 매각 작업에서 파트너를 삼성으로 하는 방향 전환을 하게 됐다.  

◆캠코, 가처분 때문에 한보철강 매각 때 채권자들과 불화

2004년 한보철강 매각 건에서는 AK캐피탈의 각종 국제상사소송이 크게 눈길을 끌었다. 이 와중에 국내 법원에 가처분도 신청돼 더 채권단을 혼란케 했다. 자산관리공사(캠코)는 당시 AK캐피탈이 제기한 한보철강 관련 소송 중 일부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충당금을 더 쌓자는 주장을 폈으나, 관련 채권단의 공감을 얻지 못해 논란이 빚어졌다.

인수자 측인 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도 한보철강 인수를 위한 본계약 체결 이후 채권단 관계인 집회가 지연됨에 따라 최종 자산 양수도일을 연기하는 손해를 입었다.

여기에 당시 철강업계에서는 AK캐피탈과 정태수 측이 소송을 제기한 점,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 중인 점 등이 INI스틸-현대하이스코의 한보철강 일정을 다소 연기한 것으로 분석했었다.

◆시간 벌거나 상대측 전력손실 효과도

크게 전황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상당히 시일을 벌거나, 상대방 측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히는 방안으로 가처분이 활용된 전례도 있다. 대기업집단과 같은 거대기업을 상대하는 경우에 적잖은 힘이 되는 경우다.

위에서 언급한 건과 다른 외환은행 매각 관련 가처분도 있다. 하나금융의 소액 주주들은 하나금융이 매각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 증자를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며 신주 상장 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사안의 본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2월 말에 제기된 이 가처분이 효력을 잃기까지 2주간 시간이 걸렸고, 하나금융의 자금 동원 능력에 대한 의문 제기라는 목적은 달성했다는 평이다.

1997년 한화종금 적대적 M&A 공방전에서도 가처분이 활용됐다. 이 사례는 적대적 M&A를 추진한 쪽과 한화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 대책이 맞부딪힌 사건이다. 적대적 M&A 추진에 위협을 느낀 한화 쪽에서는 당시 김앤장의 자문을 얻어 사모전환사채(CB) 발행이라는 다소 생소한 방법을 들고 나왔다. 당시 김앤장 소속의 박병무 변호사는 사모전환사채라는 방어수단을 적대적 M&A 방어책으로 국내에 소개, 도입한 인물로 상법사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제도를 남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에 반발한 박의송씨(적대적 M&A 추진측)는 사모전환사채 발행이 위법이라며 무효 가처분과 김승연씨 등 한화 측 이사들의 직무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은 가처분의 취지를 인정, ‘김승연씨 등 이사 3인의 직무를 정지한다’고 결정하고 ‘전환사채 발행은 무효이나 그 이후 전환된 주식의 의결권을 무효화하지는 않는다’는 절충적 결론을 내렸다. 김승연씨 등 한화 오너 일가 측에 유리한 이사 3인을 제거함으로써 오너가 바뀔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거둔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법리상 무리한 M&A나 회사 전체가 아닌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 등 부적절한 소지가 있는 상황에 대한 다툼을 진행할 때에는 가처분이 이처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돼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예가 적잖이 발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상증자를 하면서 보호예수가 없게 해, 신규로 참여하는 대형 투자자에게만 좋은 조건으로 진행하려 하는 대주주 측이나 CEO의 전횡 등은 앞으로 이런 사례 연구와 가처분 등의 응용발전이 발달할수록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국내 유입 목적이 수상한 외국 자본이나 포이즌필 도입을 빙자해 경영권 방어와 세습을 추구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경우에도 향후 각종 가처분이 유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이 영역의 발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