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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항공료 폭리 논란과 마케팅 수준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3.16 09: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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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일본 동북지방 태평양 지진으로 묻히긴 했지만, 대한항공의 ‘일본에게 일본을 묻다’ CF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나, 조양호 회장의 영애(이 분은 근래 상무보로 초고속 승진했다)가 몸소 아찔한 ‘번지 점프’를 하는 뒷모습을 영상에 담은 뉴질랜드 광고 등과는 자매편이다.

이전의 여행 수요를 유발하려는 광고가 풍물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면, 남과 다른 여행, 이야기가 있는 여행이라는 정서적 측면에 호소하는 프로모션으로 평가할 만하다. 대한항공은 특히, 일본 다수의 도시에 취항, 경쟁사보다 뛰어난 대일본 접근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같은 하드웨어적 측면에 일본의 속살을 이해한다는 광고 공략까지 겸비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본 여행의 묘미를 소개하면서 수요 창출에 나선지 얼마 안 된 와중에 두 가지 문제가 겹쳤다.

하나는 그야말로 천재지변인 동북지방 태평양 지진이 일본에서 일어난 점이고, 또 하나는 이로 인해 주재원, 유학생이나 관광객 등이 급히 철수하려는 수요가 발생하면서 항공료 폭리 논란이 항공업계로 빗발친 상황이다.

항공료는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결정되는 바, 급히 공항에 나와 편도편을 구매하는 경우에는당연히 가장 비싸게 구매하는 조건을 부담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왕복편보다 더 비싼 요금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난 와중에 이 같은 높은 수준을 고스란히 고집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비판이 비등한 것이다.

이에는 왕복 항공권 요금은 항공사 자율적으로 가격을 조절할 수 있고 편도 또한 IATA 공시운임을 일본 정부가 규정하고 있으나, 편도 요금 역시 항공사의 결정에 따라 관계 당국과 협의를 통해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일부 항공업계의 설명도 뒤따른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약 이틀 빨리 대한항공보다 할인 조치에 나서면서 비난의 예봉을 비껴나가 대한항공의 모양만 난처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의사 결정의 구조와 위기(돌발) 상황에서의 판단 패턴과 과정이 기업마다 다르므로 이번 사안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위험한 일반화일 것이다. 다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대한항공이 (근래 ‘일본을 묻다’ 시리즈로 일본행 항공 수요 관련 마케팅에 적극성을 보였음에도) 경쟁사에 순식간에 역전의 여지를 허용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래 마케팅의 주요 요소로는 4Ps(Product·Place·Price·Promotion)이 언급돼 왔다. 여기에 Power과 PR의 중요성을 함께 넣는 새로운 사조를 ‘메가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의 새 요소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PR 부분에 대해서는 ‘여론’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설명이 유력한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각종 위기 상황에서의 재외 국민 철수와 관련해서 대한항공은 이미 남아시아 지진해일 상황은 물론 멀게는 중동위기(걸프전) 특별기 투입 상황 등 여러 국면에서 과도한 비용 논란을 여러 번 겪어 왔다. 이런 비판적 여론의 발생 상황에 대한 경험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이번 일본 지진 건에서도 아시아나항공보다 뒤늦게 할인 정책을 단행한 것은 여론 요소를 별반 고려하지 못한 마케팅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반대로, 아시아나항공의 빠른 결정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메가마케팅 기법을 잘 응용한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마케팅 전략에 따라 광고를 아무리 잘 만들고 밀어붙여도, 작은 일로 도로공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향후에, 일본에 관광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항공편을 고를 기회가 된다면, 대한항공을 깊이 있는 일본 여행의 동반자로 떠올릴지 혹은 지진 난 일본에서 빠져나오려는 자국민에 폭리 항공료를 물리려는 회사로 연상될지를 생각해 보면 대한항공 마케팅이 갖는 한계가 쉽게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