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도민저축은행 위한 ‘긴급조치 시대’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2.24 05:50:30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72년 일명 ‘8·3 긴급조치’가 단행돼 기업들의 자금난을 해소해 준 적이 있다. 공식명칭은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이며, 정부가 사채에 허덕이는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해 헌법상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발동한 사례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긴급조치는 기업들이 끌어 쓴 사채(私債)의 상환을 동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일이었다. 정부는 모든 기업들이 쓰고 있는 사채의 규모를 보고할 경우 3년 거치 후 5년에 걸쳐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사채 신고액 중 3203억원이 동결됐고, 금융기관의 단기고리대출금 2000억원이 장기저리 대출금으로 전환됐으며 500억원의 산업합리화 자금이 풀렸다. 박정희 정부 당시의 화폐 가치를 따져보면 천문학적 규모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닥친 경제위기 상황 타개라는 이 조치의 목적에서 정당성을 찾는 이도 있다. 당시 외국 차관을 빌려 쓴 기업들이 대규모로 부실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자금 동맥경화를 풀어주는 조치를 집행할 필요가 높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결론적으로는 사적자치나 거래자유 같은 대원칙을 벗어난 길이었고, 금융기관 등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을 설치하고 대출금리를 연 19.4%에서 16.5%로 인하하도록 돼 부담을 안게 됐다.

긍정적 성격 일색의 걸작이었다기 보다는, 기업을 살찌우기 위해 다른 쪽에 피해를 전가하는 ‘수출입국’ 시대의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같은 해 가을에 ‘10월 유신’이 단행됐던 바를 생각해 보면 이런 강압적 시대가 아니었으면 이 같은 조치가 가능했겠는지도 상당히 궁금한 대목이다.

지금에 와서 새삼 이 같은 긴급조치를 언급하는 것은 저축은행 PF 부실 정리 국면에서 일부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가 변질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도민저축은행은 예금 인출(지불)을 거절한 사유로 “과도한 예금인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휴업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지만, 결국 상황을 종합해 보면 고객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일방적으로 문을 닫은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 금융 당국은 도민저축은행에 6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해, 겉으로는 징계이나 실상은 바라는 바대로 ‘추인’해 주는 꼴을 만들고 말았다.

시중은행도 그렇지만, 저축은행도 지급준비금을 위탁하게 돼 있다. 고객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않고 따로 속셈으로 인출을 거부하는 금융기관들이 다수 발생하거나 그럴 위기 징후가 있어 국민경제에 심각한 위기 우려가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원용해서(문민정부의 금융실명제 경제명령을 생각해 보라.) 이런 자금을 강제국채로 전환하고 당국에서 예금자에게 현금 교부를 해 줘도 될 것이다.(물론 이 점은 금융위원회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가 판단할 일이기는 하다.)

   
 
결론적으로 강행을 해야 될 무리수와 저축은행에 끌려다니기나 하는 무리수 중에서 왜 후자를 굳이 당국, 더 나아가 정부는 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도민저축은행에 이 같은 시혜를 베푸는 이유가 뭔가?  참고로, 8·3조치의 혜택과 효과에 대해서는 이 미증유의 특혜로 인해 대기업과 국가관료제의 연합 즉, 정경유착으로 가게 되는 길을 닦은 셈이라는 비판이 유력하다. 도민저축은행이 연합이라도 해서 같이 국민경제를 논할 상대라도 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