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녹십자, 40년간 국가필수의약품 ‘외길’ 고집

[50대기업 해부] 녹십자ⓛ…태동과 성장

조민경 기자 기자  2011.02.22 13:17:14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해부’ 이번 회에는 녹십자를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녹십자는 지난해 기준 매출 7910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2009년에 이어 제약업계 2위 자리를 지켰다. 녹십자는 故 허채경 회장이 지난 1967년 수도미생물약품판매(주)를 설립한데서 시작됐다.

수도미생물약품판매는 설립 2년만인 1969년 극동제약(주)로, 또 2년 뒤인 1971년 (주)녹십자로 사명을 변경했다.

◆故 허영섭 회장, 백신 주권 확보에 사활

녹십자는 故 허채경 회장의 2남인 故 허영섭 회장과 5남인 허일섭 회장이 일궈낸 기업이다. 故 허영섭 회장은 서울대학교 졸업 후 독일 유학 시절 열악한 국내 보건 환경 개선을 위해 1970년 극동제약 (공무)부장으로 녹십자에 발을 들였다. 

   
필수의약품 국산화를 이끈 故 허영섭 녹십자 회장.
故 허 회장은 국내 최초로 혈액분획제제 사업을 시작으로 ‘만들기 힘든, 그러나 꼭 있어야 될 특수의약품’ 개발에 매진했다. 당시 혈액분획제제라는 용어와 개념은 의료계에서 조차 낯설었지만 故 허 회장은 백신 개발과 값비싼 수입 의약품 대신 필수의약품 국산화를 위해 힘써왔다.

1972년부터 B형간염백신 개발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뇌졸중 치료제 ‘유로키나제’를 생산했다. 설립 12년만인 1978년에는 상장하게 된다. 이후 故 허 회장은 상무이사, 전무이사를 거쳐 1980년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녹십자는 12년간의 연구 끝에 1983년 세계에서 3번째로 B형간염백신 ‘헤파박스’ 개발에 성공했다. ‘헤파박스’는 당시 13%대에 달하던 우리나라 B형간염 보균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려 국민 보건 증진에 기여했다. 또 이 제품은 60여개 국가에 보급돼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종된 B형간염백신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어 1987년 국내 최초 AIDS(에이즈) 진단시약을 개발하고 1988년 유행성출혈열백신, 1993년에는 수두백신을 개발하는 등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백신을 국내 기술로 개발해내는 성과를 이뤄냈다. 

◆2009년, 녹십자 ‘호사다마’의 해

백신 개발에 힘써온 녹십자는 지난 200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녹십자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는 지난 2010년 9월 기준 녹십자 주식 467만8332주, 51.9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녹십자홀딩스의 경영시스템은 제약부문, 헬스케어부문, 해외부문, 재단부문 등 총 4개 사업부문으로 이뤄져있다. 녹십자는 이 같은 4개 사업부문 중 제약부문에 경남제약, 상아제약, 녹십자MS 등과 함께 속해있다.

2005년에는 산업자원부와 전라남도로부터 인플루엔자(독감)백신 원료 생산기반구축사업 협약을 체결해 2009년 전남 화순에 국내 유일의 백신 전문공장 ‘화순공장’을 준공하면서 세계 12번째로 독감백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2009년 한 해는 녹십자에 있어 호사다마의 해라 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백신 개발로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차별화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했으나 11월15일 허영섭 회장의 타계와 이로 인해 지분과 경영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허 회장은 지병으로 타계하기 전 구두로 본인 소유의 녹십자홀딩스 주식과 녹십자 주식 중 각각 30만주와 20만여주를 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 주식과 계열사 주식을 아내와 2남 허은철 전무와 3남 허용준 상무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남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은 자신에게 유산이 돌아오지 않자 선친의 유언은 무효라며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유언이 고인의 뜻임을 인정했다.

이 같은 다툼은 허 회장의 타계 보름만인 12월1일 동생 허일섭 부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면서 일단락됐다. 허일섭 회장은 선친 故 허채경 회장이 세운 한일시멘트공업 이사를 거쳐 지난 1991년 녹십자 전무이사로 입사해 부사장 등을 거쳤다. 故 허 회장의 2남인 허은철 전무는 녹십자 부사장으로, 3남 허용준 상무는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후계 구도를 굳혀갔다.

◆신종플루 특수…미래 성장동력은 R&D

허일섭 회장을 필두로 한 녹십자는 지난해 신종플루백신 공급과 계절독감백신 매출로 전년 대비 23% 성장한 7910억원의 매출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 같은 녹십자의 성과는 ‘R&D(연구개발)는 미래의 매출액’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매년 꾸준히 R&D 사업에 투자한 결과다. 녹십자는 현재 목암생명공학연구소와 녹십자종합연구소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올해는 지난해 매출액 대비 9.6% 수준인 704억원을 R&D에 투자할 계획이다.

   
녹십자 본사.
허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지난날의 영광에 만족하지 말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글로벌 녹십자를 만들자”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현재 임상 2상 시험을 준비 중인 B형간염예방 및 치료제 ‘헤파빅-진’은 기존 제품 대비 짧은 투여 시간과 뛰어난 효능으로 상용화될 경우 매년 성장하는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자체 개발 중인 파키슨병치료제 신약(GCC1290K)이 미FDA로부터 신약 임상시험 진입(IND)을 승인받았다. 녹십자는 이번 승인으로 글로벌 신약으로 기능성을 인정받은 만큼 향후 글로벌 파트너를 모색해 이 약을 2007년 기준 20억달러 규모의 전 세계 파킨슨병치료제 시장에 내놓을 방침이다. 

녹십자는 40여 년간 국가필수의약품을 만들어온 고집과 이 같은 R&D 전략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에 시동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