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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광주학생독립운동 문서 발굴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

장철호 기자 기자  2011.03.02 23: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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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장철호 기자]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생 첫날부터 3개월 정도의 상황을 담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극비 중간보고서가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에 의해 발굴됐다.

기존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광주학생사건자료 극비문서’(1979년 일본 나고야 風媒社에서 발굴하여 발간)를 많이 인용했었는데, 이번에 발굴된 극비문서는 소화5년 2월 즉 1929년 2월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극비문서로 보고한 내용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제의 검거에 의해 3월에 종료가 되었는데 이번에 발굴한 보고서는 1930년 2월에 작성된 것이다.

이 자료 발굴은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 권향숙 전임연구원이 와세다대학 도서관에서 발굴했으며, 지난 2월 25일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이 동경YMCA에서 개최한 한일학자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

전체 11장 84쪽으로 이뤄진 이 문서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초기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명단, 부상 상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

광주공립중 3학년 사토 히데오(당시 17세)에 대해 ‘곤봉으로 오른쪽 손가락을 맞아 부상’이라고 기록하는 등 일본 학생 16명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 학생 10명은 이름뿐이다.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재기 교수는 “당시 교육당국(학무국)이 조선인 학교인 광주고보생의 폭력성만 과대 확장하여 보고 했고,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생들은 피해를 많이 입은 것으로 차별 대우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 자료에는 또 일제가 한국 학생과 일본 유학 한국 학생들의 연대투쟁을 차단하기 위해 편지까지 검열한 사실이 명기돼 있다.

이 보고는 일본에 유학중인 부산동래고보 출신 학생이 부산동래고보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를 검열을 통해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제지했다는 증거이다.

일본으로 유학생 학생이 1929년 12월 3일자로 보냈다는 것을 보았을 때, 한달 사이에 조선인 학생과 일본유학생이 연대를 하며 상호 정보교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