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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백화점 태극기 훼손 이벤트 '유감'

전지현 기자 기자  2011.03.10 13: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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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0여년 전 홀로 떠난 배낭여행에서 사물놀이패를 만났다. 여행책자 없이 향했던 그 곳은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창이던 이 지역 유명 성당 앞, 그들은 길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놀이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제법 모여든 인파를 향해 놀이패는 태극기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전통악기와 음악입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1883년에 이르러 고종에 의해 탄생한 ‘태극기’는 일제치하에 이르러선 국민을 단결케 하는 힘을 발휘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서 해방 후 가가호호(家家戶戶)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일본의 그것에 청과 흑의 색을 더해 태극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며 눈물 흘렸던 어릴 적 기억은 여전히 가슴 한 켠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최근 삼일절을 맞아 현대백화점 중동 유플렉스에서 태극기문양을 활용한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사진 보도자료를 접했다. 태극기가 그려진 여권지갑을 증정하는 이 이벤트는 구매 고객 중 선착순 200명에게 태극기 페이스 페인팅과 태극기문양 패치 등을 증정하는 행사였다. 이날의 행사는 당일 모든 상품이 소진됐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 홍보를 위해 뿌려진 보도자료 속 사진 모델의 안경이 거슬렸다. 바람에 날리는 듯 한 모양의 작은 태극기 두개를 이어 만든 안경에는 태극 문양이 7할 가량 잘려나간 상태였다.

대한민국국기법 11조 1항에 따르면 ‘깃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등 훼손해 사용하는 경우 국기 또는 국기문양 활용에 제한을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 말을 들은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이벤트를 사진 촬영을 위해 국내 한 오픈마켓을 통해 구입한 것일 뿐 자체생산 제작한 것은 아니다”며 “젊은 사람들이 주 고객층인 만큼 활발한 분위기 연출을 위해 활용한 것이었고 증정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오픈마켓에선 여전히 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우측 남여 모델이 쓰고 있는 안경 모양의 제품을 보면 태극 문양을 훼손해 현행 대한민국국기법 11조 1항에 위배된다.

국내 3대 유통업체로 손꼽히는 현대백화점이 이 같은 사항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사진은 이미 많은 매체에서 이벤트 홍보 기사로 활용됐다. 그러나 홍보수단에만 전념했던 무신경에 애국심이 상처받은 것은 단지 본 기자뿐일까.

우리나라는 1876년에 있었던 강화도 조약 때 국기의 필요성을 갖게 됐다.

당시 일본은 강화도 초지진에 우리의 허락 없이 군함 운요호를 정박시켰고 우리 수비병대가 대포를 쏘며 대항하던 과정에서 일본기가 불타 버렸다. 이 사건은 이듬해 강화도 회담에서 우리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군함을 허락 없이 정박하더라도 국가를 표시하는 국기를 게양했을 경우 국제 관례상 침범의 의사가 아님을 표시한다는 일본 측 주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기가 없었던 우리는 그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한국은 국기에 대한 인식과 필요성을 깨닫고 국기 창안에 서둘렀다. 하지만 일본의 무력시위 하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은 이후 35년간 굴욕적인 식민 지배의 시발점이 됐다.

이런 한민족의 장구한 역사상 단 한번 있었던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 삼일절이다.

지난 삼일절을 맞아 국위선양의 깊은(?) 뜻을 품고 실시한 그들의 이벤트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태극기에 담긴 우리의 애정과 설움의 역사를 감안했었더라면 이런 실수(?)가 있었겠는가.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