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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나금융 노사 '노변정담' 필요할 때

임혜현 기자 기자  2011.02.11 11: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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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지만 변호사를 거쳐 백악관에 입성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과 2차대전을 넘긴 지도자로 명성이 높다.  

4선을 하며 인기를 모았을 뿐더러, 그의 부인인 엘레노어 루즈벨트 여사 역시 사회활동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의 인기 상승에 한몫을 거들었다.

그런 그였지만, 4선은 심하다고 생각한 미국인들은 이후 3선을 스스로 거절한 워싱턴식 미덕을 되살렸다.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 대통령조차도 마다한 과도한 장기집권이 독이 된다는 것을 루즈벨트 시대를 거치며 확인하자 이를 규범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후 미 대통령들은 '연임'까지만 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CEO의 임기 문제에 손을 대는 이사회 안건을 처리하면서, 그간 특정인의 장기 집권을 당연시해온 금융계 관행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냐는 점에서 세인들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나금융은 10일 이사회를 열어 등기이사의 연령을 70세로 제한하고, 현행 3년으로 돼 있는 하나금융의 CEO 임기를 올해부터 첫 임기만 3년으로 하고 연임할 경우엔 1년씩 연장하기로 했다.

이같은 '지배구조 규준'을 확정함으로써, 앞으로 하나금융의 회장과 사장, 행장, 감사 등의 등기임원들은 연임 시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곧 임기가 끝나는 지주 김승유 회장도 1년 단위로 이사회 등의 검증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편을 보면서 비판론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연구원에 의뢰, 제도 개선을 검토해 온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으나, 그 개편의 초점은 무엇보다 'CEO 리스크'에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주인없는 회사에 거의 견제없이 장기간 집권하는 인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개혁이 추진된 것이다.

물론 하나금융의 규준 마련은 일응 이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가칭 금융회사 경영지배구조법 제정 작업이 신한3인방 사태 이후 속도를 내며 현재 조문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이렇게 빠르게 하나금융이 손을 쓴 것은 본격적으로 제도 개혁을 주문받기 전에(특정한 모범 포맷이 제시돼 압박을 받기 전에) 일을 매듭짓자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 회장의 임기 만료 전에 고속도로를 닦아주기 위해 지금 굳이 서둘러 처리한 게 아니냐는 추측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러니 '노욕 의혹'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하나금융은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사회를 통해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지만, 지금처럼 신격화돼 있는 김 회장이 연이어 1년씩 임기를 갱신받을 게 추측된다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개편을 해도 김 회장을 위한, 김 회장의 이사회 내지 회사로 남을 가능성은 여전히 소거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이번 개혁 작업의 결과물이 100년을 갈 규준인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김 회장이 만 70을 꼬박 채운 뒤에 물러나면 그 교훈을 얻어 손을 봐야 할 제도일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변정담'으로 유명했다. 대국민연설이지만, 화로(爐)주변에 둘러앉아 편하게 대화하듯 느낌을 주자고 하여 이름을 이리 붙였고, 실제 그 마음가짐처럼 국민들 호응도 좋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하나금융그룹 본사(서울 을지로) 로비에서 시위하는 노조원들의 천막에서 이런 대화를 할 인물인지 비교해 볼 만 하다.

김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 취임 이후 15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긴 하나, 그저 장기 연임에서만 루즈벨트 대통령을 닮았다면, 그건 하나은행 등 산하금융기관 직원들에게는 참 큰 비극이다. 가뜩이나 노조원 폭력 저지 논란으로 시끄러운 회사 상황이고 보면, 이런 회사를 이끌어 갈 수장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재논의가 절실하다.